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본질을 이미 알고 있다.
내 안에 느껴지는 ‘균형’이 바로 ‘나’이다.
사고에 이끌려 쌓아온 결핍은 균형을 어색하게 한다.
분명 맞지만,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여긴다.
우린 불균형에 다시 치우친다.
예를 들어 두 연인의 관계가 서로 소유하려 한다면, 그것은 서로의 욕심이 낳은 불균형이며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다.
서로의 독립을 존중하고 그대로 봐주려 노력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균형일 것이다.
본질이란 균형은 내 안으로 자연히 스며든다.
매 순간이 급한 내가 고요한 이를 보면 급해질 수 없듯, 우린 사고와 생각을 초월한 본질에 대한 연결을 느낀다.
균형은 매번 나에게로 그대로 스민다.
난 매 순간 바로 그 균형 잡힌 자리로 가고 싶기 때문이다.
끝없을 것 같던 슬픔은 이곳에서 사라졌다.
멈추지 않고 뛸 것 같던 나의 맥박은 언제나 그들의 본래 상태로 돌아갔다.
균형이 나이고, 가장 인간답기에 자연히 내 삶에 스민 것뿐이다.
삶에 억지나 강제는 없다. 삶으로 녹여내기 위한 이해와 협조, 공조는 있을 수 있다.
머리로 이해하는 정보와 지식이 아니다. 그것을 삶으로 느껴내고 통합해 나에게 자리 잡는다.
우리가 그런 균형을 삶으로 느끼며 살아내지 못하는 건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엔 본질이라는 균형이 언제나 기다린다.
애써 그곳을 향하는 것이 아닌,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슬픔과 아픔이 묻은 과거가 ‘이 순간’을 가린다.
그리고, 그 슬픔과 아픔은 내가 그렇게 해석한 것이다.
내가 만든 불균형은 나라는 균형 잡힌 본질을 가린다.
내가 인생을 그렇게 해석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