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암이란다."

살아가는 한 결말은 없다.

by 설작가

어떻게든 시간은 흘렀다.

아버지의 주기적인 히스테리,

가족들이 몸으로 때우고 버티는 지난한 나날들.

이젠 그런 과정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웬만한 일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초창기엔 쓸 말도 많았다.

쓰면서 마음을 정리했고 치유도 됐다.

그땐 그만큼 토해내고 싶은 말도,

정리하고 치유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던 거겠지.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일기장의 기록은 짧아졌고

아버지 리스크는 내 일상의 기본값이 되었다.

그간의 일들을 브런치에 다시 정리하면서

'아... 맞아, 그랬었지. 그때 정말 힘들었지.

그래도 우리 참 잘 이겨내고 있구나.

아버지도 많이 좋아지신 거구나.' 하며

스스로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다독이기도,

그러다가도 아직도 아버지에 매여 사는

엄마의 인생이 안돼 보이기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상황이 답답하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 이 생활에 무뎌져 갈 무렵

아버지는 또 다른 숙제를 툭 던져주었다.



민아, 어떡하냐.
아버지 암이란다.


엄마는 전화하는 내내 흐느껴 우셨다.

이번에 병원을 옮기며 여러 검사를 받던 중

식도에서 암이 발견됐단다.


아버지는 이미 몇 년 전 하인두암 수술을 하셨고

완치판정 이후 뇌경색에 걸려 3년째 고생하며

이제야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이번에 또 암이라니...

전에 걸린 암이 전이된 거라면

손 쓸 수 없는 지경일지도 몰랐다.


엄마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놀랍지도,

당혹스럽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아, 암에 걸리셨구나.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아버지의 암소식에도 아무 슬픔을 느끼지 않는

자식이 과연 정상일까 싶었다.

오히려 평생 고생만 시킨 남편의 암 소식에

저렇게 슬퍼하는 엄마의 심리가 궁금하기도 했다.



얼마 전 친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고

시한부 2개월 판정을 받으셨단다.

난 실의에 가득 찬 친구를 위로했다.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내심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넌 그래도 끝이 있겠구나.

남은 2개월 충분히 잘해드릴 수 있겠구나.

아버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남은 삶을 정리하실 수 있겠구나.'


아직도 선거에 출마하겠다, 택시 운전을 하겠다,

사업자금과 정치자금을 모으러 서울에 가겠다며

욕망인지 미련인지 모를 망상과 집착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아버지를 볼 때면 안타깝기도,

어쩜 저렇게 평생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며

무책임할 수 있을까 화가 나기도 했다.


가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커질 때면

불행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해서는 안 될 생각까지도 하곤 했다.


당신이 무엇에 대해 기도하는지
항상 조심하라.
자칫 그 기도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도

내가 몹쓸 마음을 품어서 아닐까 싶어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요즘 아버지는 이런저런 검진을 받으러

광주에서 서울까지 열 번 넘게 왕복 중이시다.

뭔 놈의 검사가 이리 많은지...

검사하다 여러 사람 잡을 지경이다.


엄마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소변통과 기저귀까지 챙겨 버스에 타신다.

나와 형은 그때마다 교대로 휴가를 내고

터미널과 병원을 오가며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이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농담을 던지셨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이 엄청 손해여~

내가 하나님 일을 할 것이 많은디~

하나님이 지금 고민이 많을 거다."


끝까지 여유 있고 유머를 잃지 않는 아버지가

대단하고, 또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아버지 하나 때문에 매달린 사람이 몇 명인데,

다음 검진시간 맞춰 이동하느라 정신없는데

앉아서 실없는 농담이나 던지고 계시는 모습을

보고 있는 가족들은 속이 터지기도 했다.


아버지가 죄인처럼 고개 숙인 모습도 싫고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모습도 싫었다.

그냥 이 상황이 싫은 거였다.


가족들의 싸늘한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굴하지 않고 농담을 이어가셨다.


"하나님도 일이 많을 것인디

나 때문에 일이 많이 밀렸을 거다.

나 때문에 엄청 손해 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인디... 큰 문제구만..."


아버지가 얼른 일어나 이동하시길 기다리던

형이 짜증 섞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버지, 빨리 마스크 쓰세요.

병원에서 그러다 쫓겨나요!"


아버지는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하며

마스크를 고쳐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거 잘 됐네. 차라리 쫓겨나면 좋겄다."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새해 인사를 건넬 때도

부모님 건강하시길 바란다는 그 흔한 말조차

내겐 그냥 내뱉기 주저하는 눈치다.

아버지가 건강해도 걱정,

건강하지 않아도 걱정인 걸 아니...


고생 많다.
어떻게든 니가 잘 되길 바랄게.


결국 애매모호한 만능키를 던지는

그 마음씀이 고맙다.


나도 어떤 게 내가 잘 되는 쪽인지 모르겠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라면

이러나저러나 큰 상관없다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걱정과 무관하게

일은 계속 벌어질 것이고

우린 어떻게든 버티고 수습하며 살아갈 거다.



아버지에 대한 글을 책으로 내볼까 싶었다.

어떠한 결말도 나지 않은, 뭐 하나 수습되지 않고

일은 계속 커져만 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언제 어떤 결말이 맺어질지 나 역시 궁금했다.


살아가는 한 결말은 없다는 게 결말이다.

지금도 크고 작은 문제는 계속 생겨나고 있고

그때마다 우리 가족은 서로 걱정하고 의지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모두가 잘 버텨주고 있음에 감사하다.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냐.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냐.
-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


며칠 있으면 아버지가 암 수술을 하신다.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잘 이겨낼 것이다.

유쾌하게, 서로를 존중하며,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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