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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작가 Mar 11. 2024

대체 며느리가 뭐길래

<아내와 글쓰기 프로젝트> #4. 며느리

아내와 글쓰기 프로젝트 시작 이래

난이도 최상의 주제가 떨어졌다.

'집', '운전', '바다'도 쉽진 않았지만

이번 주제어를 받고는 머리가 하얘졌다.


며느리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는 엄청난 악플과

구설수에 시달릴 수 있는 민감한 주제.

내가 바라본 며느리로서의 아내 이야기는

잘 쓰면 자랑질에 염장 지르는 글이 되겠고

잘못 쓰면 염하고 장을 치르는 글이 되겠다.

아들의 배우자가 될 미래 며느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러쿵저러쿵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꼰대스럽고 불편함을 주는 글이 될 수 있다.


며느리가 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와

엄마와 아내 사이 처신 잘해야 하는 중간자적 한계,

며느리가 아니고는 말할 수도, 말해서도 안 될 것 같은

글쓰기 쫄보의 생존욕구까지 겹치며

계속되는 자기 검열로 연신 백스페이스만 눌러댄다.


대체 며느리가 뭐길래...


#1. 며느리는 죄가 없다.


왠지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며느리'라는 단어엔

결론적으로 비하의 의미가 없었다.

이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노를 유발하는 가설은 있었다.


첫째, 며느리의 옛 표기 형태의 하나인 '며나리'.

'며=>메(밥)'+ '나리=>나아오다'

'밥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며느리가 되었다는 것.


둘째, '며늘(기생하다)'+'아이'로

'내 아들에 딸려 기생하는 존재'라는 해석도 있었다.


얼핏 그럴듯하게 릴 수도 있겠으나

둘 다 증거자료가 없는 가설일 뿐이라 한다.

단어 자체엔 아무런 비하 의미가 없지만

시어머니에게 핍박받고, 시집살이를 하고,

남존여비 사상에 물든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었던 며느리들의 애환이 쌓이면서

용어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긴 것 아닐까?


영어 표현이 오히려 깔끔하게 느껴졌다.

"daughter-in-law"

법적으로 딸과 같다는 건데

건조하지만 심플하니 논란은 없겠다.


아무튼 결론은 '며느리'는 죄가 없다는 것!



#2. 시어머니도 죄가 없다.


며느리를 검색하다 보니 별 희한한 식물 이름이 있었다.


며느리밑씻개


개불알꽃과 쌍벽을 이루는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해괴망측한 식물 이름 1위가 아닐까 싶다.

놀랍게도 이는 한 식물의 정식 이름이다.


볼일을 본 후 화장지 대신 풀잎을 썼던 옛날,

시어머니가 볼일을 본 며느리에게

잔가시가 있는 풀을 밑씻개로 던져주었는데

그 잔가시 많은 풀이름이 며느리밑씻개가 되었단다.

아무리 며느리가 미워도 그렇지 이건 도가 지나쳤다.


하지만 이는 일본에서 넘어온 명칭이라고 한다.

이 풀의 일본 명칭은 '의붓자식 밑씻개'인데

우리 학자들이 식물명 정리과정에서 일본인이 만든

명칭을 그대로 도입하며 이름을 우리 실정(?)에 맞게

의붓자식을 며느리로 바꾼 거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이간질하는 둔갑된 스토리에

애꿎은 시어머니만 악역을 도맡게 됐다.


의붓자식이건 며느리건 간에

내가 낳은 자식 아니면 색안경 끼고 못마땅해하는

못된 심리가 반영된 이 괴팍한 이름을

그대로 계속 쓰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식물의 치욕과 억울함은 누가 달래줄 거냐고~

사람도 이름이 마음에 안 들면 개명하는데

식물 이름도 개명 좀 해 줍시다!



