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버지 웃음의 이유가 나였다면...

내 인생 최고의 강의, 최고의 수강생

by 설작가

"오메~ 얼굴 좋아지셨네~

이제 퇴원해도 되겄는디?"


"이제 곧 명절인디 집에 가시겄네?"


병원 사람들의 덕담이 엄마에겐 곤욕이었다.

아버지는 사람들의 말에 더 기고만장해져

다 나았다, 이제 곧 퇴원할 거라며 큰소리를 치셨다.

아직 대소변도 혼자 처리를 못하시면서...

본인 상황에 대해 전혀 인식을 못 하셨다.


집에 가면 엄마가 먼저 쓰러지실 판이었다.

좁은 집에서 아버지를 눕히고 일으키는 일,

세끼 밥을 챙기는 것도 문제지만

아버지를 두고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데다

무엇보다 언제든 탈출할 틈만 노리는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명절 연휴에 퇴원이나 외박을 하는 환자가 많아

병실이 썰렁해져 아버지도 헛바람이 드셨다.


"나가자"


올 게 온 것인가...


"성묘 가자. 내년에 선거 나갈 놈이

성묘도 드리고 고향 어른들께 인사도 드려야지."


아... 또 선거 이야기...


아버지는 간호사에게 대뜸 외박을 신청하셨다.

외박을 거부당한 아버지는 탈출을 시도하셨다.

1층 로비로 가잔다.

난 감정싸움이 싫어 하자는 대로 해드렸다.


출입문 반대편으로 가시는 아버지께

거긴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아버지 특유의 반대를 위한 반대,

똥고집 시위가 시작됐다.

닫힌 문을 흔들어 보고 막다른 길로도 가보고

한참을 헛수고하시고는 지쳐서 앉으셨다.


"엄마 어디 갔냐?"


"엄마는 집에 계시죠~"


"방금 옆에 있었는데 무슨 소리냐?

이제 나를 미친놈 취급하네~"


아버지와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 보였다.

이런 인지력으로 무슨 퇴원이란 말인가...


아버지는 화를 삭이지 못하셨다.

저녁식사, 운동, 이발, 목욕을 모두 거부하신 채

침상에 계속 누워만 계셨던 아버지는

잠꼬대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셨다.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뭘 안다고 까불고 있어!



한숨도 못 잤는데 날이 밝았다.

아버지가 밤새 뒤척이신 탓도 있지만

내 속에 화가 끓고 있어서,

머릿속이 복잡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난 왜 화가 끓어오르는 것일까.

내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아버지가 선거에 나간다고 하실 때마다

엄마와 난 아버지의 다른 망상에 비해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버지의 뜻대로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냥 '허황된 꿈을 꾸시는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일을 필요 이상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과거의 경험이,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정치, 선거 욕심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기에

허황된 망상에도 더 한심하고

위협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저 망상의 하나라고, 실현 가능성 없는,

전혀 날 위협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기자.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 시달리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내가 나를 괴롭히지는 말자...


병원은 온갖 잡생각을 내려놓는 훈련에,

마음 수양에, 득도를 하기에 적합한 장소다.



아침부터 또 히스테리가 시작됐다.

양말 신겨라, 바지 입혀라, 집에 가야겠다...


"의사도, 주변에서도 내가 우울증인 것 같다고

했을 때 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난 우울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우울증인가 싶다.


이렇게 갇혀서 내 말은 다 부정당하고,

여기서 이렇게 계속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다.

하루를 살아도 집에서 맘 편히 살고 싶다.


엄마도 잘못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하는 건 다 안 된다고 하고 아니라고 한다.

밤에 소변이라도 보려면 자는 엄마를 깨워야 한다.

이게 사는 거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버지 심정이 이해가 됐다.

엄마의 심정도 이해가 됐다.

이참에 아버지와 터놓고 대화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뇌를 다시신 분이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뇌에서 오류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내가 틀릴 수 있겠다는 점을 인정하셔야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본인이 틀린 게 뭐냐고 따지셨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지셨지만

아직도 몇 가지 착각하시는 게 있어요.

아버지는 몇 억을 잃어버렸다고 하시는데

계좌 모두 확인해 드렸잖아요.

말씀드릴 건 많지만 절대 믿지 못하실 테니

더 말씀 안 드릴게요.

