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없는 전쟁에서 최선이란 게 존재할까?
아침 6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덜컹.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간밤에 아버지가 호흡 곤란 증세가 있어서
한숨도 못 주무시고 힘들어하셨다고,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단다.
나는 휴가를 내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부모님의 주치의 격 의사 선생님이 계신
집 앞 단골 내과로 먼저 갔다.
가는 길부터 험난했다.
주차장은 자갈밭이라 휠체어가 밀리지 않았고
병원 입구는 턱이 있어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들어 올려야 했다.
진료를 받고
(결국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말)
점심 식사라도 할 겸 옆 식당으로 가는 길은
더욱 좁고 급한 경사에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낑낑거리며 밀고 올라갔는데
식당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좌식뿐.
다시 급경사를 내려와 자갈밭을 건너
겨우 다시 차로 모셨다.
아버지는 왜 식당에 안 들어가고
다시 차를 타는 거냐며
좌식이 뭐가 문제냐고 따지셨다.
아이고... 뭐가 문젤까요...
평소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장애인의 불편함을 몸소 체험했다.
장애인이 살기엔 정말 불편하겠구나...
점심으로 아버지가 드시고 싶다는
육회 비빔밥 집에 갔다.
(다행히 여긴 휠체어 입장이 가능한 식당)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엄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큰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갔다.
순환기 내과 의사선생님은 최초 뇌경색으로
입원을 했던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아... 또 병원을 옮겨야 하나...
불과 3주 전에 그 병원에 갔는데
아무 검사도, 조치도 해주지 않고
그냥 코골이 무호흡증인 것 같다며
돌려보냈었는데... 또 거길 가라니...
엄마는 의사선생님께 아들이 올 때만
병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이라 이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걸 해주시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셨다.
결국 그 병원에서 이것저것 찍어보았고,
흉부외과 추가 검진을 받아보니
늑막에 물이 찼고, 그 원인이 심장일 수 있고,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려면 입원해서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한단다.
아... 정말 끝도 없구나...
선뜻 이 병원에 입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추가로 지어주신 약만 받아왔다.
가슴이 답답할 때 심장 혈관을 이완시켜
답답함을 일시적으로 해소해 주는 약이란다.
2주 경과를 지켜보고 다시 보잔다.
아버지는 그 약을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신 모양이다.
낮에 한 알을 드셨는데
저녁이 되니 또 그 약을 또 달란다.
"아버지, 이 약은 아무 때나 먹는 게 아니에요.
가슴이 답답하실 때만 먹는 거예요."
아버지는 식후마다 먹는 거라고 우기셨다.
그러면서 취침 약(수면제)이라도 달란다.
저녁 8시도 안 됐는데...
"아버지, 지금 이거 드시면 밤에 또 깨세요.
이따 주무시기 전에 드릴게요."
"그냥 주라면 줘. 지금 먹고 푹 자게."
"아버지, 그럼 밤에 또 깨서
나가자고 하실 거잖아요."
"내가 안 나간다고 몇 번을 말했냐!"
우기기, 화내기, 안 듣기... 반복이다.
그래... 아버지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자.
밤에 나가지 않기로 다시 한번 약속을 받고
취침 약을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11시부터 뒤척이셨다.
어깨, 다리, 발바닥을 주물러드리니
가만히 누워 잠이 드셨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조금 뒤...
"양말 신겨라, 나가자"
역시나... 반복되는 밤이다.
실랑이를 해봐야 남들에게 피해만 주고
아버지는 계속 나가자고 하실 테고...
휠체어를 밀고 목적지도 없이 또 뺑뺑이...
아버지는 핸드폰과 통장을 찾으셨다.
"이 시간에 핸드폰이랑 통장은 왜요?"
"필요하니까 찾지. 가지러 가자."
"이 시간에 전화 올 곳도 없어요.
통장도 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지금 전화가 울리면 병실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 거 아니냐. 갖고 와야지."
아버지가 한번 우기면 답이 없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보다는 체력 소모가 낫다.
핸드폰을 드리니 이것저것 누르신다.
(시야 확보가 안돼서 폰 조작을 못하신다.)
혹여나 누구에게 전화라도 거실까 봐
뒤에서 지켜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에게 영상통화 버튼을 누르셨다.
새벽 2시에...
엄마에게 전화가 가기 전에 꺼야 했다.
난 얼른 핸드폰을 뺏으려 했고
아버지는 뺏기지 않으려 꽉 움켜쥐셨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난 아버지 손아귀에서 핸드폰을 확 낚아챘다.
또다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지난 번에 이어 2차전이 시작되는 건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가 내 마누라한테 전화한다는데
니가 뭔 상관이야!"
"제 엄마예요!
제 엄마 잠을 왜 깨우세요!"
"이 새끼 말하는 거 봐라.
내가 살다 살다 별 경우를 다 당해보네."
"병실 사람 잠 깨우는 건 미안하고
엄마 잠 깨우는 건 안 미안하십니까?
새벽 2시에 왜 전화를 하십니까?"
"갑자기 찾아가면 엄마가 놀랄 거 아니냐!"
하... 아버지의 망상이 또 시작됐구나.
말을 말자... 무슨 말이 와닿겠나...
"약 먹어야겠다. 약 주라."
"그거 아무 때나 먹는 약 아니에요.
증상도 없는데 드시면 안 돼요."
"하루 세 번은 먹어야지!"
