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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Aug 20. 2020

나의 adhd 이야기

나는 성인 adhd입니다.

나는 늘 우울했다. 어린 시절도 우울했고, 청소년기에도, 20대에도 늘 우울함이 도사렸다. 그것은 가끔 나를 찾아와 한동안 머물렀고, 그러다 떠나갔다. 무엇을 계기로 왔는지도, 무엇을 계기로 떠났는지도 모른다. 대단하게 오지도 않았고, 대단하게 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어느 순간 쌓인 먼지처럼 인지하게 되었다가, 어느 순간 닦인 먼지처럼 사라지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빡! 하고 오는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산후 우울증'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나 대신 봐줄 사람도 없었고, 워낙에 우울감이 자주 방문하던 나라서 또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넘겼다. 당시 우울증 약을 처음으로 복용했다.


그때 성인 adhd에 대한 글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러면서 성인 adhd 진단 방법 등의 설문을 체크해보았다. 나는 꽤 가까웠다.


그래서 성인 adhd가 의심이 된다고 의원에 가서 상담을 했다. 그러자 그 닥터가 "성인 adhd는 없습니다. adhd는 아이들에게서 나타나고, 성인이 되면 사라집니다."라고 하였다. 그렇게 내 의심은 깔끔하게 무산되었다. 그래서 그러려니 넘겼다. 당시 2013년 정도였던 것 같다.


이후 모 방송인이 '나는 성인 adhd다'라고 발언하며 또다시 성인 adhd 관련 글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인 adhd를 겪거나 약을 복용한다는 글을 찾기란 매우 어려웠으며, 늘 어느 순간 끊어져 있었다.


나는 이해했다. adhd의 특성임을 느꼈다. 꾸준히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내기에 adhd의 열정과 관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게다가 해당 글이 수기의 형식을 갖고 있으니 사진이나 그림 자료가 없는 글이라 검색 노출이 빈약했을 것 같다. 그러니 반응도 없이 혼자 글을 적는 것은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 나는 당사자에게 댓글을 남겼지만 돌아오는 메시지는 없었다. 지금까지도. 부디 그분이 잘 지내시기를 나는 늘 기원했다. 왜냐하면 나름 나에게 도움과 희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그분을 이어가는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후 나는 늘 나를 의심하며 살았다. 하지만 늘 갈팡질팡했다.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이 산만할 때는 '나는 adhd인가 봐~!'라며 전전긍긍했다가, 또 '이 정도면 정상적이지~!'라며 만족했다가. 그것을 수없이 반복하며 갈팡질팡 해댔다. 마치 닻을 내리지 못하고 정박한 배처럼. 그렇게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그러다가 종합병원에서 전문 검사 장비로 adhd 검사를 통해 수치적으로 adhd가 맞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제야 안개가 걷히듯, 눈에 끼인 막이 걷히듯. 그렇게 명쾌해졌다. 그래, 나는 성인 adhd가 맞다!


의심했고, 알고 있었는데도, 무척이나 아팠다. '진단'으로 '확정'된다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인지 깨달았다. 맞다. 나는 진정으로  충격 먹었다. 모든 사고가 중단되고 기초 생리 활동과 연명을 위한 활동만 할 뿐. 내 머릿속은 심해를 유영하고 있었다.


점차 나 자신에 대해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adhd야. 그래, 나는 adhd였어. 나는... adhd였어. 그랬어. 그랬는데... 그랬던 것뿐인데... 그게 다인데....'


억울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지난 세월이 억울했다. 남들과 다른 나를 바라보며, 내가 부족하고 내가 바보 같아서 이렇게 살게 된 거라고. 그렇게 나를 자책하며 살았다. 몇 년 전에 그 의사에게 항의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느냐고. 내 진단 결과를 그 얼굴에 뿌려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장 큰 원망은 부모님이었다. 나는 언제나 뒷전이었던 엄마, 나를 견디지 못하고 늘 체벌로 일관했던 아빠. 아빠는 나를 복날의 개처럼 그렇게 두들겨 패고는 했다. 그리고 모든 불화의 원흉은 나라고 했다.


"너 때문에"


나 때문에 엄마와 오빠가 맞아야 했고, 나 때문에 엄마는 몸에 멍이 빠질 날이 없었다. 늘 내가 원흉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만 없으면 될 것 같다고 늘 생각했다. 나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오점 투성이인 나를.


그래서 그렇게도 우울했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도 나를 지우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도 나를 죽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도....




"힘들었지? 많이, 아팠지? 무서웠지? 고생했어. 참고 견디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견뎌내 줘서 고마워. 여태 아무것도 모르고, 이런 나를 끌고 와줘서 고마워. 나를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줘서.... 진짜 진짜 고마워!"


이제 내가 나를 위로해줄 차례였다. 그 누구도 내게 사과를 하지 않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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