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는 행복할까, 불행할까?"

우물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간 아버지

by 설작가

어떻게든 시간은 흘렀다.

아버지의 히스테리는 주기적으로 반복됐고

엄마의 일상과 감정은 아버지의 상태에 따라,

나의 일상과 감정은 엄마의 상태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우리의 일상을 쥐고 흔드는 건 결국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나와 인연을 끊기로 한 다음날 아침

아버지께 영상통화로 생신축하 전화를 드렸다.

아이들과 아내가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해줬다.

이번 역시 누구도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그렇게 해소되지 않은 해묵은 감정과 상처는

서로의 가슴속에 하나씩 쌓여만 갔다.



엄마는 또 나에게 SOS를 치셨다.

군수 출마를 해야겠다고, 퇴원을 하겠단다.

그놈의 선거, 정치.

진짜 최악의 정신병이고 불치병이다.

막고 막았지만 이번엔 도저히 안 되겠다고

퇴원까지도 고려해봐야겠다고 하셨다.


또 히스테리가 절정에 달한 주기가 왔구나.

나도 회사 일이 있고 일상이 있고 생활이 있는데

언제까지 만사 제쳐두고 달려와야 하는가...

아버지에게 언제까지 휘둘리며 살 건가...


엄마에게 그냥 내버려 두시라고,

아버지 혼자서 뭘 하실 수 있겠냐고,

(홧김에) 정신병원에 넣어버리자고도...

엄마에게 상처만 주는 비수 돋친 말만 쏟아놓았다.


엄마도 너무 힘들어 벗어나고 싶은데 그럴 순 없다고

사람 어려울 때 버리는 거 아니라고,

아버지의 인생이 불쌍하지 않냐며

어떻게든 사람을 만들겠다고 하셨다.

난 또 모든 잡념은 접고 엄마만 생각하기로 했다.


병원 측의 배려로 퇴원 대신 긴 외박을 얻었고

나는 아내와 회사의 배려로 긴 휴가를 냈다.

4박 5일의 긴 여정이었다.

이 기간 내에 아버지가 하자는 것 다 들어드리고

최대한 많은 좌절을 맛보게 해 드리는 게 목표였다.


'나는 감정이 없다, 그저 이동을 돕는 수단이다'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6시간을 운전해 병원에 도착했고

내 감정은 최대한 숨긴 채 웃으며 인사드렸다.



다음날 아침. 그룹영상통화로 예배를 드렸다.

병실 멤버가 뿔뿔이 흩어졌지만

목사님의 아침 영상 예배는 계속됐다.

엄마의 기도와 아멘은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다.


아버지는 여기저기 전화하며 약속을 잡으셨지만

언제 누구를 만나는지는 알려주지 않으셨다.

일단 가자고, 시키는 대로 운전만 하란다.

방향감각도 없고 편측무시가 있는 아버지가

진두지휘하는 차는 수차례 뺑뺑이를 돌았다.


만나기로 했던 분이 연락을 받지 않았다.

예전에 선거운동을 도와주셨던 분인 듯했다.

벌써 10년이 넘은 이야기라 잊고 산지 오래고

그때의 기억이 좋을 리 없어 피하고 싶었을 게다.


아버지의 지시대로 한 건물에 주차했고

무작정 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난 반신반의했지만 놀랍게도 그분이 계셨다.

예기치 않은 불청객의 등장에 당황하신 듯했다.


아버지가 혼자 잠시 사무실에 계시는 동안

그분께 아버지의 상황을 간략히 설명드렸고

두 분은 한참을 이야기 나누시고 나오셨다.

아버지는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한 인연을 이렇게 스스로 끊어버리신 듯했다.



이번엔 친한 친구 두 분을 만났다.

아버지의 변해버린 행색에, 허황된 이야기들에

친구분들은 아버지의 상태를 직감했고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몸이나 챙기라며

친한 친구라서 할 수 있는 면박을 주셨다.


아버지는 그 상황이 불편했는지

만난 지 10분도 안 되어 도망치듯 헤어지며

나에게 피곤하다고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오늘은 아무 소득 없이 여기서 끝인 건가?

더 큰 좌절을 맛보셔야 할 텐데...


생각에 잠긴 아버지가 갑자기 내게 물으셨다.


민아~ 우물 안 개구리는
행복할까, 불행할까?"


갑자기 또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건지...


"우물 밖에 나가면 뱀도 있고,

초등학생들한테 잡혀서 구워 먹힐 수도 있고...

우물 안에 있는 게 안전할 수는 있겠지."


밖에 나와보니 생각 같지 않다는 걸 느끼신 걸까?


"그런데 우물 안에서는 마음대로 뛰지도,

돌아다니지도 못할 텐데... 행복할까?"


"그건 개구리가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요?

우물 안에서도 행복 찾으며

잘 살다 죽으면 행복하게 산 거고,

계속 우울하다고만 생각해

우물 밖만 쳐다보며 살다 죽으면

불행하게만 살다 죽은 거 아닐까요?"


아버지가 우물 안에서 행복한 개구리로 사셨으면...

아버지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셨다.


