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강하다고 생각했다.
잠시뿐인 평화와 행복일지라도
또다시 퇴원. 그리고 입원.
이번엔 광주에서 장흥으로.
목사님, 시라소니 집사님이
장흥에 있는 재활병원에 먼저 자리를 잡으셨고
공기 좋고 시설 좋다며 추천을 하셔서
멀긴 하지만 우리도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아버지도 아는 사람이 있어야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실 것 같았고
무엇보다 광주 병원은 바로 앞이 도로라서
마음만 먹으면 택시를 잡아탈 수 있어
아버지가 계속 탈출을
시도하시는 게 골칫거리였다.
장흥 병원은 산골이라
탈출 걱정이 없다는 게 좋았다.
내 차와 엄마 차 두 대가 움직였다.
엄마는 기름이 없다며 주유소에 가자고 하셨다.
광주 병원 앞 셀프 주유소에 도착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뒤따라온 엄마가 쩔쩔매고 계셨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
한 번도 안 해봤어~"
지금껏 30년을 운전하셨으면서
셀프 주유 방법을 모르셨다고?
엄마는 직원이 넣어주는 주유소만 찾아가셨단다.
셀프 주유소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셨단다.
겁나고 무서워서...
난 엄마는 강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강했다.
아버지와 지금껏 살아오신 것 자체가 그 증거다.
두 아들을 서울로 보냈다. 아버지 도움 없이.
게다가 아버지가 벌인 사고의 모든 뒷감당까지
혼자 온몸으로 막아내신 분이다.
하지만 엄마도 일흔이 넘었다.
지금 보니 엄마는 강하지 않았다.
여리고 약한 엄마가 그저 견뎌왔던 것이었고
그것을 내가 몰랐을 뿐이다.
내가 모르니 엄마는 잘 견디고 강하다며
편하게,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저렇게 어떻게 지금까지 버텨오셨을까.
저런 엄마에게 지금 떨어진 숙제는
얼마나 크게 다가올까.
얼마나 겁나고 두려우실까.
장흥에서 다시 완전체가 뭉쳤다.
장흥에서 다시 만난 시라소니 집사님이
날 반겨주셨다.
"우리 민이, 힘들어서 어쩌까~
애들 보고자파서 어쩌까~
우리 민이가 스타여~
내가 팔만 좀 괜찮으면
엄마도 가뿌라고 하고
내가 아버지 보믄 될 것인디..."
아침 병실 예배가 다시 시작됐고
아버지는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셨다.
이곳 분위기는 광주와는 많이 달랐다.
시골 마을에 온 것처럼 편하고 정겨웠다.
코로나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것처럼
저녁이면 사람들이 복도 로비에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대화를 나눴다.
시라소니 집사님이
병실에 들어오시며 말씀하셨다.
"양귀비를 먹었드만 저녁은 못 먹겄구마~"
양귀비? 병실분들이 깜짝 놀라 쳐다봤다.
"양귀비라? 어디서 누가 양귀비를 줬는디?"
"요 앞에서 아짐들이 주던디?"
"양귀비를 줬다고라~"
"양귀빈가 뭐신가... 달달한 거~"
"양갱?"
"응~ 양갱~"
시라소니 집사님은 항상 2%가 부족하다.
아직도 코로나를 '코레라'라고 하신다.
저녁을 먹은 후 소화도 시킬 겸
아버지를 모시고 복도 로비로 나가니
어르신들이 이미 많이 모여 계셨다.
"오메, 이라고 이쁜 아들이 있으까?"
한 할머니께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이거시 햇밤이여. 없어서 못 먹어~
학생 더 먹어~"
한 할머니가 햇밤을 까주셨고
옆에 계신 할머니는 옥수수를 주셨다.
"학생, 옥수수도 좀 먹어봐~"
"학생 맞제? 애기 아빠는 아닐 거 아니여~"
할머니들이 나를 둘러싸고
신기하다는 듯 환대해 주시니 마치 내가
시골 마을에 나타난 외국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
"저 결혼해서 아들 둘 있습니다."
"워매, 애기 아빠여? 뭔 일이다냐~
그래도 그냥 학생이라고 하께이~"
우리 대화에 끼시진 않았지만 옆에 앉아
계속 관심을 보이던 할아버지께도
할머니는 옥수수를 건네셨다.
"아저씨~ 옥수수 잔 먹어봐~"
휠체어에 앉아 말없이 미소만 짓고 계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입을 여셨다.
"우리 집에도 아저씨 하나 있어~"
'아저씨' 얘기를 듣고
집에 계신 할아버지가 떠오르셨나 보다.
순수하고 귀여운 할머니는 배시시 웃으시며
나에게 약봉지를 하나 건네셨다.
"까줘~"
어르신들 사이에 있는 잠깐 동안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착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야외로 나가서 걷자고 하셨다.
요즘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셨는데
나에게 자랑하고 싶으셨나 보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마주본 채 양손을 잡고
춤을 추듯 조심스레 같이 한 발씩 걸었다.
"발을 끌면 안 된다.
걸을 때는 발을 10cm는 들어야 된다.
뒤꿈치를 정확히 딛고
발끝은 가려는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
알겠냐? 다시 해보자. 한번 해봐라.
군대 갔다 온 사람은 조금만 연습하면
할 수 있을 거다."
아버지는 내게 걷는 법을 가르치고 계셨다.
아버지는 진지했다.
나 역시 웃음을 참으며 진지하게 임했다.
"힘들지? 좀 쉬어라."
아버지는 그것 조금 걸으시고는
숨을 헐떡이셨고 이마엔 땀이 흥건했다.
"무릎 잡고 일어나기 한번 해봐라.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무릎을 누르면서
일어나면 된다. 너 오늘 엄청 피곤할 건디?
솔직히 힘 무진장 들지?"
아버지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걸
본인이라서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걷기'와 '앉았다 일어나기'를 쉽게 해내는
아들을 보고 적잖이 놀라신 듯했다.
우린 잠시 쉬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엄마는 지금 걷고 싶어서 어쩌까~
나랑 손잡고 걷는 걸 제일 좋아하는데...
엄마한테 전화해봐라."
자기만의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아버지가 제일 속 편하겠다 싶었다.
"이따 엄마한테 전화 또 드려라.
엄마는 니 목소리 듣는 거 좋아하신다.
그러면 편안히 주무실 거다."
좋은 순간에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를 생각하는 아버지를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장흥으로 병원을 옮긴 후
아버지가 많이 안정되신 것 같아 다행이다.
아버지도 이곳이 마음에 드신 것 같았다.
"시골 사람들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여기 계신 분들 다들 점잖고
특히 남자 어르신들 보면 신선 같다.
나이든 사람들한테 배울 게 많아."
이 평화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늘 걱정과 긴장 속에 사시는 엄마가
이 순간만큼은 마음껏 누리셨으면 좋겠다.
잠시뿐인 평화와 행복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