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진짜 괜찮은 거지?"

고통을 피할 수도, 끝낼 수도 없다. 그저 견디는 것뿐...

by 설작가

악몽 같은 밤이었다.

아버지의 히스테리는 극에 달했고

내 인내심도 점점 바닥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정도면 엄마는 얼마나 힘드실까?


아버지는 지금껏 계시던 병원에서 퇴원을 하셨다.

(최장 입원 가능 기간이 3개월.

3개월이 지나면 병원을 옮겨야 한다.)

그동안 정들었던 환자와 가족들, 재활치료사님들과

길고 긴 작별인사를 나누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아버지는 이제 병원 생활을 졸업하는 줄,

집으로 돌아가는 줄 아셨던 것이다.

하지만 곧장 광주에 있는 재활병원에 다시 입원하자

아버지의 꿈은 무너졌고 아버지의 분노는 폭발했다.


집밥을 먹지 병원밥은 먹지 않겠다고 버티셨고

저녁이 되자 집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아버지 마음은 알겠으나 회복해서 퇴원하시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실 수 있다며 설득했지만

통할 리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를 자극할 뿐...


"엄마는 왜 나를 집에 못 가게 하는 거냐!

딴 놈이랑 같이 사냐?

이렇게 개처럼 살다 죽을 순 없다.

개도 이렇게는 안 산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 죽어도 좋다.

죽더라도 집에서 죽을 거다.

아니면 여기서 뛰어내려 죽을 거다.

내가 사람을 죽였냐, 돈을 달라고 했냐.

내 집에 내가 가겠다는데 왜 그걸 못 들어주냐!"


이러시면 모두가 힘들어진다고,

힘들지만 조금만 힘내보시자고 했지만

아버지는 힘들 게 뭐가 있느냐고,

내가 다 알아서 다 한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자꾸 탈출하려는 아버지를 어쩌지 못해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해도 봤지만

간호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가족이 온몸으로 견디는 수밖에...


더 큰 문제는 이 병원은 응급실이 있어

24시간 후문이 개방되어 있다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무조건 택시를 타겠다고,

죽어도 길에서 죽겠다며 저항하셨다.


최대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드렸다.

가자는 대로, 하자는 대로...

밤새 여기저기 뺑뺑이를 돌았다.

아버지는 모든 문과 닫힌 셔터를 흔들어대며

나갈 구멍을 찾고 사람을 찾았다.

아버지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결국 지쳐 결국 1층 로비에 앉으셨다.


1층 로비엔 응급실 환자가 뜨문뜨문 오갔다.

그중 한 사람이 병원 직원에게 물었다.


"어디로 나가요?"


"저기 후문으로 나가시면 돼요~"


아뿔싸...


그 말을 들은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셨다.


"가자! 저기로 가면 나갈 수 있단다."


"응급환자들만 다닐 수 있는 문이 있는 것 같은데

일반인 통행은 안 돼요."


난 대충 둘러대고 아버지 눈에 후문이 보이지 않도록

몸으로 가리며 다른 길로 유도했다.

한참을 돌다 지친 아버지는 병실로 가자고 하셨다.

휴... 다행이다... 오늘밤은 여기서 종료인 건가...


아버지는 휴게실로 가서 옆 환자에게 물었다.


"여기는 문이 다 닫혔던데 언제 나갈 수 있어요?"


"여기는 아무 때나 후문으로 나가면 돼요."


아... 또 망했다...


나는 뒤에서 몸동작을 써가며 다급하게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그분은 눈치를 채고 지금은 못 나가고

내일 아침에 나갈 수 있다며 황급히 둘러대셨고

민망하셨는지 자리를 뜨셨다.


아버지는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곧 집에 도착하니까 전기장판 틀어 놓으소~"


엄마는 이게 무슨 일인가 덜컥 겁도 나고

아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을지 그려져

울먹이며 전화를 하셨다.


"왜 착한 민이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아버지는 대체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다..."


