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면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날, 라면이 나의 삶에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때의 ‘앎’은 단순히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깊게 자각하며 알아낸 ‘삶’으로 실존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가정이다.
라면을 멀리 한지 1주가되었던 10년이 되었던 그것을 참는 다면 '삶'이 아닌 '사고'로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삶으로 살아내야 그 '시간'이 사라진다. 이미 내 삶이라는 이 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선, 지금의 '나'와 라면과의 관계를 깊이 자각해야 한다.
그 자각속 내 마음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라면을 멀리한 초반의 나의 층위에 나는 말한다.
"다들이해하지 못할거야."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 "아직도 잘 믿기지 않아." "사람들이 알면 놀랄껄?"
층위의 깊이가 아직 내안의 깊은 허락까진 받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말들이 '나'가 아닌 '사고'라는 지나간 것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내안에 당위를 얻고 그것이 자리를 잡으면 오직 이 순간만이남게 된다.
그리고 난 말한다.
"나에겐 필요 없는 것이 되었어." "그냥 이게 내 삶이야." "다 각자 방식이 있는 거지."
라면이 당연했던 나에겐, 모든이가 라면을 먹는 것 처럼 보인다. 라면은 곧 나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과 다르게 '내가' 유독 독특한가? 라는 생각,
"그 세상은 오직 당신의 세상일 뿐이다."
"당신은 아직, 새로운 세상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다."
새로운 세상이라는 '나'를 알아갈 수록 나는 독립되며 주인이 된다.
보다 더 오직 '나'를 더 깊고 넓게 자각하게 된다.
이상하고, 특이하고, 대단하고, 존경 받을 만한 건 없다.
그렇다 여기는 그들이 그들의 세상에 대한 독립이 없기 그렇게 느낄 뿐.
모두는 그들의 세상에 있을 때 '나'와 '존재'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도달 한 새로운 세상마저 또 다른 당신의 세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