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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Aug 13. 2020

왕따 엄마 이야기

거기서는 부디 잘 지내길 바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나는 그녀에게 특별히 잘못을 한 일이 없다는 거다. 나는 그냥 '지나가는 여자 1'이었는데, 왜 그녀는 나를 소리 없이 공격했던 것일까?



선생님이 시간이 부족했다는 말을 하실 때마다 6세에 옮겼어야 했다는 후회를 하고 또 했다. 6세까지 다니는 원에 보내다가 7세에 원을 옮기니 1학기 동안 적응하고, 방학과 2학기를 즐기고 나면 졸업이다. 게다가 5,6세에 또래 친구가 형성이 된다. 성격에 따라서 7세에 투입되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 힘든 과정일 수 있다. 그래서 둘째는 5세까지만 보내고 6세에는 원을 옮기리라 마음먹었다.(같은 어린이집이었다)


유치원 옮기는 문제로 친한 언니와 상담을 했다. 언니네 둘째와 우리 첫째가 동갑내기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정말 좋다고 강추였다.


그 과정에서 그녀(A)를 만났다. 나는 낯을 조금 가려서 어색하게 인사했지만 애써 반가운 척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말을 몇 마디 섞자 A가 불편했다.


내가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자 자기는 아이들이 너무 좋고 사랑스럽다며 왜 아이가 힘드냐고 내게 묻는다. 할 말을 잃었다. 말 문이 막혀 "아 네..."가 전부였다.


아들 셋인 그녀 앞에서 아이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둘째가 떼쓰는 것이 힘들고, 첫째가 말을 안 듣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런 말을 해봤자 이해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은 남편이 집에서 쉬고 있으니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물론 친한 언니에게 말한 것이었다.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A가 "나는 남편 너무 사랑하는데? 남편이 집에서 쉬면 좋지 않아요?"라고 했다.


남편이 있으니 세끼 식사를 다 차려야 하고 외출도 눈치 보이니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나는 우리 남편 너무 좋은데~"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 말해서 뭐할까 싶어 다른 이야기로 돌렸다.


몇 차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서 단절과 거부를 느꼈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살갑게 다가가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만 유지할 뿐이었다.


그러다 그녀와 함께 같은 유치원의 학부모가 된 것이다. 그녀의 셋째, 친한 언니의 둘째, 나의 첫째가 모두 동갑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학부모 모임 대표라고 했다.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결정됐다고 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것도 2학기에 알았다. 나만 제외하고 1학기 동안 학부모 모임을 해왔던 것이었다.


나는 당시 친했던 언니가 내게 그런 줄 알았다. A의 의도가 그 언니와 나 사이의 이간질이라면 성공적이었다. 친한 언니는 수술로 한동안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A는 2학기 학부모 모임에 나와서 내 연락처를 물으며 자신도 경황이 없어서 연락을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들 모임에 나갔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언니 동생 사이로 친목이 형성되어 있었다.


물론 내게 친절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분들은 있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나와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는 엄마도 있었다. 그중에는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며 아침마다 등원 버스를 기다릴 때 같이 기다리던 엄마(B)도 있었다.


도대체가 아침마다 인사를 해도 시큰둥하거나 늘 울상이거나 어딘가 아프거나 한 모습으로 나타날 때마다 왜 저렇게 불만스러울까 싶었다.

예전 어린이집 모임에서도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엄마들과 차도 마시고 하던 나로서는 붙임성 없고 틈 조차 없는 B를 쉽게 대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바쁜가 보다 생각했더랬다.


런데 알고 보니 자기 나름 다른 엄마들과는 교류하며 지낸 것을 알고서는 빈정이 상했다. 매일 아침 나와 마주치며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자기는 왕따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친한 언니가 내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자기도 A와 B에게 좋지 않은 일을 당했다며, 뒷말하는 타입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황당한 것이, 대체 왜 나를 따돌렸냔 말이다. 내가 그녀들에게 실수라도 했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내가 우울했어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는 그런 A와 B에게 동조하거나 방관한 엄마들도 나쁘게 보았다. 그중에 두셋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게 살뜰하게 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그저 나를 피하는 사람, 나와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따돌림당하는 약자로 보이니 나를 멀리한 사람. 그리고 무리에 서서 나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멀리 내다보던 사람. 그 시선이 기억에 남는다.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나의 상황조차 모르고 무리에 속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생리적으로 기질적으로 이런 무리 속에서 힘의 균형관계를 잘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분명 나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비롯하여 A와 B 앞에서도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를 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녀사냥은 아주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온전히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유치원 졸업 후 나는 그들이 진학하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았다. 다른 학군으로 보냈다. 내가 스스로 나를 마녀사냥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얼마 후 A가 이사를 가며 아이들 모두를 전학시킨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이사 오기 전에도 이런 이간질 문제로 잡음을 일으킨 전적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부에서 갈등을 겪은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도피하는 것 같았다.


내가 있을 때는 내가 공공의 적이거나 씹기 좋은 대상이었기에 A의 세상일 수 있지 않았을까. 무슨 말로 나를 도마에 올렸는지 모를 일이지만 베푼 대로 돌아오리라.


B는 급해졌다. 자기 집에 엄마들을 초대하고 무언가 잘해보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하지만 편을 잃은 그녀는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자기편을 만들까? 이미 사람들은 그녀의 성향을 파악했을 텐데.


그 진흙탕 싸움에서 빠져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가만히 있는 나를 왜 쥐고 흔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세상 쉬운 나 같은 사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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