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내게 중독되었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모든 것이 무한해 보이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상상하고 보이기도 무한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무한함이 무한한 환경을 낳기도 하였다.
우린 그런 스스로의 무한함이라는 ‘안’을 바라보기보단, 나로 인해 만들어진 무한함 ‘밖’을 보는데 익숙한 것 같다.
우린 결국 스스로에게 종속된 삶을 살아간다. 난 무한한데, 유한히 나를 확신함으로써
난 나를 속이고 만다.
음식, 거주, 옷, 취미, 여가 등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결핍일수록 더 무한히, 그리고 더 깊숙이 우릴 속인다.
여행이라는 여가를 생각하면, 참 많은 여행지가 있다.
그리고, 우린 모든 곳을 갈 수 없다.
무한히 모든 것을 경험하려는 건, 스스로의 무한함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 안의 무한함에서 나오는 욕심이며, 그것에 구속될 뿐이다.
지구 안을 1초씩 모두 머물렀다 한들, 지구 밖은 더 무한하고,
그 1초씩은 머리가 만들어낸 사고의 욕심일 뿐, 우리의 삶은 ‘여기’ 이 순간을 깊이 사는 것이다.
무한한 여러 여행지가 아닌, 내가 서 있는 이곳에 깊이 머무는 것이 자유이자 삶이다.
내가 여기에 깊이 머물 때 난 어디서든 무한할 수 있다.
무한함이 여기 있음, 그 ‘그대로’임을 아는 것이 바로 ‘나’이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결핍이라 하면 바로 음식을 먹는 ‘식’일 것이다.
식은 곧 생존이기에, 먹지 못한다면 우리의 가까운 관계, 법, 윤리 등의 결핍 또한 식 앞에선 무너지기 일쑤다.
식은 그만큼 우리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이면서도 강력한 결핍이 된다.
당연하게도 음식이란 결핍은 다양해질 수밖에 없었고, 다양한 음식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삶 깊숙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린 ‘당’에 중독되었다.
우리는 대사의 순환을 통해 최종적으로 당을 만들게 설계되어 있다.
초과된 것은 지방으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 알맞게 그 지방을 당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대사가 우리의 본질이다.
인간의 무한함은 곡물의 무한함을 만들어냈고, 넘치는 정제된 곡물은 인간에게 포도당을 직접적으로 공급한다.
알맞게 나와야 하는 최종 산물인 당을 직접 먹으며 컨트롤한다.
과정 없이 직접적인 결과를 마주하기에 당은 달콤하며 짜릿하게 우리를 자극한다.
우리는 당에 중독되며 그것은 강력한 결핍으로써 고통이 되고 만다.
최종 결과물은 참 달콤하다. 노력 없이 일궈낸 일확천금과 같아 보인다.
달콤함이 직접적으로 몸에 들어오면서 내 안엔 위기가 찾아온다.
오래 태우며 이 순간에 머물 수 있는 본질적인 삶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순간순간 불이 붙었다 꺼지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깜박깜박 켰다 꺼지며 우린 무한한 이 순간에서 멀어진 채 욕구와 보상에 중독된다.
음식은 큰 결핍이 되고, 우린 식사를 하면서도 다음 음식을 기다린다.
중독된 우리는 너무 많은 여행지처럼 나라는 본질은 모른 채 어디를 갈까, 무엇을 먹을까 헤매고 만다.
다들 잘 먹으며 즐기는 것이 삶이라 생각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음식은 그 순간의 내가 머무는 곳일 뿐, 우리의 삶이 될 순 없다.
넘치는 음식이 자유이며 행복 같지만, 그것들은 당신의 자유를 가린 채 당신을 종속시키고 있다.
내 삶에 어느 것도 자리 잡을 수 없다.
무한함을 쫓고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여기’가 그대로 무한함임을 아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는 자유이자 진정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