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가 달라졌어요

"나 이제 착하게 살기로 했어"

by 설작가

병원에 도착한 나를 부모님은
활짝 웃으며 반기셨다.
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오늘 작은 아들이 온다고 했더니
간호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더라."

<미생>에서 장그래의 대사가 떠올랐다.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이렇게 날 자랑스러워하시는 부모님.
손을 꼭 잡고 좋아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내가 아버지를 간병하러 오는 가장 큰 이유,
어쩌면 거의 대부분의 이유는 엄마였다.
엄마가 힘드시니까. 엄마에게 힘이 되려고.
아버지의 상태가 빨리 호전되고
아버지 기분이 좋아야 엄마도 좋으실 테니까.

내 이런 마음을 아버지가 아신다면
아버지는 얼마나 슬프실까.

이번에는 아버지가 조금 더 좋아지기를.
엄마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께 잘해드릴 수 있게 되길 빌었다.


다행히 아버지 상태는 아주 좋았다.
몸 상태는 비슷했지만
얼굴 표정, 기분, 발음이 좋아지셨다.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아주 웃기는 이유지만
아버지가 '방장'이 되신 거다.

병실에 있던 환자 중 한 분이 퇴원을 하셨다.
그분들(환자와 간병인)은
병실의 트러블 메이커였던 것 같다.
계속 미묘한 신경전과 작은 트러블이 있었지만
최근엔 목사님과 고성이 오가는 언쟁이 있었다.

목사님이 병실에서 예배를 드리고
환자들에게 안수 기도를 해주는 것을
불법 의료행위로 고발하겠다고까지 했단다.

나중에 그분들이 목사님께 막말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시라소니 집사님이 병실에 들어와
다 죽여버리겠다고 큰소리를 치셨단다.
(트러블 메이커 환자분은 걷지 못하시고
시라소니 집사님은 양팔을 못 쓰신다.
스텝을 밟을 수 있는 시라소니 집사님이
아무래도 우위를 점한 것 같다.)

그 후 며칠 동안 병실에서는 대화도 없이
정적이 흘렀는데 그분들이 퇴원을 하신 후로
병실 분위기가 아주 밝아졌단다.
그리고 목사님께서는 아버지께
'방장'이라는 타이틀을 주셨다.
병실 분위기를 잡는 역할을 하라고.

아마도 지나가는 우스갯소리로 하신 말이거나
아버지가 말을 더 하시면서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셨을 텐데
아버지는 그 직위가 아주 맘에 드셨나 보다.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농담을 던지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시며
병실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셨다.

얼굴 한쪽에 마비가 와서
발음이 불분명했지만
병실 분들은 용케도 잘 알아들으셨고
아버지의 유머는 병실 분들에게 먹혔다.

"아버지, 병실 분위기가 좋아졌네요?
옆에 환자분이 퇴원하셔서 그런가 봐요?"

"응~ 목사님이랑 큰일 있었다고 들었지?
내가 한 마디만 하면 진작에 끝날 일을
엄마가 아무 말도 말라고 말리는 통에
일이 복잡해져브렀다.

내가 나섰으면 이런 일도 안 생겼지.
내가 손가락 한 마디만 썼어도
그놈들은 다 나가떨어졌을 것인디..."

걷지도 못하는 분이 손가락을 어떻게 써서
어떻게 다 날려버린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진지했다. 농담이 아닌 것 같았다.
방장이 슈퍼히어로인 줄 아시는 건 아니겠지...

"민아, 뭐 재밌는 이야기 없냐?
병실 사람들이 다 내 이야기를 기다린다.
매일 한 개씩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이제 이야기가 다 떨어져서 큰일이네."

아버지는 실적의 압박을 받고 계셨다.
참 다행이었다.
전까지는 매번 선거에 나가야 한다고
여긴 감옥이라고 부정적인 생각만 하셨는데
이제는 어디 재밌는 이야기 없나 골몰하시니.

내가 아는 유머 하나를 들려드렸더니
"와하하! 그거 진짜 고급 유머다!" 하시며
바로 병실로 올라가자고 하셨다.

내가 들려드린 이야기 그대로 하면 좋았을 것을
아버지는 봉숭아 학당의 맹구처럼

이상하게 살을 붙여가며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내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들으시긴 한 건지
옆에서 듣는 내가 맘을 졸였다.

아버지가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았지만
시야 확보가 잘 안 되어서 사람들의 반응을
정확히 보지 못하신 게 이럴 땐 다행이었다.


다음날 아침, 병실 분들은 운동하러 나가시며
늦잠 자는 아버지를 깨우셨다.

"아들 왔을 때 걸어봐야제~
우리가 다 같이 응원해줄랑께~"

아버지는 처음으로 보조기구를 사용해 걸으셨다.
걱정 많은 엄마, FM인 엄마는
재활치료사 선생님이 보조기구는 아직
이르다고 하셨다며 사용을 못하게 하셨는데
병실 분들은 아들이 온 김에
도전해보라고 부추기셨다.

1632365896922.jpg?type=w1200 병실 방원들의 응원 속에서 아버지는 걸음마 연습을 하셨다.


걷기에 성공한 아버지에게 모두 박수를 보내고
매점에서 커피 한잔씩 하며 담소를 나눴다.
이렇게 병실 분위기가 바뀌다니...


20210711_134348.jpg?type=w1200 누워있는 시라소니 집사님을 바라보며 페달을 굴리는 아버지


아버지 인지가 조금 더 좋아지신 걸까?
가족을 가장 힘들게 했던,
밤에 나가자고 고집부리시는 게 없어졌다.

물론 여전히 망상으로 엉뚱한 말씀을 하시고
재촉하고 고집부리시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좋아졌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마음이 가볍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말씀하셨다.

"나 이제 착하게 살기로 했어."

또 내게 말씀하셨다.

"고생했다.

회사 가서도...

재밌는 이야기 생각나면 연락해라."

재밌는 이야기는
병원에서 더 많을 것 같은데...

아무튼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뭐 재밌는 거 없나 촉을 세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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