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었던 감정도 눈물과 함께 사라지고...
목사님과 시라소니 집사님이
곧 퇴원하신단다.
두 분은 시라소니 집사님 고향인 장흥에 있는
한 재활병원으로 함께 옮기기로 하셨다.
(한 병원에서 3개월까지만
입원이 가능해 계속 병원을 옮겨야 한다.)
목사님과 아버지는 옆에서 보기에
불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는데
이쯤에서 두 분이 헤어지는 게 잘 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목사님과 관계가 좋았다.
아버지는 목사님을 잘 따랐고
목사님도 늘 아버지의 상태를 체크하고
기도해주시며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하지만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데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 같다.
오랜 시간 병실 생활을 함께 하며
각자 말 못 할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발단은 목사님의 기도였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설선생
인지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정신이 돌아올 수 있도록
은혜와 기적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일로 아버지는 목사님이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을
정신병자 취급했다며 맘이 상하셨고
어찌어찌 겨우 사태가 봉합되었으나
앙금은 깊게 남았다.
이후 목사님은 기도에
아버지의 '인지'는 언급하지 않으셨지만
목사님 특유의 '구체적인' 기도는 계속됐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시라소니 집사,
드디어 팔이 코까지 올라왔습니다!
이제 오줌줄이 터지는 기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시라소니 집사님은 소변줄을 차고 계신다.)
시라소니 집사, 지금까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유출과 과거 신상털기까지...
하나님께 이렇게 세세하게 보고하지 않으셔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실 텐데...
이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목사님 편을 들었다.
"하나님도 나이가 솔찬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실 것인디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제~"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는 목사님
험담을 더 자주 늘어놓으셨다.
우뇌 손상이 오면 비판적 성향을 보인다는데
원래 비판적이었던 성격이 더 강화된 것 같았다.
"목사님이 너무 돈을 밝힌다."
"목사님은 참견이 심하다.
모든 분야에 자기가 최고인 줄 아신다."
"사람들한테 뭐라고 말하고
다니시는 줄 아냐?
내가 처음에는 말도 못 하고
인지도 떨어졌는데
본인 기도로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광고를 하고 다닌다."
아버지는 가끔 목사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비판하거나 비꼬기도 하셔서
옆에서 보기 조마조마할 때가 있다.
목사님은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데
병 때문인지 밤에 자주 악몽을 꾸신다.
"으악!!! 저리 가!!!"
목사님은 이날도 악몽을 꾸신 건지
병실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셨고
그 소리에 병실 사람들이 다 깼다.
"워매, 또 무서운 꿈 꾸셨는갑네~"
"목사님, 괜찮하요? 꿈이여, 꿈~
또 뭔 꿈을 꾸셨으까~"
"누가 총을 들고 쫓아오네.
나를 죽일라고..."
"오메~ 총을 들었어? 무서웠겄네~
얼른 다시 주무시쑈~"
병실 분들도 자다가 놀라셨을 텐데
모두 목사님을 걱정해 주셨다.
오직 한 사람, 아버지만 빼고...
아버지는 누워서 혀를 끌끌 차셨다.
다음날 아침 목사님 얘기를 꺼내시며
"매일 저렇게 누가 죽이려고
쫓아오는 꿈을 꾸는 걸 보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돈 자랑, 자식 자랑이 무슨 소용이 있어.
얼마나 불행한 삶이냐.
목사님이면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뭐가 무섭고 뭐가 걱정이라고..."
특히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부딪쳤다.
안 그래도 선거에 나가겠다고 난리신데
연일 뉴스에 정치 이야기가 나오고
병실에서도 정치로 논쟁이 붙으니
항상 조마조마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환자들이
병실 침상에 앉아 정치로 싸우는 모습이라니...
정치가 사람을 살기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망치는 것이 정치고,
진짜 환자를 만드는 것이 정치였다.
난 이곳에서 정치에 학을 뗐다.
병실에 있는 동안 제발 정치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를 맘 졸이며 기도했다.
하지만 또 정치 관련 논쟁이 일어났고
아버지가 목사님께 던진 한 마디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목사님은 공산주의자 같은 생각을 하시네요"
발끈한 목사님은 아버지에게 따졌고,
서로 몇 합이 있은 후 병실에 냉전이 시작됐다.
정치는 결국 목사님과 아버지 사이를 갈랐다.
병실에 봄이 찾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겨울이 와버렸다.
하지만 이대로 목사님과 헤어질 순 없었다.
며칠 뒤 아버지는 목사님께 사과했다.
"그때 많이 기분 상하셨죠?
목사님이 저를 많이 생각해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그때 상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상해 있네."
목사님은 병실 사람들 앞에서
공산주의에 대해 10분간 설명을 해야
기분이 풀리겠다고 하셨고
(참 목사님 다운 해법이다.)
결국 병실 분들 앞에서 긴 변론을 마치고서야
두 분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목사님 퇴원 전 마지막 일요일.
병원에서 목회를 주관하시는 목사님이 계신데
이번엔 특별히 병원 예배를
우리 병실 목사님이 주관하기로 하셨다.
목사님이 퇴원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 목사님께서 배려해주신 것 같았다.
그날 아침 우리는 매점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고, 모두 예배에 참석했다.
우리 병실 분들은 병실을 돌아다니며
오늘 예배는 우리 목사님이 설교하시니
다들 참석하라고 전도를 하고 다니셨다.
예배 중에도 큰소리로 "아멘!"을 외쳤다.
믿음의 "아멘"이라기보다는
응원의 "아멘"이었다.
목사님은 만감이 교차하시는 듯
설교 중간중간 몇 차례 눈물을 흘리셨다.
예배를 마친 후에 병실에서는
오늘 설교 말씀이 정말 좋았다며
너도나도 목사님을 띄워드렸다.
이렇게 끈끈한 분위기의 병실이 있을까.
하지만 진짜 이별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목사님과 시라소니 집사님이 퇴원하는 날.
목사님은 본인이 보시던 성경책을
아버지께 선물하셨고,
아버지는 일어나서 목사님께 걸어가
목사님을 안고 엉엉 우셨단다.
병실 분들 모두 잘 참아왔던 울음이
걷잡을 수 없이 터지며
병실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그동안 해묵었던 모든 감정도
눈물과 함께 씻겨 내려갔다.
우리 병실 멤버, 참 좋았는데...
이제 또 어떤 분들과, 어떤 일이 있을지...
회사 인사발령 시즌처럼 붕 뜬 느낌이다.
이번엔 스님이 오시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