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생활의 호흡이 필요하고, 그것이 숨이 되어 쉼을 준다네.'
내일은 간병하러 가는 날이다.
간병하러 가는 날은 왜 이리 빨리 돌아오는지...
기름값에 톨비에 돈도 돈이지만
차는 또 얼마나 막힐지...
답답한 병원에서 어떻게 3일을 버티나...
이런 생각이 들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2년 동안 병원에 갇혀 고생하시는,
아들들이 교대해주는 고작 며칠 숨통이 트이시는,
그 시간마저도 집안일하랴 병원에 약 타러 가랴
장 보시랴, 아버지 드실 반찬 만드시랴...
잠시도 쉴 틈 없는 엄마를 두고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죄인이 된 기분이다.
엄마 역시 죄인이 된다.
바쁠 텐데 또 먼 길 오느라 고생하겠다고...
미안하다고...
엄마가 미안할 일이 전혀 아닌데도...
도서관에 가기 전, 다 보든 못 보든 간에
가방 가득 책부터 챙기고 보는 것처럼
병원에서 읽을 책을 몽땅 챙겨본다.
막상 병원에서 다 보지도 못할 거면서...
책 볼 수 있는 평온한 시간을 기대하며...
책을 챙기고 있으니 마치 내가 휴가철에
어디론가 쉬러 가는 느낌도 들었다.
쉰다는 건 뭘까?
쉰다는 건
내가 애쓰고 노력했던 호흡과 패턴에서
완전히 반대의 호흡과 패턴을 찾아
시간을 갖는 거라네.
차이가 클수록 좋지.
운동선수에게는
가만히 있는 호흡이 쉼이 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활력이 있는 호흡이 쉼이 되고,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에게는
생각을 멈춘 다른 생활의 패턴이
쉼이 된다네.
그런데 보통 쉼은
익숙한 곳에서만 가지려고 하지.
예를 들어 생각이 많은 사람은
쉬면서도 생각하려 하고,
운동선수는 쉬면서도 운동을 생각하고,
공부하는 사람은 쉬면서도 시험을 준비하네.
익숙한 호흡은 나를 쉬게 할 수 없어.
익숙한 호흡에 지친 거니까.
전혀 다른 생활의 호흡이 필요하고
그것이 숨이 되어 쉼을 준다네.
<고민의 답> 중에서
아버지 간병.
전혀 다른 환경, 전혀 다른 세계에서
완전히 반대의 호흡과 패턴을 갖는 시간.
회사, 가정, 그동안의 일상과의 단절.
어쩌면 간병은 내게 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병원에 가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일상의 소중함, 건강한 몸에 감사하고
안정적인 삶에 감사하게 된다.
다시 뭔가를 시작하고 싶고
열정적으로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익숙한 호흡에서 벗어나 리프레시가 된다.
엄마에 대한 걱정, 죄책감도 조금은 덜어내고
당분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게 된다.
생각을 바꿔보자.
난 쉬러 가는 거다!
그렇게 병원에서 잘 쉬고(?) 돌아와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드렸다.
전화는 금방 끊겼고 문자가 하나 왔다.
곧 전화드리겠습니다.
저녁식사 시간도 지났는데...
아버지 화장실 가시는 거 돕고 계시나?
보통 조금 지나면 다시 전화가 오는데
이번엔 한참이 지나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또 아버지 히스테리가 시작된 건가?
아니겠지, 사정이 있겠거니 했지만
마음 한 구석 불안함은 어쩔 수 없었다.
한참 후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니~ 엄마가 좋아하는
주말 드라마 보는 중이어서
끝나고 전화하려고 했지~
처음엔 '휴~ 다행이다...' 정도였지만
"곧 전화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자는
생각할수록 기분 좋은 문자였다.
엄마는 늘 아들이, 아버지가
자신보다 우선이었다.
평생을 그렇게
희생만 하며 살아오신 엄마였다.
그런 엄마의 우선순위에서
내가 드라마 다음으로 밀렸다니...
본인의 감정을 우선한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엄마에겐 혁명적인 일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내게 간병하러 가는 날이 쉼이 되려면,
엄마에게 아들과의 교대가,
병실에서 드라마 보는 시간이 쉼이 되려면
아버지를 벗어난 순간만큼은
아버지에 대한 생각의 스위치를 꺼야 한다.
전혀 다른 생활의 호흡이 될 수 있도록.
그렇다면 아버지에게 쉼은 무엇일까?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쉼이 필요하듯
아버지에게도 숨 쉴 틈이 필요하실 텐데.
그래서 그렇게 발버둥을 치시는 거겠지.
아버지가 헛된 망상과 집착만 내려놓으시면
모두가 숨을 쉬며 편안해질 수 있을 텐데...
다른 뇌졸중 환자, 가족들과 달리
우리가 유독 힘든 이유가 거기에 있는데...
어떻게 하면 쉴 수 있는지 알면서
그 누구도 편히 쉴 수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
하지만 쪽잠으로도 꿀잠을 잘 수 있으니
각자 요령껏 쉴 수 있을 때 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