인간은 매번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혼자 있다 보면 함께하고 싶고, 함께하다 보면 혼자 있고 싶어지죠.
혼자 있는 것은 균형과 충전, 회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것은 불균형이며 도전이고 변화이죠.
우리는 나라는 존재의 마음 하나도 모를 정도로 무한한 존재입니다. 타인도 나와 같은 무한함입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다른 무한함이 더해지는 것이기에 어렵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속에서 나와 타인을 알아가며 세상을 배워갑니다. '성장'이죠.
"우리의 기본 상태는 '혼자'입니다."
'혼자'를 아는 이는, 자신과 삶을 아는 이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성찰의 시간과 존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합니다.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가 기본임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자식이고 배우자이며 부모이니까 계속해서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본 상태를 '함께'로 설정한다면, "우리는 본질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혼자'임이 본질이기에 '독립'을 배우고 '나'를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함께만을 고집하게 되면 나의 중심은 흐려지게 되죠.
내가 나의 중심을 잃고, 독립되지 못 할 때 우리는 '공허함'을 느낍니다.
공허는 채워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나'를 찾아달라는 신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공허를 '함께함'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나 없이 함께할수록 우리는 더욱 공허와 함께에 의존하게 됩니다.
가족과 타인이 전부처럼 느껴지며, 결국 나는 '나' 없이 타인과 하나가 됩니다.
'함께함'은 축복이지만, 그것이 기본이 된다면 우리는 삶의 본질을 영영 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혼자' 있을 수 있어야 하며, 그곳에 '나'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가장 어렵고 심오한 관계가 바로 나의 '배우자'입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명확한 결론이 납니다. 나의 책임에 의한 순수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배우자라는 무한한 존재와 함께하길 선뜻 선택합니다.
"결혼은 잘 모를 때나 가능하다"라는 말이 있듯, 세상과 삶을 알게 되면 결혼은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자유를 위해 살아갑니다. 나의 자유는 나의 가장 중요한 권리이자, 나와 삶의 전부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게 되면, 그 권리를 사용하는 데 신중해지게 됩니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삶을 함께하는 무한한 존재가 하나 생겼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가 한 명 더 생긴 것입니다.
나만을 생각하면, 이미 하나 된 다른 나라는 '배우자'가 고통받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나'인 배우자를 신경 쓰자니 내가 고통스럽습니다.
나와 다른 '나'라는 배우자를 통합해 자유를 이뤄낸다는 것은 사실 굉장한 초월의 일입니다.
배우자와 함께 두 사람 모두 무한히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이상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그 이상을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함께'가 아니라 '혼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를 '소유'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미디어와 사회가 알려준 편견들로 인해 '독립'과 '혼자'가 때때로 차갑고 맞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나'를 위해 가장 자유로운 방법은 서로를 소유하지 않고, 존중하며 그대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서로의 관계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각자 바라는 자유를 쫓으며 부딪쳐 온 나와 배우자입니다. 누군가는 난 자유롭지 못한 채 참기만 해온 것이라 말하지만, 그것 또한 당신이 한 최선의 선택이자, 하나의 자유였을 겁니다.
서로를 무시하고 상처를 입히며 결핍 가득한 알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 사람과 이혼하자니 자식도 있고, 세상의 시선도 신경 쓰이고, 가끔은 또 좋기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또 영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깊게 박힌 모호함이자, 당신을 이끌어온 스스로의 결핍입니다.
이것은 '사랑'인지, '우정'인지, '애증'인지 등으로 정의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리죠.
우리는 그런 심오함 속에 놓여 있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고 스스로 만들어온 지금의 나 때문입니다.
관계를 소유하려 했던 결과가 지금의 위치이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부부는 하필 성관계가 가능한 남녀이며, 우리는 존재 자체보다는 사랑이라는 뜨거움으로 시작된 관계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과 존재를 돌아보지 않으면 관계를 이해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소유하지 않아야 하지만, 번식과 욕구 충족을 위해 또는 관성적으로 의무감에 '성관계'까지 해야 합니다.
나의 배우자는 내 삶 속에서 정식적으로, 또 신체적으로 너무도 가까운 존재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혼자'인데, 자꾸 '함께'를 밀어 넣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부관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