#3. 가해자 시어머니, 피해자 며느리


못된 시어머니와 핍박받는 불쌍한 며느리 구도는

지금도 드라마의 주된 소재가 될 만큼 통상적이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있을까 싶은 이야기의

꽃이름이 있었으니 '며느리밥풀꽃'이다.


먼 옛날, 홀어머니를 모시던 효자에게 시집을 간 며느리가 있었다. 마음씨 고운 며느리는 지극정성으로 시어머니를 모셨으나, 며느리한테 아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는 늘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 호시탐탐 내쫓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밥이 잘 되었는지 보려고 밥알을 입에 넣었을 때, 그것을 본 시어머니는 어른보다 먼저 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며느리를 때리고 구박했다. 시어머니의 매를 맞다 넘어진 며느리는 입술에 밥풀을 붙인 채 죽었다. 그 후 며느리의 무덤가에 붉은 입술에 밥풀 두 알을 입에 문 듯한 모양의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이 이 꽃을 보며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불렀다.
(출처 : 한국민속 대백과사전)


하다 하다 살인사건까지...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며느리밥풀꽃'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진 걸 보면

구박하는 시어머니와 핍박받는 며느리는

어느 한두 가정의 얘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시어머니들, 좀 적당히 좀 합시다!"

"며느리한테 잘 좀 해줍시다!"

"아들은 중간에서 뭐 했니?"


당시 이런 얘기를 면전에 대고 하긴 어려웠을 테니

이야기를 만들어 우회적으로 표현한 건 아닐까?

요즘엔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고

며느리 눈치 보는 시어머니도,

엄마와 딸처럼 잘 지내는 집도 많으니

앞으로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만들어질지 궁금하다.



#4. 가을 전어 냄새를 맡고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 이유는? 


전어철만 되면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전어 굽는 냄새에 며느리가 돌아온 이유는 뭘까?

여러 설들이 있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첫째, 맛있는 전어 먹을 생각에.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얘기지만

가장 설득력이 떨어지는 얘기이기도 하다.

참다 참다 괴로워 집을 나간 며느리가

고작 전어에 군침이 돌아 집에 돌아오다니...

며느리를 아주 단순한 본능적인 사람으로,

그만큼 별 것 아닌 일에 집을 나간 사람으로

치부하는 며느리 비하발언이 아닐 수 없다.


'며느리'가 아닌 '전어'에 초점을 맞춘다면,

전어가 그만큼 맛있는 생선으로 생각했나 보다.

조선 정조 때 실학자인 서유구가 쓴 <난호어목지>라는

우리나라 생선 도감에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 좋아하므로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고 사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부른다'라고 나온다고 한다.


'전어는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속담도 있는 걸 보면

전어가 그만큼 맛있다는 건데

이걸 또 며느리 없을 때 먹을 건 뭐람...

남의 집 식구는 빼고 우리 집 식구만 챙기는,

며느리는 '남의 집 자식'이라는 심리가 깔려있다.


이는 '며느리발톱'이라는 용어에도 나타나는데

새끼발톱에서 갈라져 나오는 작은 발톱을 말한다.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 내 아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발톱과 달리

혼자 떨어져 있는 발톱을 며느리발톱이라 부른단다.


나도 며느리발톱이 있는데 그 용어는 이번에 알았다.

유전적인 부분도 있고, 하이힐을 신는 여자들,

운동을 많이 하는 남자들에게 많이 나타난단다.

파충류, 조류, 강아지, 고양이에게도 나타난다.

이젠 이 발톱을 볼 때마다 애틋한 감정이 들 것 같다.


'너도 소중한 내 자식이야.

잘 다듬어 보살펴 줄게.'



둘째,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이건 갑자기 뭔 소린가 싶은데

전어 타는 냄새가 시체 타는 냄새랑 비슷해서란다.

집 나간 며느리가 시체 타는 냄새를 맡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고 돌아왔다는...


