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아버지와 5일간의 모험

엄마에게 필요한 건 답이 아니었다.

by 설작가

정신없이 바쁜 하루.

회사 일은 회사 일대로,

틈틈이 부모님 보험금 청구까지.

아버지 뇌졸중 관련, 엄마 교통사고 관련...


하지만 정작 나를 괴롭힌 건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 때문에 죽겠다는 엄마의 전화였다.

내 설득이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또 엄마를 비난하고

당장 퇴원시키라고 겁박하고

택시회사에 가야 한다, 당사에 가야 한다는

망상에서 비롯된 히스테리를 부렸고

죽게 내버려 두라고, 뛰어내리겠다며

완전히 통제불능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고

엄마는 중간중간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

이러다 엄마가 곧 쓰러지실 것 같아

걱정될 정도였다.


이럴 때마다 멀리 있는 내가 계속 나타나

해결해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를 백번 이해하고 공감하면서도,

엄마가 너무 불쌍하면서도

엄마의 힘들어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

나에겐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간병인을 쓰자고,

그래야 아버지가 엄마 소중한 걸 안다고,

간병인이 두 손 들고 나오면 그때 생각하자고,

엄마도 잠시나마 아버지를 벗어나야 한다고,

엄마도 아버지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그래야 엄마가 산다고 말씀드렸다.


"그건 절대 안 된다. 엄마 안 죽어~"


내가 내놓는 그 어떤 대안도 엄마는 거부하셨고

결국 그냥 엄마가 버티시겠다는 도돌이표...

그러면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나한테 전화를 하신 이유가 뭔가...

교대한 지 하루 만에 다시 아들에게 전화해

SOS를 치는 엄마가 내게 원하시는 게 뭘까...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을 넘어

이제는 엄마를 탓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럴수록 이러는 내가 싫어졌다.

엄마가 무슨 죄라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불쌍한 엄마를 생각할수록

내 생각은 패륜으로 치달았다.

말로도 행동으로도 옮기지도 못할 거면서

상상 속에서 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엄마가 더 고생할 일도 없을 텐데...

그러면 엄마랑 놀러도 다니고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을 텐데...



퇴근 후 동기들과 술 한잔 나누며

자연스럽게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고통을 끝낼 다른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고,

빨리 돌아가시는 게 답일 것 같다는 말까지

입 밖으로 서슴없이 내뱉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부모님이 아실까?

정작 부모님은 내가 병원에 갈 때마다

아들이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시는데...

병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내 칭찬을 한다며,

나 같은 효자를 둬서 부러워한다며 어깨를 펴시는데...


나보다 백배 천배 힘드실 엄마는

아버지의 모든 요구를 다 받아내며

아버지의 회복만을 바라고 계신데...

내가 뭐 얼마나 했다고, 뭐 얼마나 힘들다고

아버지 팔이를 하고 감성팔이를 하고 다니는가.


부모님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

불효와 패륜으로 가득 찬 나쁜 놈이란 걸 아시면

부모님은 마음이 어떠실까...


말은 한번 뱉으면 담을 수 없고

내가 뿌린 말들은 힘을 가질 텐데...

난 여기저기 미움과 분노의 씨만 뿌려대고 있고

내가 키운 나무가 언젠가 나를 잡아먹을 텐데...



결국 아버지를 퇴원시키기로 했다.

엄마와 나는 절충안을 찾았다.

아버지도 답답해서 저러시는 거니

집에서 며칠 쉬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 드리자고.

그러면 아버지도 괜찮아지실 거라고.

그다음 아버지께 입원을 설득해 보자고.


나는 가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목요일~월요일까지 휴가를 냈다.

3일도 힘든 판에 이번엔 5일이다.


아침 일찍 도착해 퇴원수속을 밟았다.

1년 만의 외출. 긴장되는 모험이 시작됐다.


"아버지,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다 말씀하세요.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분들 다 만나시고요."


아버지는 전에 일하던 택시회사를 가자고 하셨다.

말로만 듣던 택시회사를 이렇게 와보는구나.

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셨던 개가 너였구나.

아버지만 보면 그렇게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다는,

파란불에만 길을 건넌다는 사람보다 낫다는 녀석이.


