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의 가족이라고 매일 슬퍼야 하나요?

수많은 웃음과 슬픔을 반복하며 시간은 지난다

by 기품있는그녀

엄마가 암 선고를 받던 날, 나는 내가 이대로 기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찔한 감각을 느꼈다. 모든 감각이 무뎌지면서, 절망이 나를 휘감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귀에서 '꽝~!' 하는 천둥소리 같은 게 들렸다.


처음엔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나의 슬픔을 잊었다. 모두들 자기 삶으로 돌아갔고, 나만 홀로 남아 슬퍼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어떤 모습을 요구했다. 아니, 요구하지 않았지만 고정된 시선이 있었고, 내가 그것을 벗어날 때면 그들은 내게 묻는다. '요즘 어머니는 좀 어떠시냐'고.


그것이 안부인지 걱정인지 아니면 나를 일깨워주는 건지 모를 일이다. 집에 가면, 또는 엄마나 가족과 통화를 하고 나면 나는 다시 또 엄마를 걱정하게 되고, 슬퍼지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직장으로 사회로 돌아와서 다시금 힘내어 보는 거다.


개구리 소년 사건. 피해자의 부모는 범인으로 몰리기도 했고, 사람들의 냉대에 몰리기도 했다. 그리고 차갑게 잊히기도 했다.

자식 생각에 괴로워 술이라도 마시면, 자식 잃어 놓고 술이나 퍼마시고 있다며 욕먹었다. 무엇을 해도 그들이 생각하는 '자식 잃은 부모'의 모습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비난했다. 왜 어째서 프레임을 씌우는지. 자기들 멋대로.


내가 슬픈 기억을 끌어안고 지내면 나는 언제나 슬플 수밖에 없다. 잠시 현실에 집중하며 잊어보는 거다. 그런데 내가 잊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내게 끊임없이 동정의 시선을 보냈다.


그것은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였다. 걱정이 부담스럽다고 거부할 수도 없었고, 마치 나에게 아무 아픔이 없었던 사람처럼 무디게 행동 수도 없었다.


잊었다. 잊으면 푼수 없이 웃을 수 있었다. 웃으면 또 슬픔이 몰려왔다. 그렇게 수많은 웃음과 슬픔을 반복하며 시간은 지나나 보다.


21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장동익'씨와 가족 (아이콘택트)

경찰의 고문에 의해 허위 사실을 자백한 장동익 씨. 그는 21년간 살인범으로 살았으며, 현재 모범수로 출소하여 재심 청구중에 있다.

장동익 씨의 동생은 형님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발 벗고 나서신 어머님의 뒷모습을 보며 살아야 했다.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냉기 어린 시선도 견뎌야 했다. 형님의 시간에 메여버린 어머님을 지키고 형의 딸과 형수님을 지키며 살았다. 그에게 그의 삶은 없었다. 그래도 불평할 수 없는 건, 그 누구보다도 당사자인 형님이 가장 힘들 테니까....


진정 걱정이 된다면 함께 울어라.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아파해라. 그게 아니라면 그냥 잊게 해주는 것이 도움 아닐까. 잠시라도 숨 돌리고, 자기 자신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짜 도움 아닐까.


속도 모르고 정신없게 한다는 타박을 받을 자신이 없다면, 환자의 안부를 묻는 것도 속 없게 그만 하면 좋지 않을까? 가족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고, 삶이 가족 위주로 돌아가고 있을 그 사람에게, 적어도 친구 하나 정도는 본인의 안부를 물어봐주면 어떨까?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고, 잘 지내냐고.


그러니까 가족들도 자기 자신을 하루에 한 번은 돌아보길 바란다. 자기 자신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고된 하루를 잘 버틴 자신에게 위로와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 것이다.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내게 해줘도 괜찮 않은가.


가족이 아프다고 해서 매 순간 슬프지는 않다. 결국 어떤 환경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 모든 순간이 슬프다면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 기운을 내야 하고, 슬픔과 아픔은 잠시 뒤로 물려 어도 괜찮다. 잊지 않으니, 그리고 잊을 수 없으니 괜찮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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