이는 일본 설화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일본의 한 수령이 결혼 상대로 한 처자를 지목했는데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아버지가 딸을 위해 꾀를 내어 관 속에 전어를 넣고

화장을 해 "내 딸은 죽었다"라고 속여 딸을 지켰단다.


사랑을 지키려는 딸,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 이야기가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시어머니 화장 냄새를 맡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며느리 이야기로

변질되었다는 건 믿거나 말거나지만 씁쓸하다.



셋째, 며느리가 농사 걱정에.


전어가 가장 살이 오르는 시기는 한가위 무렵인데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를 맡으며

봄에 심어놓은 농사 걱정에 돌아온다는 설이다.


전어 먹고 싶어 환장한 일차원적 며느리,

시어머니 죽음을 안도하는 비정한 며느리에서

이번엔 그래도 집안 걱정에 발을 떼지 못하는

마음 약한 며느리 설이다.



넷째, '이제 전어 다 구웠나 보다' 설이다.


이건 내 지인이 얘기했던 건데 설득력이 있다.

잔칫날 구워야 할 전어가 잔뜩 쌓였는데

그간 집안일 몰빵에 지친 며느리는

파업을 선언하고 근무지를 이탈한다.


전어 구울 며느리는 안 보이고 손님은 몰려들자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가 전어를 다 구웠다.

냄새를 맡고 전어가 다 구워졌을 무렵

며느리는 유유히 집으로 복귀했다는 설이다.


어떤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지는

각자 마음 가는 대로겠지만

내 생각엔 전어 장수들이 홍보성으로 만들어 낸

어그로 카피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요리할 때 자주 찾아보는 유튜브 채널에도

이런 비슷한 어그로 썸네일이 넘쳐난다.

이만하면 성공한 어그로의 원조격이 아닐까?



#5. 그밖에 알게 된 사실들


이밖에도 며느리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다.


쥐며느리는 왜 쥐며느리일까?

며느리가 시어머니 앞에서 죽은 듯 꼼짝 못 하는 걸

보고 쥐며느리라 이름 붙였다는 설이 있는데

실제 쥐며느리는 위협을 느끼면 죽은 척을 하고

쥐는 쥐며느리의 포식자란다.


쥐며느리가 대표적 갑각류라는 것도 놀라웠다.

곤충보다는 새우나 게에 가까운 절지동물이라는데

실제 구워보면 구운 새우와 맛이 비슷하다고...


어렸을 때 많이 봤던 공벌레

쥐며느리의 일종이긴 하나 차이가 있었다.

외관상으로는 갑옷을 입고 있으면 쥐며느리,

갑옷 벗고 맨몸이면 공벌레다.

공벌레는 몸을 공처럼 말 수 있지만

쥐며느리를 공벌레처럼 말았다간 등이 부러진다.


공벌레가 영어로 roly-poly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 유명한 티아라의 롤리폴리가 공벌레였다니...

사실 노래에서 롤리폴리는 '오뚝이'를 뜻하는데

roly-poly toy는 장난감 오뚝이라는 뜻이다.



논란을 피하겠다고 잔머리 굴려

며느리에 대해 조사한 글을 쓰다 보니

며느리 '알쓸신잡'이 되어버렸다.


알면 알수록 사연 많은 게 며느리였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잠재적 악역으로 오해받는

억울한 시어머니의 말 못 할 입장도 있을 것이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

못된 시어머니와 핍박받는 며느리의 구도를

보편적 법칙, 일반적 사실인양 틀에 가두고

당연시하는 많은 용어와 관용표현들

별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시어머니만 하나 늘었구만"


얼마 전 회사에서 자료 내라 어째라 피곤하게 굴기에

나도 모르게 쉽게 내뱉었던 말이다.

나 역시 억울한 시어머니 양산에 일조하고 있었다.


시어머니-며느리 간 부정적 인식의 고리를 끊어내고

억울한 피해자 양산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요상한 식물 이름 개명은 학자들에게 맡기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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