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ire Mar 15. 2018

6. 스페인으로

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스페인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애초에 장소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몇 해전 동생과 바르셀로나에 다녀왔는데 그때 그 기억이 아주 좋게 남아 스페인엔 꼭 다시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터였다. 그 당시 이런 저런 이유로 더 길게 머물지 못했던 아쉬움을 이번 기회에 해소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바르셀로나를 다시 방문하기로 했고, 스페인까지 간 김에 언젠가부터 궁금했던 발렌시아도 함께 방문하기로 하였다. 


스페인에 가기로 결정하고 스페인어를 배운 것은 아니었다. 영어 이외에 다른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우려는 열망은 계속해서 갖고 있었던 나의 희망사항 같은 것이었다. 처음엔 제일 배우고 싶어했던 불어를 배웠다.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인터넷 유료 강의를 결제하는 열의를 보이며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내 기준에서 불어는 혼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언어라는 생각이 들어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문법도 문법이지만 발음이 너무 어려웠다. 내가 상상하는 불어가 내 입을 통해 나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 급하게 노선을 변경했고, 그렇게 선택하게 된 것이 스페인어였다. 스페인어도 배우고 싶어했던 언어 중에 하나였다. 불어를 배우고 싶은 정도에는 못 미치지만 스페인어도 매력적인 언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또 과감하게 스페인어 인터넷 강의를 1년치 끊고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는 중이다. 불어에 비해 읽고 쓰기가 쉽고, 불어를 통해 충격적인 문법에 한 번 크게 얻어맞은 상태라 이번에는 다소 생소한 문법을 꽤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을 공부하다 보니 이왕이면 좀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그것도 스페인으로 목적지를 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중요한 일 같아 보이지 않는데, 그 여자는 아이를 한 달이나 할머니에게 맡기고 꼭 거기에 가야만 했대? 완전 이기적인 여자 아니야?” 


이런 말을 들을 것을 이미 예상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듣게 되었을 때 상처를 안 받을 것 같진 않다. 속이 상할 것 같긴 한데, 애초에 모든 사람이 나의 편 일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당연히 있다.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설득해가며 나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른 것이니,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아서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타인을 의식하는 것은 얼핏 비슷해 보일 수 있겠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는 행동이다. 나는 타인의 목소리엔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지만, 그들을 의식하며 행동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타인에겐 미더워 보여도 내게 뜨겁다면 그것은 뜨거운 것이 맞다. 처음엔 뜨겁지 않아도 곧 뜨거워 질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육아만큼 힘든 것이 없는데, 육아만큼 그 노고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우는 것과 싸는 것 빼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아주 작은 사람을 혼자 먹게 하고, 걷게 하고, 생각하고, 말하게 하는 일이 그냥 시간이 흘러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은 아이를 키워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아주 많은 집중력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육아를 하는 동안엔 다른 것을 함께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란 것도 아이를 키워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내 자식을 건강하고 바르게 키워가는 내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불현듯 ‘그럼 나는?’ 이란 생각과 함께 찾아오는 공허함도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다. 나는 이 감정을 무시하며 살 자신이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 맞지만, 그 한 가지의 가치만 추구하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어도 내가 원래 갖고 있는 나의 모습을 고집스럽게 고수하며 살아갈 것이다. 사실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혼 여성 나아가 기혼 남성들도 이렇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혹은 아빠라는 타이틀과 더불어 내 안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나’라는 타이틀도 함께 데리고 살아갔으면 한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로 사느라 열심히 돌볼 수 없었던 ‘나’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다. 짊어지고 있었던 여러 가지 생각들과 질문들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 놓지 못하고 쥐고 있었던 미련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내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누군가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나의 여정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나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