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미션

김두선 | 수필과 비평사 '신인상' 수상 (2018)

by 김두선


‘절벽’ 시리즈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절벽, 이 두 글자를 붙이면 뭐든지 말이 되고 뜻이 통하는 시대다. 인구절벽, 청년 절벽, 결혼 절벽, 유리 절벽... 숱하게 생성되는 신조어들이 세월의 신산한 속살을 드러내어 아리다. 우리 집도 이 흐름에 가세했다. 평수 절벽.


지난해 6월, 십 수년의 묵은 먼지를 털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거품경제를 운운하는 시점에서 리스크가 크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납작 숨어 있던 나의 도그마가 그만 불같이 일어 작동하고만 것이다.


필로티 구조식 빌라 1층이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발코니 바깥, 햇살 머금고 반짝이는 초록 잎들의 난무였다. 뒤꼍에는 잎사귀를 늘어뜨린 꽃나무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그 아래로 키 작은 들꽃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담장에는 초록의 넝쿨을 벋치며 핀 백화등이 신부 손에 들려진 부케처럼 군집을 이루어 향기를 흩날리고 있다. 화분에서 길러낸 것이 아닌,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야생의 신선함이라니!


나를 유혹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안방 미닫이 창밖으로 좁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울타리 너머에는 갖가지 수목들이 난만하게 피어 있다.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너른 정원. 어느 쪽으로 몸을 돌려도 숲 속 같은 바깥 풍경에 취해 있는데 초록이 넌지시 내 마음을 흔든다.

"바로 네 집이야."



새로 장만한 집은 평수로 치자면 딱 절반이니 짐도 절반으로 줄여야 했다. 결단이 필요했다. 문득 세월 속에 묻힌 기억 하나가 기차처럼 질주해왔다.


스물여섯 되던 해였다. 수녀 지망생의 꿈을 가지고 3박 4일 동안 수녀원 견학 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 근교였다. 그런데 거기서 지내는 온밤 내내, 나는 흰색과 검은색의 건반 위에서 나비처럼 사뿐 대는 꿈을 꾸었다. 그즈음,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멋진 피아노를 장만했는데 아마도 이로 인한 정신적 억압 때문에 그런 꿈을 꾸었으리라. 수녀가 되면 아까운 내 피아노는 어쩌라고.


팥죽 한 그릇에 소중한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창세기 25장). 그가 바로 내 모습임을 깨닫는 것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흘 뒤, 피아노 하나에 연연했던 내 하찮은 소유욕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수녀원 문을 미련 없이 걸어 나오게 했으니까.


피아노 한 대가 뭐라고. 신중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었던 선택의 기로에서 그토록 물색없이 굴다니... 나는 이 일을 내 기억의 현미경 아래 두어, 두고두고 어리석음을 베어내는 표상으로 삼았다. 지극히 작은 것에 대한 소유욕일지라도 물질이 인간을 얼마나 끈질기게 묶으며 연연케 하는지를, 생생하게 가르쳐준 돈오돈수의 한 수였으므로.


지금 내 나이 이순. 피아노 한 대에 집착한 젊은 날보다 가진 것이 훨씬 많다. 짐이 많아진 이유의 대부분은 남에게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은 허영심 탓이리라. 하지만 이제는 장막의 생활을 취함이 더 멋스러울 나이가 되었다. 어느 날 죽음 앞에서, 움켜쥔 손아귀를 펴지 못해 눈 뜨고 끌려가는 시신 꼴이 되지 않으려면.


그렇다. 여행을 가벼이 즐기려면 최대한 짐을 줄여야 하는 것처럼 세상을 가벼이 떠나려면 버리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날들은 남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나를 거절하고,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신명 나게 살아봐야지.


이삿짐 선별작업이 시작됐다. 그릇부터 정리했다. 모양새로 진열해 두었던 것은 쓰임새의 유무를 따져서 미련 없이 버렸다. 유혹의 빛을 뿌리며 반짝이던 샹들리에는 해묵은 정을 얹어 출가시켰다. 다시 읽을 목적이 아니라면 장식 삼아 꽂아 두었던 책은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폐지로 처분했다. 사법고시 준비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남편이 손때 묻은 책을 버릴 땐 몹시도 아쉬워했지만 집이 좁다는 이유로 모른 척 외면했다. 의류는 2년을 기준으로 입지 않은 채 보관한 것은 모두 재활용센터로 보내졌다. 가전제품도, 가구도, 가치성보다는 필요성의 유무에 따라 충실하게 분류했다. 그이가 한 마디 얹었다.

“나도 버릴까 봐 무섭다.”



세월을 휘돌아 다시 내 집 마련의 미션을 완수하기까지는 다섯 번의 이사가 있었다. 첫 이사는 신혼 때 새 살림을 차렸던 전셋집에서 아파트로 옮긴 것이다. 내 아이가 주인집 눈치를 보며 마당을 밟게 할 수는 없다. 암팡진 맹세처럼 4년 만에 꿈은 이루어졌다.


두 번째 이사는 남의 어려운 사정이라면 한 가랑이에 두 다리를 끼고 나서는 우리 집 동홍 선생의 빚보증 때문에 일어났다. ‘초장 끗발, 파장 몽둥이 감’이라는 노름판의 한 수처럼 정든 보금자리를 잃고 이사 나던 날, 내 집 마련의 미션은 깊은 생채기가 되어 곱다시 떠 안겨졌다.


엎친 데 덮친다든가. 하필 그 시점부터 마른 솔가지에 불 옮겨 붙듯, 집값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내 집 마련의 미션은 갈수록 가망성이 없어 보였고, 대신 더 큰 전셋집으로 평수를 넓혀 가는 것을 위안삼아 두어 번 옮겼다. 그런데 더 이상 넓은 집에 사는 겉멋을 포기하고, 집 장만을 결심한 것이다.


십수 년 만에 다시 마련한 아담한 내 집. 動線이 짧은 것이 편하기만 하다. 거실에서 방향을 돌려 손을 뻗히기만 하면 대부분 필요한 물건이 손에 다 잡힌다. 정이 들어서 못 버린다, 는 알량한 감상은 전부 거절하고 최솟값으로 데려온 것들이라, 무엇을 어디에 두었는지 헤매고 찾을 일도 없다. 묵은 살림에 눌어붙은 물욕이 함께 버려졌다 생각하니 멱 감은 느낌처럼 마음마저 개운하다.


군것진 것 하나 없는 고졸한 거실 한가운데 벌렁 누워서 바깥을 감상한다. 사위를 숲으로 드리운 나뭇잎들이 나붓거린다. 바람을 안고 돌며 한바탕 춤판이라도 벌이나 보다. 내 맘이 알짝지근해진다. 멋지다. 다섯 번째 미션은 성공적이야.



김두선, 수필가, 신인상 '다섯 번째 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