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교통사고. 그 와중에도 엄마는...
"치매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이번 생일은 진짜 다시 태어난 생일이다.
하나님이 날 살려주셨어."
엄마 생신날 아침.
생신 축하 전화를 드리며 안부를 여쭸다.
엄마는 어제 큰일이 있었다고 하셨다.
"또 아버지가 무슨 사고 치셨어요?"
그 이상이었다.
엄마는 어제 덤프와 충돌해 차를 폐차시켜야
할 정도로 큰 교통사고가 났다고 하셨다.
에어백과 안전벨트가 엄마를 살렸다고...
큰 외상은 없으니 걱정 말라고...
엄마는 아버지가 계신 병원에 입원해
옆에서 환자 겸 보호자로 계신단다.
진짜 괜찮으신 거냐 수차례 물었지만
엄마는 괜찮으니 걱정 말고 일하라고
먼 길 오느라 괜히 수고하지 말라고 하셨다.
평소 외가 쪽은 엄살과 과장이 심하다 보니
이번 엄마 말씀에도 과장이 있겠거니
감안하고 들었고 엄마가 괜찮다고 하시니
난 그저 그런 줄로만,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드실 빵을 사러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시는 길이었다.
병원 밥이 맛없다고 밥을 안 드시는 아버지가
식빵에 잼을 발라드리면 잘 드신다며...
엄마가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시간은
아버지가 재활치료를 받는 시간뿐.
엄마는 마음이 급했고 바뀐 신호를 보지 못했다.
교차로에서 나온 덤프트럭과 그대로 충돌했다.
"몰라.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엄마는 그때의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셨고
삼촌이 경찰서에서 블랙박스를 보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외할머니, 삼촌에게 차례로 연락이 왔다.
"엄마 사고 난 거 연락받았냐?"
"네~ 엄마랑 통화했어요.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하시던데요~"
"괜찮을 리가 있겄냐?
엄마가 살아난 건 기적이어야~"
삼촌이 사진 한 장을 보내셨다.
이번엔 엄살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축소해서 말씀하신 거였다.
이 정도 사고면 엄마가 괜찮을 리 없었다.
난 바로 휴가를 내고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3시경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는 바쁜데 왜 왔냐면서도
아직도 긴장한 채 떨며 내 손을 놓지 않으셨다.
나도 엄마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오길 잘했다... 정말 오길 잘했다...
사고 당시 엄마는 정신이 없으셨고
차가 구겨져 차 문도 열리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문을 열어 엄마를 꺼내주었다.
119 구급대와 경찰이 도착했고
엄마를 인근 병원으로 옮기려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상황에서도 아버지를 생각했다.
저 간병해야 돼요.
돌봐야 될 사람이 있어요.
저기 병원으로 가야 돼요.
구급대원은 엄마에게 그게 무슨 소리냐며
구급차에 타지 않고 횡설수설하는 엄마를 보며
정신이 나간 게 아닌지 의심을 했다.
상황을 파악한 구급대원은 아버지가 계신 병원에서도
교통사고 환자 입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엄마를 그 병원으로 모셨다.
엄마는 그런 큰일을 겪으시고도
자식들에게 알리지 않으셨다.
자식들 걱정할까 봐.
그게 엄마다.
남편 걱정, 자식 걱정에 정작 본인은 뒷전인...
엄마는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셨고
의사 선생님께 검사결과를 들으러 오라고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무서워. 못 가겠어."
엄마는 아이가 된 것처럼
내 손을 꼭 잡고 떨고 계셨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의사실에 들어갔다.
엄마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계셨다.
"CT상으로 볼 때 뇌출혈도 없고
큰 부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천만다행이네요."
엄마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셨다.
"그런데 뇌 CT를 보니
뇌 퇴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치매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의사 입장에서는 혹시 모르니 검사를 받아보고
약으로 퇴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가벼운 조언 정도였겠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치매'라는 단어는
전혀 가볍지 않은 단어였다.
그것도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는...
엄마는 다시 큰 죄인이 된 듯
고개를 조아리며 의사실을 나왔다.
"어? 내 핸드폰 어디 갔지?
내 정신 좀 봐라~"
엄마는 의사실에 두고 온 핸드폰을 가지러 가셨다.
평소 같으면 '깜빡 하셨겠거니' 생각할 일이었지만
내 머릿속엔 '치매'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벌써 아버지 재활치료 끝날 시간이 되었다.
빨리 올라가서 아버지를 인계(?) 받아야 했다.
아버지 얼굴이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
'그냥 나오는 병원 밥 잘 드셨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왜...'
아버지를 탓하는 마음이 자꾸 올라왔지만
아버지라고 이럴 줄 알았겠는가...
"어이, 커피 한잔 주소~"
엄마는 믹스 커피를 뜯어 정수기 물을 받으셨다.
"오메, 내 정신 좀 봐야. 미쳤는 갑네~"
엄마는 정수기에서 찬물을 받고 계셨다.
"엄마, 앉아서 쉬세요.
지금 정신이 없으셔서 그래요."
연속으로 반복된 엄마의 실수.
평소와 다르게 와닿았다.
엄마가 진짜로 치매면 어떡하지?
아버지 간병하시느라
1년 내내 병원에 갇혀서 운동도 못하시고
아버지 뒤치다꺼리만 하시다가...
엄마의 치매(아직 검사조차 받지 않았지만)마저도
아버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며
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면박을 주고 힘들게 하실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더 커졌다.
우린 외출을 얻고 밖으로 나가 저녁을 먹었다.
엄마 생신날 이렇게 식사를 같이 하는구나.
엄마의 환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렸다.
"하나님이 나한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신 것 같다.
남은 생은 좋은 생각,
좋은 일 하면서 살고 싶다."
"엄마는 지금까지 그렇게 사셨어요."
두 분이 모두 환자라서 내가 보호자 자격으로
오늘 하루 우린 같은 병실에 누웠다.
세 가족이 한 방에 누워본 게 얼마만인가?
이젠 내가 두 분의 보호자가 되었네...
엄마가 잘못되셨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땐 내가 휴직을 해야 하나?
그럼 병원비는 어떡하지?
엄마가 치매라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 생각하면 뭐 하나.
그냥 오늘 숙제만 생각하며 살자.
다음날 병원을 나서는데 엄마가 말씀하셨다.
"병실 분들이 우리 민이 칭찬을 많이 하시더라.
민이는 엄마의 훈장이야~"
난 이번에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저 먹고 자고 얼굴 보인 것밖에 없는데...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으신 것 같았다.
우린 서로에게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건강하게 잘 지내만 줘도 감사하고 힘이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