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또 짐을 더 짊어지셨다.

당신은 지금 편안하게 별일 없이 지내고 있는가

by 설작가

"왜 살아! 죽어!
이렇게 살 거면 죽으라고!"

병원 화장실에서 울려 퍼진 고성에
머리털이 바짝 곤두섰다.
여자의 칼로 찌르는 듯한 고성과
"퍽! 퍽!" 구타당하는 소리,
남자의 울음소리가 복도까지 울려 퍼졌다.

하필 아버지는 그때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고성이 울리는 화장실에
아버지를 모시고 들어갔다.

장애인 화장실은 문이 열려 있었고
아마도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은
우리가 들어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의 머리와 등을 세게 때리고 있었다.

바닥에 소변이 흐른 걸로 보아
남자는 변기에 앉아 소변을 보았고,
실수로 소변이 변기 밖으로 흐른 것 같았다.
물론 바지에도 온통 소변이 묻었다.

아마도 이 같은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테고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부인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린 것 같았다.

보호자는 더 이상 보호자가 아니었다.
가장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로 돌변했다.

아버지가 소변을 다 보시자
못 본 척 급하게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에 옆 눈으로 슬쩍 보인 건
어디선가 찾아낸 빗자루를 집어 들고
남자에게 달려가는 여자였다.

휠체어를 밀고 가는 내 뒤통수 뒤로
또다시 "퍽! 퍽!" 하는 소리와
남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아파서 우는 걸까,
처량해서 우는 걸까.

내가 개입해서 말렸어야 했나.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말리는 게 맞는 걸까?

간병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 알기에
저러는 여자도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어떤 말 못 할 사연이 있을까,
하루하루 얼마나 지옥 같을까 싶기도 했다.


아침부터 소름 끼치는 광경을 목격해
하루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아버지를 존중하며 잘 버티고 있다.

남들은 왜 간병인을 쓰지 않느냐고 묻지만
우리 가족에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고
엄마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들은 이런 우리 가족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도 그런 엄마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평생 속 썩여온 아버지를
어쩜 저렇게 모실 수가 있을까?
어쩜 저렇게 아버지밖에 모를 수가 있을까?



뇌를 다친 환자들 중
아버지처럼 존중받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게 우리 가족의 분위기이고
거창하게는 가풍, 문화인 것 같다.

하지만 가끔은
이게 맞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아버지가 고집을 부리며 힘들게 할 때,
그런 아버지에게 쩔쩔매는 엄마를 볼 때,
눈물, 한숨, 한탄, 걱정으로 가득한
엄마의 전화를 받을 때...

엄마가 이렇게 고통받는 것이,
가족들의 삶이 아버지로 인해
이렇게 휘둘리는 것이 맞는 것인지...

최근 여건이 바뀌며
뭔가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이 요새 갑자기 일이 바빠져
그 자리를 내가 메우게 되었고
이런저런 일이 겹치며
주말 3주 연속 내가 간병을 하게 되었다.

내가 힘든 건 아무 상관없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너무 미안했다.
주말부부로 주말에만 볼 수 있는 남편인데
3주 내내 얼굴도 볼 수 없으니...

아내는 내게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이런 삶의 불균형 상태가 길어지면
말 못 할 불만이 조금씩 쌓이고
결국 다른 곳에서 조금씩 금이 가고
모두가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봤던 그 간병인도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긴 간병의 시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3주째 간병을 마치고 돌아온 월요일,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간병인을 구하자고.
주말 간병인이라도 구해보자고.

지금까지는 괜찮지만
몇 년이 될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상태가 지속되면 괜찮지 않을 수 있다고.

엄마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간병인을 쓰지 않는
우리 가족이 독특한 거라고.

이 상황에 가족 모두가 희생하고 있지만
정작 아무 희생도 하지 않는 건
아버지뿐이라고.
아버지도 불편과 희생을 감수하셔야 한다고.

처음에 엄마는 절대 안 된다로 시작해
끙끙 앓는 소리와 한숨 소리만 내시더니
나중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난 전화가 끊긴 줄 알고 몇 번을 확인했다.

"알았어. 생각해 보자."

엄마의 풀 죽은 목소리.
내가 또 엄마를 죄인으로 만든 건가.
엄마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숙제를 안겨드린 건가.

하루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언제까지 병원에 계실지,
그게 몇 년이 될지 모른다"는 말은
엄마에게 너무 잔인한 말이었다.

희망을 붙잡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엄마에게 절망을 보여드린 건 아닌지.

이 말을 엄마가 먼저
꺼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내 입에서 먼저 나오니
나도, 엄마도 더 상처받는 것 아닐까
하는 괜한 생각도 들었다가

그래도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길 잘했다는,
아내도 내심 서운하고 힘들었을 텐데
결과를 떠나 중간에서 내 역할이
필요한 타이밍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공은 엄마에게 넘어갔다.
엄마는 며칠을 고민하다 전화를 주셨다.
한 달에 한 번만 오라고.
나머지는 엄마가 감당하겠다고...

결국 엄마는 또
엄마가 짐을 더 짊어지는 쪽을 택했다.
결국 한 달에 한 번을 기본으로
상황에 맞게 중간중간 찾아가기로 했다.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세상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만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나도 모르게 우산을
받쳐주고 있었을 뿐이었다.

당신은 지금 편안하게
별일 없이 지내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분명 주변의
누군가가 우산을 들고 있을 게다.


<드라마 대사 속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다> 중에서...


엄마는 본인 어깨에 비를 조금 더 맞으며
우산을 나에게 기울이셨고
난 늘 그렇게 살아왔다.

가족과 웃으며 즐겁게 보낸 오늘,
내 뒤에 우산을 들고 계신 엄마를 기억하자.

나도 엄마, 아버지, 아내, 아이들,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언제든 우산을 받쳐주는 사람이 되자.
티 나지 않게, 등 뒤에서...

이만 글 마무리하고
엄마한테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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