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가난을 물려받은 것이 아닙니다.

유한한 그 마음을 물려받은 것이지요.

by 서고독

이 순간은 참으로 무한합니다.


잠시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면, 내가 당연히 가지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조차 언제 사라질지 모르며, 나의 목숨 또한 어떤 일로, 어떻게 소멸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무한함이 두려워, 그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여기며 어떤 것들을 붙잡게 됩니다. 그것이 건강을 위한 운동일 수도 있고, 미래를 위한 재테크나 자녀들을 위한 교육일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불안해서 붙잡은 것들은 겉보기엔 ‘의식의 안식처’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이 순간을 가려버릴 뿐입니다. 우리가 진정 머물러야 할 곳은 오직 ‘이 순간’뿐입니다.


가능성이란, 분명 내 안에, 그리고 이곳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만 ‘현실’이라는 바깥을 바라보게 되고, 그곳에는 오직 경쟁과 비교만이 있을 뿐입니다.


스스로 멋진 ‘작가’가 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이라는 바깥을 바라보는 순간, 나의 위치에 대한 ‘비교’가 생겨납니다. 남들과 다른 연봉이나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워지기 마련이지요.


바깥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내가 아닌, 사회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명예와 돈이라는 기준을 따라가며, 결국 ‘나’에게 머무르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매우 건강하고, 자기 중심이 잡힌 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다름’을 ‘고립’으로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자꾸 바깥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결국 ‘나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내 삶의 본모습은 내 안에 존재하기에,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세상’이라는 사회에 소속되어 살아가기에, ‘나’라는 존재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균형을 잘 이뤄내야 합니다.


스스로를 고립시켜 자신만의 세계에만 빠지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고통’일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답은 내 안의 ‘균형’ 속에 존재합니다.


만약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삶이라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멋지고 당당한 당신만의 인생일 것입니다.


찢어질 듯 가난하게 오직 글에만 매진하는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한 일인지, 아니면 틈틈이 일을 하며 밥도 챙겨 먹고 인생을 즐기면서 글을 쓰는 것이 더 자신을 위하는 길인지, 그 판단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자신 안에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삶’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유명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운동선수, 배우, 작가들 또한 모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길을 걷는 일은 고통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며, 나를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길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당신이 ‘밖’을 바라보며,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밖’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른바 ‘사회적 동물’입니다. 작은 가족조차 하나의 사회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자신을 성찰하며 중심을 잡기보다는, ‘밖이 옳다’고 여기며 당연히 바깥을 향해 시선을 두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은 결국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타인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나’를 알고, 그 중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이곳, ‘이 순간’에 머무는 길입니다.


‘이 순간’에 머물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삶의 진정한 주인이자 창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어려워서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유한한 무언가를 붙잡으며 자신을 속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학업 성적에 매진하며 ‘좋은 대학’이라는 단 하나의 길만이 진리인 것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 대학과 수능 외에도 인생에는 무수히 다양한 길이 존재합니다.


학업이라는 것도 단순히 ‘성적’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삶과 연결된 수많은 배움의 형태가 존재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과 멀어질까, 혼자가 될까 두려워 나만의 길을 가는 데 불안을 느끼곤 합니다. 사실 그것은, ‘무한한 나’라는 존재가 낯설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모르면, 남들과 다른 나의 선택이 당연히 불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아이에게 ‘성적’이 아닌 ‘삶’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부모는 이미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인생의 길이 무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자녀에게도 무한한 가능성의 길을 보여줄 수 있는 법이지요.


당신은 가난을 물려받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물려받은 것은, 바로 그런 유한한 마음입니다.


더 나아가, 내가 받아온 것들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지 않은 채, 그저 익숙한 '지금의 나'에 머물고 있는 것이죠.


각자의 삶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성향과 꿈을 품으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만 바깥을 바라보며, 남들과 같은 것을 추구하고, 같은 것을 가지려 합니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나의 가능성’보다, 남들이 다 함께 따르고 추종하는 것들이 더 안정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나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능성은, 오직 자신을 자각하고 인식할 때 비로소 무한하게 흐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사고방식과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돈’에 대한 목표나, 얼마만큼 필요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기준 또한 모두 다릅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돈의 양과 그 이유 역시, 스스로를 깊이 돌아본 사람만이 진정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세상을 가지고 있으며, 내 마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마음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타인의 마음은, 그들이 전하는 말이나 표정으로 어림짐작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을 내 마음으로 똑같이 느낄 수는 없는 법이지요.


결국 우리는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을 언제나 ‘예상’하고 ‘상상’함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알 수 없는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조차 결국은 나 자신의 해석 장치인 ‘내 마음’을 통해 들여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순간, 내 삶을 이루는 것은 오직 ‘내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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