"아버지, 저녁에도 취침 약 달라고,
밤에 안 나간다고 몇 번을 말하냐고
저한테 화내시고는 또 나오셨잖아요.
아버지가 우기시는 게 다 맞진 않습니다.
인정할 건 좀 인정하세요."
아버지는 또 탈출구를 찾으셨다.
수십 번을 돌아도 또 이리 가자, 저리 가자...
나가실 방법은 퇴원뿐이라고,
코로나로 정문이 아니면 다 폐쇄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도 전혀 듣지 않으셨다.
이렇게 밤마다 나오자고 하시면
엄마가 너무 힘들다고 설득을 했다.
"여기는 감옥이랑 똑같다.
나한테 무슨 자유가 있냐.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건 밤밖에 없다."
"병원 안에서 답답하신 건 압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제일 자유로운 사람이
아버지입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간병하는 엄마나 저야말로 자유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맞춰드리느라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습니까,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습니까.
아버지는 잠이 올 때 누우면 주무시겠지만
간병하는 사람은 긴장 속에서 잠을 못 잡니다.
그나마 잘 수 있는 밤에도 매일 나가시니
저야 고작 3일이고 젊어서 괜찮지만
엄마는 이러다 쓰러지십니다."
나도 참다 참다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서로 감정만 상할 뿐, 효과는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계속 이리 가자, 저리 가자...
"아버지,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하세요.
저는 옆에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부르세요."
아버지는 폐쇄된 문 앞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낑낑대셨다. 집념 하나는 인정이다.
뜻대로 되는 것이 없이 화만 쌓인 아버지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말씀하셨다.
"들어가자."
세시 반.
이제라도 끝나 다행이다.
두 시간은 자겠구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병실로 향하니
아버지께서는 또 딴지를 거셨다.
"왜 이리 가냐?"
"이제 들어가자고 하셨잖아요."
"안 들어간다. 저리 (반대 방향) 가~"
하... 반대를 위한 반대...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존재감을 확인하시는 것 같았다.
반대편 끝에 있는 휴게실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아슬아슬하게 소파에 누우셨다.
"피해 안 줄 테니까 넌 들어가라!"
"아버지, 지금 이러시는 게 피해 주는 겁니다.
주무실 거면 들어가서 주무세요.
이러다 낙상하시면 큰일입니다."
"말 그만해! 한 마디만 더 해라.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하시는구나.
혹시라도 아버지가 낙상하실 수 있어
누워계신 아버지 곁을 뜰 수 없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워 여기서 이렇게 주무시다
감기에 걸리실 것 같았다.
병실에서 얼른 이불을 가져와 덮어드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아버지가 뒤척이신다.
"아이고 어깨야...
어깨에 붙이는 안마기 좀 가져와라."
"어깨 좀 주물러라"
"춥다. 전기담요 좀 가져와라."
피해 안 줄 테니 들어가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
아버지의 요구는 계속됐다.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휴게실이에요. 전기 꽂을 코드도 없어요."
아버지는 추워서 더는 못 버티시겠는지
병실로 들어가자고 하셨다.
시계를 보니 5시가 다 되어 간다.
화도 나고, 답답하고,
이게 최선이었을까 다시 복기도 해보고...
이런저런 생각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날, 아버지와 나는 어젯밤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일언반구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을 쐬며 농담을 하고
머리를 깎아드리고 목욕을 시켜드렸다.
팃포탯(Tit fot Tat) 전략이 떠올랐다.
게임이론에서 가장 강력한 전략이다.
컴퓨터 모의 시뮬레이션 대회.
200회의 양자택일 경기를 진행한다.
A, B 협력 : 각 3점
A 협력, B 배신 : A(0점), B(5점)
A, B 배신 : 각 1점
참가자들은 각각의 전략 프로그램을 짰는데
우승자의 프로그램은 탯포탯 전략이었다.
한 번도 상대보다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지만
최종 누계에서는 최고 점수를 획득했다.
배신하면 바로 응징하고 협력하면 반드시
보상을 해주는 어찌 보면 단순한 프로그램.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반복될수록 상대는 결국 협력을 선택하게 되고
모든 상대가 협력하게 되어 우승을 차지한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 하고 있는 방식이
의도치 않았지만 팃포탯 전략이었다.
팃포탯 전략의 주요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협력.
둘째, 상대가 배신할 경우 즉시 응징.
셋째, 응징한 후에는 용서.
넷째, 상대가 나의 패턴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행동을 명확하게 할 것.
아버지를 대할 때 무조건 협력한다.
아버지가 선을 넘으실 경우
나도 나름의 방식으로 즉시 응징(?)한다.
(기껏해야 불친절 or 말대꾸 정도겠지만...)
날이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용서, 협조한다.
하루하루로 보자면 끝이 보이지 않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싶지만
경기가 반복될수록 상대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가장 유리한 전략인 팃포탯 전략이 떠오르며
어쩌면 긴 레이스에서 가장 효율적인 대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식이 아버지에게 무슨 전략이며,
게임이론이냐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생각하니
병원에서의 힘든 하루하루를 게임처럼
받아들이며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잘하고 있는 거라며 셀프 위로를 받는다.
어떻게든 이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힘을 내려는
생존 본능이 아닌가도 싶다.
뭐가 어찌된 것이든 좋으니
가족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이 과정을 지혜롭게 잘 극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