(정치 이야기는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말씀 꺼내실 때마다 걱정 많은 엄마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주변 사람들은

아버지를 진짜 환자 취급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스스로 인정을 하셔야 됩니다.

퇴원이 능사가 아니에요.


아버지는 쉽게 말씀하시지만

솔직히 퇴원 이후가 더 걱정입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누굴 만나야 된다,

나가겠다고 하시는 아버지인데

주변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는 상황에서

엄마가 어떻게 마음을 놓으시겠어요.

아버지가 택시라도 잡아 타고 나가시는 날엔

끝입니다. 경찰 연락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아버지의 반박, 또 나의 반박이 이어졌다.

이제 논쟁보다는 설득이 필요한 시점.

나는 화제를 전환했다.


"아버지, 옆방에 귀여운 할머니 아시죠?

제가 식판 반납하러 갔더니 그 할머니께서

여사님 식판 정리하는 걸 도와주고 계시더라구요.

여사님께서 고마워서 '감사합니다.' 하시니

할머니가 '제가 감사합니다.' 하시는 거예요.

같이 걸어오면서 제가 여쭤봤어요.


'할머니는 뭐가 감사하세요?'


그 귀여운 할머니께서 웃으며 말씀하시더라구요.


'매일 밥 갖다 주시는 게 얼마나 고마워~

저분 덕분에 우리가 밥 잘 먹지~'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감동, 기쁨, 슬픔이 있더라구요.

처음엔 병실에서 무슨 그런 게 있겠나 싶었는데

지내보니 여기서의 삶과 세상이 또 있더라구요.


밖에서 저도 눈 뜨면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다시 숙소 가서 자는 것의 반복이에요.

오히려 병원에 와서 느끼는 게 더 많기도 해요.

어디에서나 인생은 계속되고

삶의 의미도, 행복도 계속되는 것 같아요.


내가 꼭 어떤 것을 이뤄야,

어떤 상태에 이르러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디에든 행복은 있는 것 같아요."


어찌보면 진부한 말이었지만 진심이었고,

지금 아버지 상황에 꼭 드리고 싶은 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누워서

조용히 내 말을 듣고 계셨다.


"아버지가 처음 쓰러지신 날,

그때 쓴 일기를 다시 봤어요.

아버지의 모든 기억, 능력이 사라지더라도

감동받는 능력만은 남아있길 기도한다고...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꽃, 시, 누군가의 말에도

감동받으셨고 어떤 상황에도 유머러스하셨어요.

참 감사했습니다.

저는 그게 진짜 아버지라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무슨 감동이 있고 재미가 있고

행복이 있냐고요?

아버지는 그걸 찾아낼 수 있는 분입니다.


제가 만약 아버지라면, 또 엄마라면

이곳에서 귀여운 할머니와 더 대화 나누며

할머니의 삶과 생각에 대해 더 듣고 싶고

그걸 써서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요.


이 상황이 힘들고 괴로울 수 있지만

이 특별한 경험과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게 다가갈 거라 믿습니다.


삶에서 의미 없는 순간은 없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그 의미를, 감동을

캐치하실 분입니다.

이곳에서, 이 시기에 겪으신 일들을

멋지게 재탄생시키실 거라 믿습니다."


긴 시간 동안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열정을 다해 말씀을 드렸고,

아버지는 생각에 잠기신 듯했다.

아버지는 내 말을 얼마나 알아들으셨을까?

어찌됐건 내가 드리고 싶었던 말들을

다 하고 나니 마음은 후련했다.



어느덧 엄마가 교대하러 오실 시간이 되었다.

외출을 달고 아버지와 터미널로 마중을 나갔고

부모님과 같이 밖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아버지는 어느 때보다도 농담을 많이 하셨고

많이 웃으셨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휠체어를 타고 온 환자와 그 가족들이

뭐 저리 웃을 일이 많을까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할 정도로.


10년 전쯤, 내가 강사가 될 거라고 했을 때

"니가 무슨 강사냐"며 면박을 주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오늘 내 강의(?)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내 장황했던 말들이

아버지의 뇌리에 박혔기를.


오늘 아버지의 그 많은 농담과

웃음의 이유가 나였다면

아마도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강의,

아버지가 내 인생 최고의 수강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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