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의 끝, 나의 시작만 생각했다.

인사발령, 그리고 엄마의 메시지

by 설작가

인사발령 시즌.

2년 간의 주말부부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가족상봉을 앞둔 시점.

언제나 어김없이 끝은 찾아온다.


간병하러 가는 날 무거운 발걸음도

간병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엔

언제 그랬냐는 듯 발걸음이 가볍다.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해방의 기쁨에 더해

내 할 도리를 다했다는 생각에

마음의 짐을, 큰 숙제를 덜어낸 기분이랄까.


주말 간병에 분명 끝이 오듯이

끝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시기도

언젠가는 옛 일이 될 것이다.

괴롭더라도, 너무 막막하더라도

끝은 분명히 있으니 오늘만 생각하자.



언젠가 주말 연속으로 간병하느라

오랜만에 집에 왔을 때

현관에서의 낯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집 현관에서 회사 숙소 비밀번호를 눌렀던 것.

집 현관 비번을 떠올리느라 시간이 필요했던.

내 집이, 또 이런 내가 낯설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주말이나 휴가 때 집에 가면

가끔 객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각자 삶의 패턴이 있었고

거기에 내가 불쑥 끼어든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제 타지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가 다시 내 자리를,

내 삶의 패턴을 만들어갈 때가 왔다.


끝은 홀가분함과 동시에 아쉬움을,

시작은 기대와 동시에 걱정을 동반하지만

지금은 홀가분함과 기대가 너무 커서

아쉬움이나 걱정에 내어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설 연휴 긴 간병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숙소로 오는 길.

엄마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난 나의 끝, 나의 시작만 생각했다.

내가 멀어진다는 것만으로도 불안에 떨고 계시는

엄마의 끝, 엄마의 시작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만감이 교차할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오전에 숙소와 회사 짐을 차로 옮기고

후임자에게 업무 인수인계까지 마무리했다.

이제 진짜 안녕이구나~


그런데 그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몸에 이상이 생겨

내일 광주에 있는 큰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단다.

엄마는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시며

그저 내가 와주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하... 나도 일정이 빡빡한데...

어쩔 수 없었다. 부모님이 우선이지...

부모님이 타시고 휠체어까지 실으려면

다시 차를 비워야 했다.

내가 오전에 뭘 한 거지?


처음 엄마 전화를 받았을 땐 막막함이 앞섰다.

떠나기 전 만나기로 했던 사람들과의 약속은

다 취소해야 했고, 짐은 또 언제 다시 싸며,

언제 올라가서 인수인계받고...

모든 계획이 엉켜버렸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나마 내가 여기 있을 때(2시간 거리)

일이 터져 망정이지 올라간 다음에(5시간 거리)

상황이 터졌으면 어쩔 뻔했나...

모든 게 잘 된 거다. 기분 좋게 가자.


내일은 아침 6시에 출발해

운전만 12시간을 해야 한다.

몸 컨디션이 안 좋아 콧물이 줄줄 흐르고

눈코가 시려 평소 잘 먹지도 않는 약을 먹었다.

부모님께 씩씩하고 밝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길.


내일이면 이곳 생활 진짜 마지막 날이다.

참 빡세게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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