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

새 수영지 기고

by 김두선

오늘로 한 달 하고도 두 주가 지났다. 갖가지 동원된 공구가 제각각의 소리를 질러댄다. 단단히 새 단장을 하고 입주할 모양이다.


공사를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날 때쯤, 굉음에 시달리다 못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뿌연 석면 가루와 본드 냄새가 재채기와 눈물을 자아냈다. 흰색으로 덧입혀진 문은 제자리를 이탈하여 벽면마다 기대서 있고 신발장이며 싱크대를 들어낸 자리, 벽지며 장판을 걷어낸 자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도대체 뭘 한 거지, 생각하며 얼마나 지나면 공사가 끝이 나느냐고 물었다. 며칠이면 된다고 인부들이 답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참을 걸 그랬나 하고 돌아왔지만 그 며칠이 한 달을 지난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말에서 정도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습관 속에 담긴 의미는 더욱 그렇다. 요리를 할 때면, 재료는 적당한 크기로 썰라 하고, 양념은 적당한 양을 넣으라고 한다. 약속을 할 때도 언제 한번 만나자, 하면 통하고 돈을 빌려가며 약속한 그 ‘며칠’은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피차에 착오를 막으려면 구체적으로 말하는 언어습관이 세워져야 한다. 하지만 몸에 밴 것을 바로잡기가 어디 쉬운가. 나도 인부의 그 ‘며칠’이라는 말에 사오일 참으면 되겠거니 여기며 지레짐작하고 돌아왔다. 채신머리없이 또다시 올라가 다그치기도 그렇고...


도대체 집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사전 공지나 양해 한 마디 없이 이처럼 이웃을 소음 속에 방치하다니. 생각이 뻗치면 머리 위로 뜨끈뜨근한 김이 올랐다.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FM 방송을 크게 틀었다. 마침 진행자의 은은한 목소리로 편지 하나가 읽힌다. 우리 위층에 새로 이사 올 사람이 공사를 하는데 정말 괴로워 미치겠어요... 사연을 낭독하고 난 MC가 가벼운 웃음소리를 흘리며 이렇게 끝을 맺는다.


‘어쩌겠어요. 그냥 우리 집 공사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지금의 불편한 심사에 이런 사연을 듣게 되다니! 타이밍 한번 기막히다. 하지만 어쩌랴. 여전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드니 옹춘마니가 따로 없다.


머지않아 윗집은 깔끔하고 멋지게 단장될 것이다. 하지만 몇 달이 아니라 수십 년 세월 동안 깎여온 내 자태는 어떨까. 객쩍은 마음으로 내 안을 들여다본다. 팻말 하나 붙어있다.


내 마음은 아직도 ‘공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