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으면 된 거다

내가 짐작할 수 없는 부모님의 세월

by 설작가

이틀 휴가를 내고 어린이날 연휴를 보냈다.
어린이가 되어버린 아버지와 함께...

아이들과 떨어져 어린이날을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 이해해 주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병원으로 오기 전 마음이 심란했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또 나설 차례인가 싶었다.

지난번과 같이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가서
아버지와 담판을 지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견디고 버틸 것인가...

아버지께 드릴 말씀을 노트에 적어보기도,
마음속으로 혼자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를 자극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버지를 존중해드리는 게 좋겠다고...
이번에 오면 잘해 드리라고...

엄마는 아버지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셨다.
평생을 속을 썩여왔고,
지금까지도 본인을 힘들게 하는 아버지를
엄마는 다 이해하려 했고 연민을 느끼셨다.

엄마 뜻이 그렇다면 따라야지...
이런저런 마음은 접어두고 병원으로 갔다.



같은 병실 환자가 두 명이나 바뀌었고
병실 분위기도 전과는 많이 달랐다.

새 환자 중 한 분은 목사님이었다.
매일 아침 7시, 병실에서 예배를 주관하셨다.
성경 구절을 같이 읽고, 기도하고,
예배가 끝나면 한 사람 한 사람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셨다.

조용하고 서로 교류도 얼마 없던 병실이
목사님이 오시면서 끈끈해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엔 트러블도 있었다.
목사님의 기도가 문제였다.
아버지를 위한 기도 내용이
아버지 심기를 건드렸다.

"아버지 하나님, 여기 설 선생
인지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정신이 돌아올 수 있도록
은혜와 기적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게
본인을 정신 이상자로 보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본인 정신이 멀쩡한데
사람들이 자기 말을 믿지 않고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것이 늘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
그런데 인지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니...

여러 사람 앞에서 무안을 당한 아버지는
목사님도 환자면서 무슨 예배냐며
엄마에게 예배를 드리지 않겠다고 하셨단다.

나중에 그 말을 전해 들은 목사님은
그럼 앞으로 병실 예배를
안 드리겠다고 하셨단다.

다행히 엄마가 목사님과 아버지를 잘 달래서
목사님도 그 부분을 조심하기로 하셨고
다시 같이 예배를 드리기로 했단다.



나름 병실에서는 심각한 상황이었겠지만
밖에서 전해 들으니 한 편의 코미디 같았다.
다들 환자들이고 노인들이신데
서로 삐치고 서운해하고 화해하고... ㅎㅎ
밋밋한 병실 생활에 재미는 있겠다 싶었다.

엄마에게 말로만 듣고 상상했던 캐릭터들을
실제로 만나는 것도 재미있었다.
병실 분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
병실은 대화도 많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대화 내용은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대부분 인맥 자랑, 자식 자랑, 돈 자랑,
과거 무용담 같은 것들을 얘기하셨다.
다들 자기 침상에 앉아서...

여기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그렇게 존재감과 자존감을 세우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예전에 색소폰을 배웠어.
근데 이제는 골이 아파서 못 불겄어.
이도 다 해 넣은 거라 소리도 안 나고..."

앞에 아저씨는 한때 한량처럼 잘 노셨다.
골프, 탁구, 색소폰...
이것저것 안 해본 게 없는 모양이다.
그걸 아내분은 못마땅해하셨다.
매번 뭘 하겠다며 장비부터 사면서
진득하게 하는 게 없으니... ㅎㅎ

옆에 계신 간병인 장로님이 맞받으셨다.

"색소폰 좋지요~ 저도 좀 붑니다.
그게 처음에 소리 내는 법만 터득하면 돼요."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분이 한마디 하셨다.

"탁구 배운다고 탁구채 비싼 거 사놓고
며칠 치고 말아불고,
색소폰 배운다고 색소폰부터 사놓고
학교 종이 땡땡땡 갖고 2주를 낑낑댔는디
나는 한 소절도 못 들어봤소~"

다시 옆에서 장로님이 말씀하셨다.

