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에 내가 있다.
요즘 사회는 인간의 존재라는 본질과 멀어져 가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존재란 바로 여기, ‘이 순간’을 의미하는데, 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자꾸 ‘기록’합니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라는 기록은 쉽게, 빠르게 퍼지죠.
우린 지나간 것들에 쉽게 영향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과거란 지나간 이 순간이며, 지금 이 순간을 있게 해준 소중한 것입니다.
내가 과거를 품고 수용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용서하고 통합하지 못한다면, 나는 여기에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없겠죠.
설령 내가 나의 과거를 통합하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을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수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기반으로 존재하는 직업 — 즉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기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더욱 타인의 영향에 민감합니다.
그것은 배우가 될 수도 있고, 운동선수가 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스타’라고 부릅니다.
별처럼 빛나 보이는 수많은 존재들 중,
우리는 비교를 기반으로 더욱 밝게 보이는 한 존재를 바라봅니다.
‘결핍’ 없이 살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상도, 어떤 과거도 백지처럼 당당할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가깝고 빠른 시대를 살아갑니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너무 빨리 알아버립니다.
그리고 알고 있다는 것은 모두 지나간 기록이자 과거입니다.
과거는 각자만의 고유한 것입니다.
가령, 1번 사람이 어떤 행동으로 2번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 가정해 봅시다.
2번 사람이 아무리 큰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은 이미 지나간 과거입니다.
분명 고통과 아픔이 동반되었다 해도, 2번이 그 원인을 오직 1번에게 돌리는 순간,
2번의 삶은 1번에게 종속됩니다.
이 세상은 나의 ‘해석’입니다.
2번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려면, 지나간 것을 돌아보고, 스스로와 세상을 수용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합니다.
1번 또한, 2번에게 영향을 미친 사건을 돌아보고 스스로와 세상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과거를 단순히 묻고 피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1번도, 2번도 당당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은 1번의 탓도, 2번의 탓도 아닙니다.
모두 자신의 탓일 뿐입니다.
우린 늘 1번과 2번의 삶을 평가하려 합니다.
그러나 지나간 사실과 과거는 그들의 것이며, 그들의 몫일 뿐입니다.
“당신이 타인을 평가하는 그 순간부터, 당신 또한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존재가 됩니다.”
타인의 평가라는 해석은 무한합니다.
스스로를 타인 속에 놓아 평가받게 하는 순간,
이 삶은 고통이 됩니다.
당당히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결국 우린 외면하고 피하며, 스스로를 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나와 타인의 과거가 너무도 가깝고, 너무도 빠르게 공유되는 시대입니다.
우린 끝없이 이어지는 상호작용 속에서 스스로를 잃고, 자립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린 나와 타인을 병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나의 평가라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 다른 평가를 낳으며,
이 사회는 너무 가깝고 빠르게, 모두가 서로에게 종속되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우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순간에 '나'로써 어느 종속 없이 자립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