이 긴 터널의 끝은 어디일까.

해피(?)엔딩은 아버지가 기적처럼 회복해서

인지가 돌아와 집으로 돌아가시는 것...

아니면 다른 곳으로 돌아가시는 것...


어떤 식으로든 이 고통의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밤새도록 '제발...'을 되뇌며 날이 밝았지만

아침부터 아버지의 '나가자' 타령이 또 시작됐다.

아버지께 커피를 사드리고

아이들 이야기로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아이들 얼굴이라도 보시면 좋아지실까 싶어

영상통화를 걸었다.


"지금 게임 중인데 이 판 끝나고 전화할게요~"


아... 이놈들... 도움이 안 되네...


조금 더 시간을 끌고 있으니 애들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그런데... 그 이후 정적이...

하긴... 애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애들이 사회생활을 해본 것도 아니고...

애들한테 기댄 내가 잘못이지...


어떻게든 열린 문을 보이지 않게 디펜스하고

다른 길로 유도하며 버티다 다시 병실로.

엄마가 이렇게 하실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민아, 미안한데 귤 하나 줄 수 있냐?"


이게 아버지의 인성인데...

아버지가 이렇게 정상적인 상황을 보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다.

자식이란 놈이 아버지가 돌아가셔야

이 모든 상황이 끝날 거란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엄마에게 연락하니 마트에 가는 중이시란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고등어 사러...

이 상황에서도 아버지밖에 모르는 엄마.

아버지의 회복에 인생을 올인한 엄마.

그런 딸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마음.

여기저기서 저마다의 애환이 느껴진다.


내가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내가 지금의 경험을 책으로 낸다면

내 책의 결말은 어떤 내용일까?

어찌 됐건 책에 끝은 있겠지?

그 책이 끝나더라도

또 다른 고통과 고뇌는 계속되겠지?


1년 전엔 그때의 고통이 최악이었고

지금은 지금대로 새로운 최악을 맞고 있다.

모든 것이 해결되고 아무 걱정 없는 순간이 있을까?

대부분의 순간엔 저마다의 시련이 닥치고

그걸 이겨내는 내가 있을 뿐이다.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지혜롭게, 성숙하게 극복할 수 있을 뿐.



악몽 같은 3일이 지났고 엄마와 교대하는 날이다.

버텨낸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 엄마가 감당할 차례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버지의 강력한 저항에

퇴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

이렇게 버틸 수도, 마냥 퇴원할 수도 없는 상황.

최선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한 최선은 두 분 모두를 설득하는 것.

엄마에겐 집 간병의 가능성을,

아버지에겐 퇴원의 가능성을 보여드리는 것.

서로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드리는 것.


이 최악의 상황 그대로

엄마에게 바통을 넘겨드릴 순 없었다.

내가 어느 정도 수습을 하고 떠나야 했다.


아버지가 누워서 화를 삭이시는 동안

노트에 아버지께 드릴 말씀을 적었다.

여기서 잘못되면 안 된다,

나에게 엄마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각오로.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잠깐 나가시죠~"


아버지와 1층 로비에서 긴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가 어디까지 알아들으셨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이젠 운명에 맡겨야 했다.



다시 숙소로 복귀하는 길.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대충의 사정을 듣더니 괜찮냐고 물었다.


"그럼~ 잘하고 왔지~

이 상황에 나만큼 잘할 사람은 없을 거야~"


잠시 후 아내가 다시 물었다.


여보, 진짜 괜찮은 거지?


골치 아픈 생각은 쉽게 스위치를 꺼버리고

고민의 끈은 의식적으로 끊어버리는 나.

그런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가 물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냐고...


순간 멍해졌다.


'난 진짜 괜찮은 걸까?'


운전하며 가는 긴 시간 동안 내 마음을 살폈다.

결론은...

난 진짜로 괜찮다는 것.


내겐 이렇게 나를 알아주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아내가 있고

언제든 마음을 나눌 친구들이 있다.


나를 정말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나는 정말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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