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정밭에서

by 김두선


풀이 눕고 일어선다. 풀들은 흔들며 춤추며 몸짓으로 바람을 경배한다. 올 때마다 달라져 있는 풍광에 감탄을 연발하게 하는 곳.

이 기막힌 자연의 풍광을 글로 담아낼 수 있을까.



아치형 대문을 감고 오르는 장미 넝쿨. 도시 바깥 같은 이곳은 적당히 붙일 이름이 없다. 자연을 잔뜩 품은 너른 이곳을 옥상 마당이라고 하기에는 품격에 맞지 않고...

꽃밭? 정원? 아니 들판의 한 부분을 떠서 이곳으로 옮겨 놓은 듯하니 인위적으로 가꾼 정원도 걸맞지 않다.

차마 손 갈 틈이 없어서 어쩌다 묵정밭이 되었다는데, 나는 이곳에서 다듬지 않은 것의 자유를 만난다.


날 것이어서 좋은 것.

절로 되어가는 것.

우리 인간도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언어가 없었을 그때가, 어쩌면 지극히 인간적인 감성이 최고치로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



들꽃에도 다 이름이 있을 터인데 이름을 모르니 불러줄 수 없어 안타깝다. 휴대폰 렌즈를 들이대면 꽃 이름 검색을 할 수 있지만 늘 생각에만 그치고 그저 예쁘다고만 감탄한다.


‘만물작언이불사.’라고 했다.

만물은 절로 자라는 것이니 말을 지어 말을 만들지 말라는 노자의 말이다. 그저 눈으로 보고 감탄하고 어우러져 있으면 될 일을 일일이 이름을 붙여 구별할 것은 또 무얼까. 구태어 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이들은 제 날들을 채우며 피고 지고 한다.



애써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서 뒤로 물러서는 것. 굳이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두는 것.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사람에게 있어서도,이것이 추구해야 할 가치이자, 가장 인간적인 삶이 아닐까.



웃으면 드러나는 치아처럼 일렬로 늘어선 섬돌만 남겨놓고 정원이 풀로 뒤덮였다. 지난주 비 오던 날에는 지문만큼 차지한 땅에서 꼼짝없이 비를 맞고 고개를 숙였더니, 오늘은 햇살을 품으며 더욱 자라고 키를 높인다. 껏 발돋움한 풀들의 행렬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무구유언이다.


오늘따라 이른 여름 내음이 물씬 난다. 장미가 저리도 시들어 가면 날로 황국이 노란 꽃을 더 작렬하게 피울 터이다. 매실은 날로 통실해져 갈 것이고 연하디 연한 방풍나물은 성큼 방풍나무로 터를 잡을 것이다.



거뭇거뭇한 삭정이에 까치와 동박새가 쉬었다 가는 것도 한 폭의 그림이다. 죽어서도 쉼터를 내어주는 나무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줄 수 있을까. 지고 피는 것이 자연스러워 ‘자연’이라 이름한 것처럼, 나도 자연스레 살기를 추구함으로 이름 모를 꽃처럼 피우다 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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