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설의 에세이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감정 기록"
29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학교에선 공부에 집중했고, 대학 시절엔 아르바이트와 진로 설계로 바빴다. 졸업 후에는 회사에 들어가 치열하게 커리어를 쌓아왔다.
배움과 성장을 좋아하는 성향 덕에 늘 뭔가를 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제대로 ‘쉼’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짧은 여행 정도가 전부였다. 가만히 쉬는 일이 어색했고, 어쩌면 나는 ‘쉼’을 잘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금세 불안해졌고,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9월 말, 캐나다로 워홀을 떠나기 전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텝 & 한 달 살기’를 실현해 보기로 했다. 나에게 잘 맞는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결국 하늘이 고생한 나에게 준 선물처럼 꼭 맞는 곳을 만나 스텝으로 일하게 되었다.
초반 일주일은 정말 힐링 그 자체였다. 제주도의 자연은 숨만 쉬어도 위로가 되었고, 마음이 절로 편안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해도 괜찮은 걸까?’ 쉬고, 눕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한 순간인지, 아니면 도피는 아닌지 스스로 자꾸 묻게 되었다. 사실 제주에 온 건, 새로운 시작 전 잠시 멈춰 서서 ‘쉼’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려는 의도였는데 말이다.
그동안 해왔던 마케팅이나 기획 같은 지식노동을 잠시 멈추자, 문득 ‘나는 지금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콘텐츠 제작은 계속하고 있었지만, 회사 일과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 사이에 스스로 벽을 세우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제주에서의 모든 날이 마냥 좋았던 건 아니다.
행복과 낭만, 힐링이 가득한 공간에서도 나는 여전히 서울에서 하던 고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결국 나를 불편하게 하는 건 환경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어떤 감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선택한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쉼이라는 시간은 결국, 나를 가장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좋은 순간과 나쁜 순간이 반복되겠지만, 미래는 미래에 맡기기로 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온전히 느끼고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완벽한 쉼이 아니어도 괜찮다. 잠시 멈추고, 나를 들여다보고, 지금을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이젠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