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여도 제사상은 차리라고요?

그것이 도대체 왜 엄마의 전유물인지

by 기품있는그녀

엄마는 대장암 말기 환자였고, 지속적으로 항암치료와 민간요법 치료, 식단 조절, 건강식 섭취, 요양병원의 요양 생활을 반복했다. 하지만 민족 대명절이 오면 요양병원은 한산해진다. 저마다 자신의 가족 곁으로 가서 명절을 나니까.


엄마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절이 되어 가족이 모였다. 당연히 엄마는 습관처럼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셨다. 나나 오빠나 각자 직장으로 인해 일손이 되기는 부족했다.


명절은 결국 '엄마'라는 존재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가. 엄마가 죽어 이 세상에 없으면, 나나 오빠가 상차림을 준비해야 할까?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엔 북적북적 가족이 모이는 것이 좋았고, tv에서 방영하는 명절 프로그램과 영화가 좋았고, 어른들로부터 받는 용돈이 좋았다. 하지만 이젠 우리 가족끼리 치르는 명절은 큰 의미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명절 음식을 장만해야 했고, 명절날 아침 제사상이든 차례상이든 상차림은 계속됐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고, 디저트류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데, 아직도 상에는 전과 생선, 과일과 떡 등이 올라서 과거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노동력을 엄마가 담당하고 있었다. "항암치료 끝났으니 이제 네 일 해야지?" 뭐 이런 느낌적인 느낌? 나는 그런 상차림을 보는 것이 거북스러웠다.


엄마는 점차 상차림을 간소화시키셨다. 구매해서 때울 수 있는 것으로 최대한 대체하셨다. 한 접시를 위해서 갖가지 전을 하던 것도 이제는 관두셨다.


내가 결혼을 한 이후로 나는 우리 집 제사상을 보지 못한다. 내가 와서 도와드리지도 못한다. 그리고 엄마는 완치 판정을 받은 암환자였던 사람이므로, 노쇠한 몸을 이끌어 다시 또 제사상을 차리신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제사상을 차렸다. 아마 엄마 나이 30대 초반쯤이 아닐까. 이제는 다 늙은 몸으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이것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당연한 그 요구에 신물이 난다.


아버지가 혼자가 되면 어떨까? 오빠네로 제사가 넘어갈까? 몇 년째 명절이고 언제고 찾아오지 않는 작은집 식구들은, 명절에 대체 무엇을 하고 지내실까? 왜 그들은 지키지 않아도 되고, 큰며느리는 30여 년의 세월 동안 그 멍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일까.


이런 문화는 우리 세대에서는 끝을 맺지 않을까 싶다. 명절이라고 즐기지도 않을 음식을 대량으로 하는 수고는 이제 덜어도 되지 않을까. 다른 문화가 그 자리를 대체하더라도, 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자들은 아쉬워하지 않을 것 같다. 내 몸이 아파도 치러내야 하고, 누구 하나 도와줄 일손이 없어도 해내야만 하는 고된 노동 같은 명절.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행복이라면 우리는 서서히 그만두려는 의사를 내비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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