"OO군수랑 식사 약속 한번 잡아봐.

내가 식사 대접 한다고~"


결국 우물 밖으로 나가시려는구나...

아버지는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일을 벌이셨고

나와 엄마는 수신자에게 몰래 다시 전화를 드려

아버지의 상황을 설명드리고 수습을 했다.



다음날 또 아버지를 모시고 길을 나섰다.

어제 다 약속을 했다며 식사장소에 가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하셨다.

확실한 거냐, 시간 장소 약속을 하신 거냐

통화를 하신 거 맞냐고 물었지만

아버지는 왜 의심을 하냐며 화를 내셨다.


하지만 약속장소엔 아무도 없었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오기로 했다는 사람은 연락도 받지 않았다.

정작 아버지는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는 것인 줄

인지하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이 생고생이 의미가 있는 걸까?



이번엔 동창회 사무실로 가자고 하셨다.

말로만 듣던 동창회 사무실을...

밤새 친구들과 도박하느라 며칠씩 집에도

안 들어오며 엄마 속 꽤나 썩였던 시절 그 장소.


언젠가 형과 나는 아버지를 찾으러 그곳에 갔었다.

난 그곳을 다 엎어버리겠다고,

아버지가 친구들 앞에서 수모를

제대로 느끼게 해 드리겠다며 작정하고 갔지만

예상과 달리 불도 꺼지고 문도 잠겨 있었다.

난 유리창이라도 박살내야겠다며 짱돌을 찾았었다.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이곳에 함께 오게 될 줄이야.


동창회 사무실은 건물 4층에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아버지는 난간을 잡고 겨우 한 발씩 계단을 올랐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어렴풋이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어디서 힘이 솟은 것인지 죽을힘을 다하셨다.


4층이 가까워지자 담배냄새가 풍겨왔고

계단 통로엔 소주병이 쌓여있었다.

막상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너무 좁은 골방이었다.

6명의 친구분들이 원탁에서 카드를 치고 계셨다.

문제의 하우스가 여기였구나.


다 늙어버린 노인들.

천 원짜리 카드를 치며 시간을 죽이는 모습.

내 노년이 저럴까? 저렇게 살면 재밌을까?

아버지는 저게 좋았을까?

그때 내가 여기를 싹 다 엎어버렸다면

이분들의 모습도 달라졌을까?


난 아버지 친구 한 분께 상황을 설명드린 후

연락처를 드리고 나와 차에서 대기했다.

이 소중한 시간. 이게 최선인지...

바람 쐬고 친구 만나는 시간도 도움은 되겠지.


한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었다.

올라가 보니 친구분들은 카드 치느라 바쁘고

아버지는 그분들 틈에서 멍하니 앉아 계셨다.

친구분들은 잘 왔다며 아버지를 모시고 가란다.

아버지 소변 뉘어드리느라 고생 좀 하셨단다.

동창들에게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아버지...


아버지를 모시고 4층 계단을 내려왔다.

올라갈 땐 친구들을 본다는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내려올 땐 힘이 다 빠져 잘 걷지 못하셨다.

난간을 잡고 후들거리며 숨을 헐떡이셨다.


"아이고 진짜 죽겄다. 밖에 못 다니겄다.

사람 만나기도 힘들고, 돈도 없고.

그냥 병원 들어가는 게 낫겠다.

병원이 제일 편하다. 가서 빨리 눕고 싶다."


아버지는 나머지 일정은 다 접고

내일 다시 병원으로 가겠다고 하셨다.

망상이 해결된 건 하나도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다음날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복귀했다.

머리도 깎아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린 후

다시 집으로 올라가는 길.

이제야 큰 한숨이 내쉬어졌다.

어찌 됐건 또 이렇게 한 고비를 넘겼구나.


아버지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내 나름대로 견디는 법이 생기고 있다.


첫째, 힘이 들 때면 지금이 아닌

내 인생 전체에서 지금의 순간을 보려 한다.

지금이 다가 아니다. 순간일 뿐이다.


둘째, 그냥 인간의 삶이라는 걸 생각한다.

누구나 태어나서 죽는, 그냥 인간.

뭐 그리 큰일이 있겠는가.


셋째, 스스로 최면을 건다.


나는 개미다.


우리가 바쁘게 움직이는 개미를 보면서

개미의 고뇌와 슬픔을 생각하진 않는다.

개미는 그저 먹이를 나르고 구멍을 파고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일 뿐이다.


누군가가 위에서 나를 내려다본다면,

(어쩌면 제삼자가 나를 본다면) 마찬가지다.

그저 운전하고, 부축을 하고, 씻겨드리고,

닦아드리고, 짐을 나르며 그렇게 움직이는...


내가 힘든 이유는 내 머릿속 생각에 있다.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한다.

난 그저 개미처럼 움직일 뿐이라 생각하면,

내 노동력과 운동량만 생각하면

뭐 그리 중노동을 한 것도 아니니...


결국 모두 지금의 순간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연습이다.

이렇게 연습을 하다 보면 득도를 할 날이,

모든 걸 여유 있게 받아들일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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