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니 달라지는 구나
내가 아버지에게 가기 싫어하는 이유 제거하기
간병하러가는 날이 가까워지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도 아니면서,
군대에서 휴가 복귀하는 것도 아니면서
한숨이 절로 나오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병원 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이유가 뭘까.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할까 생각해 봤다.
첫째, 아버지와의 감정 소모.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나가자고 하셨고
고집을 부리시거나 재촉하실 때가 잦았다.
모든 것이 본인 위주였다.
옆에서 내가 잠을 자건 못 자건,
밥을 먹건 못 먹건, 뺑뺑이를 돌건 말건...
그럴 때면 나야 어떻게든 버티면 되니
괜찮지만 엄마에겐 얼마나 더 하실까 싶고
왜 가장 배려해야 할 가족에 대한 배려는
없으실까 하는 아쉬움과 미움이 싹텄다.
하지만 이젠 그런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난 일반인의 시각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뇌를 다친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감안해야 했다.
보는 시야도 제한적이어서
내가 뭘 하는지, 어떤 상황인지
잘 보이지 않으실뿐더러
사고의 흐름도 나와는 다른 상황임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회복되면 괜찮아지시겠지.
엄마가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느끼실 날이 오겠지...
어쩌면 지금도 표현을 안 하셔서 그렇지
느끼고 계시겠지...
그냥 다 받아 드리고 존중해 드리자.
아버지의 장점을 더 크게 보고
좋은 대화를 많이 나누고 추억을 쌓자.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결심했다.
둘째, 잠을 잘 못 잔다는 것.
피곤하면 언제든 누워 주무시는 환자와는 달리
간병하는 사람은 늘 긴장 상태라 못 잔다.
간병인용 간이침대는 불편하기 짝이 없고
밤에 꼭 깨는 아버지라 밤에도 숙면은 어렵다.
잠이 부족하니 예민해진다.
하지만 난 고작 이틀 밤이다.
난 아직 젊고 건강하다. 이틀 밤? 문제없다.
한숨도 못 자더라도 집에 와서 자면 된다.
한숨도 못 잘 일은 없다. 쪽잠도 잠이다.
피곤하면 나도 곯아떨어질 것이다.
괜히 잠으로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다.
셋째, 시간 죽이기.
병원에서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저 시간이 빨리 가길 바라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일과였다.
그 의미 없는 시간이 날 더욱 힘들게 했다.
하지만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인데
'버티는 것'을 목표로 한 내가 잘못이었다.
무의미하게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죽이는 일은 이제 안 하리라.
틈나는 대로 독서, 운동, 스트레칭을 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리라 마음먹었다.
넷째, 음식이다.
병원에서 먹는 밥은 맛의 여부를 떠나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맛의 여부까지 더한다면 더더욱...
하지만 난 지금 다이어트 중이다.
바나나와 아버지가 남기신 반찬이면 충분하다.
밥으로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다.
특히나 난 어쩌면 간병에 특화된 사람같다.
음식 안 가리고 비위 좋고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촉을 세우고 있으니...
이 모든 게 아들에게 글쓰기 소재를 주려는
아버지의 크신 뜻이라 생각하자.
이렇게 하나하나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와
해결책을 생각해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병원으로 가는 발걸음이 여느 때와 달랐다.
철저하게 아버지 원하시는 대로,
싫은 티, 힘든 티 내지 않고 다 해드리리라.
고작 3일일 뿐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똑같으셨지만
(담배를 사러 나가야 한다, 밥을 먹지 않겠다,
돈을 뽑아야 한다, 선거에 나가야 한다...)
마음을 정리하고 가니 어려울 게 별로 없었다.
여전히 내 설득은 전혀 먹히지 않았고,
혼자 나가겠다며 일어나다 넘어지기도 하셨다.
밤중엔 어김없이 일어나 나가자고 하셨다.
들어오면 나가자, 나가면 이리가자 저리가자,
다시 들어오면 또 나가자...
난 이 모든 걸 걷고 운동할 기회라 생각했다.
새벽에 나가서는 팔굽혀펴기를 했고
아버지가 주무실 때까지 무료한 시간엔
옆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아버지가 주무실 땐 책을 읽었다.
유튜브를 보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거나
잠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대화도 많이 나눴다.
"민아, 내가 전에 얘기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죽더라도..."
뭐지?
아버지는 갑자기 죽음을 얘기하셨다.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갑자기 이순신으로 빙의하셨나...
"부의 그거 받을라고 여기저기 알리는 것
별로 보기 안 좋더라.
내가 죽어도 공식적으로 알리지 말고
부의를 정 받을 거면 뒤에서 몰래 받아라.
옛날부터 처남이 우리 집에만 오면
내 물건이 좋다고 탐을 냈는데
내가 죽은 거 알면 마음 놓고
돌라(훔쳐)갈 거 아니냐."
"언젠가 아버지가
수목장을 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서 옆에 엄마를 묻어달라고.
그때 엄마가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하세요?
누구 맘대로 옆에다 묻냐고,
엄마 의견은 묻지도 않고 웃긴다고..."
"엄마가 말은 그렇게 해도
내 묏자리 공사할 때부터
내 옆에 자기 자리부터 볼 사람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군수 출마 공약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더 하셨고
우린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난 아버지 옆에서 책을 읽었다.
"그건 무슨 책이냐?"
내가 가져온 책은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자서전 <슈독>이었다.
내가 읽었던 부분까지 필 나이트의 일생을,
나이키 탄생 배경을 들려드렸다.
현재 80대로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
그 나이에도 대학원에서 글쓰기 수업을 받으며
자서전을 쓴 식지 않은 열정과 도전정신이
멋지고 존경스럽다는 말씀드렸다.
아버지도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을
드리고 싶었는데 잘 전달이 됐을지 모르겠다.
병실에 <슈독>을 가져온 건 신의 한 수였다.
55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다 읽었다.
열정, 한 편의 소설 같은 실화, 달리기, 나이키.
같은 인생을 살며 이렇게 시간을,
족적을 다르게 남길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의 내 삶을,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게 됐다.
나이키를 만든 건 괴짜 같은 사람, 인연들이다.
난 내 인연들을 잘 대접하고 있는가.
다운되고 늘어지고 우울할 수 있는 병실에서
열정과 희망으로 나이키 신발을 신고,
신발 끈을 조여 매고 힘차게 나간다.
휠체어를 밀며...
여느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상투적인 말.
생각하고, 마음먹고, 자극까지 받으니
확실히 체감의 정도가 달랐다.
아버지는 크게 차도가 없으시다.
물론 처음에 비하면 많이 좋아지셨지만...
아버지가 제자리에 머문다면
나를 바꾸는 것, 이 상황에서 덜 상처받고
더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 것 같다.
이렇게 우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