하지만 녀석도 아버지의 달라진 모습이 낯설었는지

전혀 반가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슬아슬한 길을 겨우 한 발짝씩 걷는 아버지를,

개도 사람들도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부장님과 단둘이 나눌 얘기가 있다며

나에게 이제 집에 가라고 하셨다.

엄마한테 새어나가면 안 될 이야기가 있다고.

아마도 망상 속 잃어버린 개인택시의 행방과

잃어버린 5억, 택시회사 재취업 얘기일 것이었다.


난감해하는 부장님께 잠깐 아버지 상황을 말씀드렸고

밖에 있을 테니 언제든 필요하면 부르시라고 했다.

우리 선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남에게 짐을 넘긴 꼴이니 죄송한 마음이 컸다.

부장님은 얼마나 우리가 원망스러울까.


한참 후 아버지가 나오셨다.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잠깐 부장님과 대화를 나눴다.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무슨 얘기가 있었나요?"


"알아듣게 다 잘 말씀 드렸어요.

아버지 잘 모셔드리세요~"


아버지는 화가 가득 난 채 계속 씩씩거리고 계셨다.


"저 새끼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나쁜 놈이네.

나를 바보로 알고 날 속여먹을라고 하네.

도둑놈 새끼. 나를 정신병자로 아네?"


어떤 말을 해도 믿지 않는 아버지.

하나하나 해소되긴커녕 모든 사람을

나쁜 놈, 정신병자 취급하는 놈으로 만드셨다.


아버지는 은행에 가자고 하셨다.

은행 문 닫은 시간이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그래도 가잔다. 막무가내, 고집불통.

그래. 난 발품을 팔러 온 사람이다. 가자.


이번엔 아버지의 오랜 친구를 만났다.

카페에서 만난 친구분은 아버지의 입원날짜,

병원, 과거 암수술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좋은 친구셨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생각한 사업 아이템이 많다고,

서울에 가서 사업자금, 정치자금을 모아야겠다고,

누구를 만나야겠다는 말씀들을 늘어놓으셨다.


아버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친구분은

다른 생각하지 말고 건강만 생각하라는 덕담을 남기고

일이 있으니 다음에 보자며 급히 자리를 파하셨다.

고립을 자초하는 아버지를 보며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체력이 소진되어 집에 가자고 하셨다.

오히려 마음이 급한 건 나였다.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한 곳이라도 더 가셔야 할 텐데.

조금의 미련도 남지 않도록,

조금의 의심도 남지 않도록.

두 눈으로 다 확인하고 포기하셔야 할 텐데...



그 후로 몇 번의 외출, 몇 번의 만남이 더 있었고

아버지도 다시 입원하는 데에 동의하셨다.

어찌 됐건 다행이다. 이만해서 다행이다.


짐을 가득 싣고 다시 병원으로 가는 차 안.

백미러로 졸고 계시는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엄마는 졸면서도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꿈에서도 나쁜 꿈을 꾸시는 걸까?

현실보다 더 나쁜 꿈이 있을까?


어젯밤 짐을 정리하며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김 빠진 맥주를 드시던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엄마는 얼마나 고단하실까.

이 상황이 얼마나 지옥 같을까.


장흥 병원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우릴 반기셨다.

치료사 선생님, 간호사, 환자까지...

아버지는 이제야 내 집에 온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

다행이다.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짐을 다 나르고 다시 숙소로 돌아갈 시간.


"아버지, 이제 저 갈게요.

재활운동 열심히 하셔서

다음엔 더 건강한 모습으로 봬요."


아... 이제 끝이구나.

이제야 발 뻗고 잘 수 있겠구나.


"민아, 갈라고? 어디로 가냐?

나 지금 서울 가려는데 나 좀 태워주라."


아... 또 시작인 건가?

지금까지 난 뭘 한 거지?


난 그냥 무시하고 뒤돌아 나왔다.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서울을 가겠다며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고...


이 네버엔딩 스토리는 언제 끝이 날까?

할 만큼 하니 이제 헛웃음이 나온다.



긴 여정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신기하게도 한 명씩 돌아가며 안부전화가 왔다.

친구들, 할머니, 장모님까지...

날 걱정하고 위로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이 고통의 시간이 그리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잘 이겨내고 있고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힘을 내게 된다.


나도 엄마에게 자주 연락드려 들어드리고

함께 걱정을 나눠드려야겠다.

지금 이 상황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답이 아니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엄마는 지금 잘하고 계신다는 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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