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인생이었다. 20대 중반에 시집와, 농사일을 도우며, 온갖 집안일도 내 차지였다. 시어머니는 제사도 제대로 못 지내셔서 내가 상차림을 다 했다. 그래도 시집살이와 구박 신세는 면하지를 못했다.
첫아이를 임신해 입덧이 심했다. 게다가 먹는 대로 체해서 다 토해냈다. 먹는 것이 부실하니 임산부의 상태도 좋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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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낳았지만 건강하지 못하다며 구박을 받았다. 아들은 먹는 대로 설사를 했다. 그래서 젖이 넘쳐도 분유를 먹였다. 분유를 먹이니 설사가 멎었다. 없는 살림에 비싼 분유를 사 먹여야 하니, 그것 또한 부실하게 낳은 어미 탓이 되었다. 그래도 툭하면 아픈 아이는 평생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둘째로 낳은 딸은 다행히 건강했다. 뭐든 잘 먹고 잘 아프지도 않았다. 그래서 시아버님이 막내를 끼고 살았다. 어린 딸이 할아버지의 예쁨을 독차지하자 아픈 아들이 걱정되어 품에 끼고돌았다. 그러자 아들을 그렇게 나약하게 키운다며 구박을 받았다.
시동생 뒷바라지를 했다. 시동생은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물을 먹었다. 하지만 땅 팔아 등록금 대봤자 변변찮게 취직도 못 했다. 그러다 늦장가를 가 동서가 생겼다. 하지만 동서는 시어머니로부터 시집살이를 받지 않았다.
시동생이 어느 날 행방불명이 됐다. 그러자 동서는 아들 둘을 혼자서 키울 수가 없다며 이혼하겠다고 했다.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낼 수 없다며 시어머님은 두 아이를 데려왔다. 자연히 내 몫이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시동생이 돌아왔고, 잡음 끝에 재결합을 하고, 아이들을 데려갔다. 그때부터 명절에 동서네 식구가 왔다. 나의 수고는 그들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은 결혼 첫해에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농사를 지었는데, 나중에 작은 가게 하나를 내서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툭하면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장사하던 새간을 때려 부쉈다. 눈이 시퍼렇게 멍들어 장사하기 일쑤였다.
아이들도 너무 심하게 맞고는 해서 걷지 못할 정도로 때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정서 불안에 시달렸다는 것을 나중에 커서야 알았지만, 그때는 사느라 바빠 돌아볼 틈이 없었다.
장비 사업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녀들 어찌어찌 다 키워 대학 보내고 나니 시어머님이 알츠하이머 초기 증세를 보이셨다. 낮시간에는 어머님 혼자 계셨는데, 자꾸만 냄비를 홀랑 태워먹고는 하셨다. 이러다 불내지 싶었다.
아이들이 취직하고 나서 정말 돌볼 사람이 없고. 사업은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몇 년 후 어머님은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보다 전에 내게 암 선고가 떨어졌다. 간암 말기라서 손 쓸 도리가 없다고 했다. 주변을 정리하라는 의사의 말이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열심히 살았더니 돌아오는 것은 사형 선고다.
그런데 다른 검사에서 간암이 먼저가 아니며 대장암이 첫 발원지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치료에 희망이 보인다고 하였다. 당장 치료를 시작했다. 젊어서 시부모께 구박받으며 보험회사 다니다가 들어놓은 보험 덕분에 보험금이 잘 나왔다. 그래서 비보험 치료에도 가계가 흔들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자녀들도 모두 취직했으니 나 자신의 암투병만 신경 쓰면 되어서 마음의 짐이 덜어졌다.
지지부진하게 고통스러운 치료의 시간이 흘렀다. 젊어서는 자식들 뒷바라지한다고 눈코 뜰 새 없이 일하고, 이제 한시름 놓나 하니 암이 발병하고, 다들 여기저기 여행 바람이 불던 때에 나는 병원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산이나 올랐다. 그러기를 10여 년, 세월이 지나 중년을 뛰어넘어 노년 층에 접어들어서야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러면 뭐하나. 내 몸은 늙고 늙어 머리도 새고, 관절도 삐그덕 거리는데.
그런데도 살아가야 하니 나가서 소일거리 삼아 일을 했다. 남편은 집에서 소일거리 하며 바가지를 긁었다. 친구나 친지가 찾아오지 않는 정 없는 사람이라 주변에 사람이 없다. 그러니 자연히 나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나는 '정법'이라는 공부를 시작하여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편이었다.
내가 나가서 돈을 벌고, 집에 와서도 내가 밥 하고 빨래하고, 집안 정리에 소일까지 다 내 몫이다. 그런데 내가 취미 삼아 하는 공부도 못마땅해하니 미칠 노릇이다. 오히려 내가 화내지 않으니 내가 신선 아닌가.
젊어서 폭력과 폭언으로 나를 병들게 하더니 나이 먹고서도 이렇게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공부하는데, 저는 가정을 깨트리려는지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니 내가 저를 인내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때려 놓고 돈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꼴이다. 이 꼴을 보려고 내가 지난 세월을 참아왔나.
늙어 나이 들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까 싶어 참고 견뎌온 세월이 무색하다. 오래 남지 않은 세월, 이제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련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살아도 듣고 보고 남길 시간이 적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마음 가는 대로 살다 보면, 그것이 곧 노래가 되지 않으려나. 이만큼 살아온 것도 충분히 소설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