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터지고 말았다.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려 했건만...
최악의 마무리였다.
다시 돌이켜봐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이었을까?
최선이라는 게 있기나 한 것일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최악의 결과만 남긴 길고 긴 하루였다.
아침 6시에 장흥 병원으로 출발했다.
약을 먹고 잔 덕인지 콧물은 멈췄지만
눈이 건조하고 시린 증상은 계속됐다.
아침 일찍 부모님을 모시고 광주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 병원에 엄마 병원까지.
아들이 떠나기 전 들러야 할 곳은 다 들러야 했다.
다시 장흥에 모셔드리고 진주에서 짐을 챙겨
인천으로 올라가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 중
아버지가 또 이상한 말씀을 하기 시작했다.
"어이, 10만 원만 빌려주소~"
엄마와 난 불길한 예감에 눈이 마주쳤다.
"지금 서울 올라가서 선거자금 조달해야겠네."
하... 또 시작인가...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꼭 이렇게
아들을 불편하게 보내야만 했나...
선거에 대한 아버지의 망상과 고집.
출구 없는 감정싸움을 또 시작해야 하나.
이럴 땐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아버지를 서둘러 차에 태우고
장흥 병원으로 향했다.
"차 좀 세워라. 나 여기서 내려야겠다."
못 들은 척 무시했지만 아버지의 저항이 거셌다.
지금 무조건 서울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계속 못 들은 척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
엄마는 떼쓰는 아이 타이르듯 아버지를 타일렀다.
달래기도 했다가 화도 냈다가
결국 울먹이며 매달리다시피 하셨다.
아버지는 본인 상황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엄마에게 화내고 욕하고 소리를 지르셨다.
죽든 말든 내버려 둬라, 당장 이혼하자,
당신이 내 인생을 망치고 있다,
더는 못 참는다...
아무리 뇌를 다쳤다손 치더라도
사람이 어쩜 저리 뻔뻔할 수 있을까?
어쩜 저리 나쁠 수가 있을까?
뒷좌석에서 일어나는 소동에도
최대한 동요하지 않으려 심호흡을 하고
이를 꽉 깨물고 못 들은 척 참았지만...
난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엄마에게 함부로 하는 건 못 참는다.
눈앞에서 엄마가 당하는 장면을 보며
내 인내심은 급격히 바닥났다.
머리털이 쭈뼛 서고 내장이 뜨거워졌다.
울화가 치민다는 게 이런 건가?
살기가 돈다는 게 이런 건가?
최대한 개입하지 않으려, 자극하지 않으려,
냉정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만 좀 하세요! 왜 그렇게 이기적이십니까!
가족은 생각 안 하세요?
뇌를 다치셔서 그러겠거니 계속 참았습니다.
저는 성질 없어서 가만히 있는 줄 아십니까?
지금 엄청 참고 있는 겁니다!
엄마가 뭐 큰 거 바랬습니까?
선거 얘기만 좀 그만하라는 거 아닙니까!
선거요?
대소변이나 혼자 해결하고 얘기하세요!"
꾹꾹 참고 눌러왔는데... 결국 터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완전히 이성을 잃으셨다.
목소리가 뒤집힐 정도로 흥분하셨다.
"이 새끼가 애비한테 말하는 거 봐라!
나랑 싸우자 이거냐? 오냐, 한판 붙자!
싸가지 없는 새끼, 넌 이제 나랑 인연 끝났다!"
차에서 한동안 고성이 오갔다.
나도, 아버지도, 엄마도 모두가 흥분상태였다.
나도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고 정적이 흘렀다.
엄마의 훌쩍임, 아버지의 씩씩거림만이
차 안의 정적을 메웠다.
울고 계신 엄마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결국 엄마를 더 힘들게 한 건 아닐까?
화가 난 마음에 애꿎은 액셀만 밟아대는 바람에
금세 병원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또 서울에 가겠단다.
엄마는 아버지께 매달려 울며 사정했고
아버지는 그런 엄마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지켜보기 힘들었지만 일을 키울까 봐 참았다.
뇌를 다친 분과 무슨 말을 하겠나...
마음 같아서는 갈 데까지 가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남아서 고통받을 엄마를 생각하면
내 기분 따라 행동할 수는 없었다.
내 기분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지만
아까는 너무 흥분한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사과드렸다.
"됐어! 너랑 나 사이에 인연은 아까 끝났어!
너는 더 이상 내 아들 아니야!"
그러면서도 차마 손자들하고의 인연은
못 끊겠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완전히 개판이 된 상황을 뒤로한 채
주저앉아 우는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드리고
그냥 돌아서서 병원을 나왔다.
내가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더 굽히고 달래드릴 마음도 없었다.
아버지와 같은 공간에 있다가는
일이 더 커질 것 같았다.
그저 시간의 힘을 믿는 수밖에...
병원 로비에서 벌어진 난리에 달려온
재활치료사분들과 병실분들의 회유와 설득에
아버지는 잠시나마 화를 누그러뜨리고
병실로 돌아가셨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아버지도 나도 감정 정리가 안 된 상황.
그런데 하필 내일이 아버지 생신이다.
아버지 말씀처럼 끊을 수 있는 인연이라면
끊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은 현실.
내일 아버지께 전화를 드릴 생각이다.
내가 할 도리는 다 하고
선택은 아버지가 하실 수 있도록.
아버지의 상태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게 유일한 방법인 현실.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현실.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감정만 쌓여가는 현실.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그때 내 선택은 같았을 것 같다.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자 다짐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최선이 뭔지 모르겠다.
이 혼돈의 시기가 언제쯤 끝이 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