"요새는 유튜브 보고도 배울 수 있어요.
아직 안 늦었어요.
얼른 재활해서 다시 시작해 보세요."

아내분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색소폰은 둘째 치고,
코나 좀 혼자 닦았으면 쓰겄소."

아저씨는 양쪽 팔에 마비가 와서
팔을 못 쓰신다.

"뭔 놈의 색소폰이여~
인자 침 그만 닦아줄라요~"

이번엔 옆에서 목사님이 들쑤셨다.

"집사님은 이것저것 다 해보셨네~
젊었을 때 여자들 좀 끌고 다녔겄는디?
그 얘기나 좀 해봐~"

이번에도 아내분이 맞받아치셨다.

"목사님은 여자들을 끌고 다니셨는가 몰라도
이 사람은 여자를 앞으로 밀고 다녔어라~"

병실에 웃음이 터지고 활기가 돈다.
아버지에게 생리, 안전의 욕구를 넘어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가 필요하다 싶었는데
잘 충족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은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다.
아버지는 정치인 이름을 하나하나 대시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늘어놓으시며
존경의 욕구를 충족하시려는 것 같았다.
남들은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 보실까...


아버지는 이번에 병원에 올 때
내가 쓴 책을 여러 권 가져오라고 하셨다.
병실 분들과 재활치료사님들을 드려야 한단다.

한 분 한 분 이름을 써서 사인을 했고
휠체어를 밀고 다니며 책을 돌렸다.
그렇게 존중의 욕구를 충족하시는 것 같았다.

"너는 작가라는 놈이 펜이 그게 뭐냐?
언제 어디서든 싸인할 준비를 해야지.
앞으로는 펜을 좀 좋은 걸 들고 다녀라.
싸인용으로는 두꺼운 펜이 좋다."

내가 처음 책을 쓴다고 했을 때,
강사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니가 무슨 작가고 강사냐며
전공 공부를 더 하러 대학원에 가라고 하셨다.
살아보니 석박사 타이틀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무시하고 반대하던 아버지가
이젠 그런 아들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시다.
하지만 기본 마인드는 여전하시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하니
책 그만 쓰고 대학원 가란다.

체면과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아버지.
기분도 좋아 보이고 자존감도 높아진 듯한
아버지를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다음날 아버지 호흡기 이상 여부를 진찰받으러
외출을 끊고 외래 진료를 갔다.
아버지의 첫 외출이었고,
앰뷸런스 없는 첫 이동이었다.

비도 많이 내렸고 내 차로 승하차가 가능할지
걱정도 됐지만 큰 무리 없이 잘 해냈다.

다만 엄마와 내가 잠깐 한눈판 사이 아버지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벽을 잡고 계신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밖에 나온 김에 몰래 도망가불라고 했지~"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래도 이왕 밖에 나온 김에 병원 복귀 전에
두 분께 맛있는 걸 사드리려고 장어집에 갔다.

아버지 간병하느라 식사를 제대로 못해
10kg 이상 빠지신 엄마는
모처럼 제대로 식사를 하셨다.


병원에서는 빨리 복귀하라고 전화가 왔지만

진료가 밀려서 늦었다고,
차가 좀 막히는데 금방 복귀하겠다고 둘러댔다.

배불리 잘 드시는 엄마를 보니 정말 좋았지만
한편으론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엄마는 식사 내내 아버지를 챙겨드렸고
아버지도 엄마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늙은 노부부의 모습은 아름답기도,
왠지 애잔하기도, 미스테리하기도 했다.

두 분 사이에는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세월의 정이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로 인해 그렇게 힘들어하시고

눈물 흘리는 날이 계속되어도
엄마는 아버지 옆에서 제일 행복해 보였고
아버지 역시 엄마가 옆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인 두 분의 관계는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엄마가 좋으면 된 거다.
엄마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병원에 오기 전 아버지에게 품었던
원망과 미움을 마음속 저 아래에
묻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이면 또 아버지를 뵈러 간다.
끝없는 터널이다.

내가 해야 하는 것 , 내가 할 수 있는 것,
말하지 않고 감춰야 하는 것,
최선은 무엇일지...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