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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Aug 11. 2020

거절의 발견

우울증 이후 처음으로 외부일정을 잡았다

계획표를 쓰는 일상이 이어졌다. 아주 쉬운 계획표라서 그냥 일상생활을 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전처럼 우울하다고 누워있다면 지킬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하나하나 계획을 쓰고, 그 계획이 지켜졌는지 리뷰한다. 그리고 그것이 잘 된 것인지 평가한다. 평가는 언제나 후했다. 목표는 나에게 가혹하지 말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밖으로 나가는 일정을 정했다. '은행에 가서 통장 정리하기'였다. 친구의 꾐에 넘어가 다단계에 손을 댄 나는 큰돈을 손해 보았다. 그래서 통장은 거들떠보기도 싫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방치했다. 이제 통장 정리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했다.


밖에 나갔는데 남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주민등록 등본을 떼다 놓아줄 수 있냐는 것이다. 안 된다고 대답했다. 거절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누구의 부탁이든 무턱대고 들어주었다. 거절이 힘들었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핑계를 대며 피해 갔다. 그런데 내가 'NO'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까짓 게 뭐라고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아, 나도 거절을 할 수 있구나!'


거절한 이유는 간단했다. 남편이 퇴근길에 무인발급기에서 등본을 떼와도 된다. 그리고 나의 계획표에 따르면 주민센터에 들릴 틈이 없었다. 다른 일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거절을 한 날, 처음으로 계획표가 왜  필요한가에 대해 깊게 깨달았다. 거절할 수 있는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고, 수락할 때도 시간 계산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일정에 쫓길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거절했다고 해서 원망을 듣지도 않았다. 남편은 "그럼 내가 퇴근길에 들렸다 갈게."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동안은 거절하면 원망의 말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요청을 다 들어줘야 해서 나 자신을 돌볼 틈도 없었고, 때로는 누군가의 요청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내 아이들까지 희생시키고는 힘들어했다. 그러면서 엄마 힘들게 한다고 짜증내기도 했다.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 돌아보았다. 나는 그동안 남을 위해 살고 있었다. 나를 위해,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위해 살지 않았다. 내가 희생하는 만큼 내 가족이나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희생해야 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압박감에 시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에게 작은 틈도 주지 않는 아이들의 요구에 점점 지쳐갔다. 나의 하루를 계획하고, 일상에 여유와 틈을 주며, 나를 적당히 쉬게 해 주고, 움직여야 할 때는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삶에 대한 바른 자세이고, 내 삶을 소중히 여기는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아이가 ADHD라서 힘들다거나, 친구를 믿고 돈을 투자해 날렸다거나. 그런 것은 우울해지는 원인이 되지 못한다. 불씨가 되는 사건일 뿐이었다.


그런 사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 그것이 나의 다음을 결정지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감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나 자신을 대하는 나의 태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드디어 내 마음에도 희망의 꽃씨가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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