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선생과 학생은 한 표, 나의 표도 어린이의 그것과 비중이 동등
서머힐은 자치권을 가진 학교이다. 공동체와 관계되는 모든 것들은 토요일에 열리는 학교총회에서 투표로 정해진다. 선생과 학생은 한 표만 행사하며 나의 표도 어린이의 그것과 비중이 동등하다.
서머힐의 자치제도에는 관료주의가 없다. 학교총회의 회장은 매주 바뀌는데 다만 지난 주의 회장이 다음 주의 회장을 지명한다. 우리의 작은 민주체제는 스스로 법칙을 제정하는데 이 법칙들은 매우 훌륭하다.
학교총회에서는 법칙을 통과시키는 것만 아니라 공동체의 전반적인 문제들에 관해서도 토론한다. 3개월마다 취침시간에 관한 규정이 공표 되는데 이 규정은 연령에 따라 다르다.
학교정부(學校政府)의 법칙, 즉 ‘모든 독재자는 엄격히 규제되어야 한다.’고 하는 법칙은 특별히 강조된다. 서머힐에서는 엄격한 학교에서처럼 동료 학생을 위한 비도덕적인 독재가 널리 퍼져 있지 않다.
대개의 경우 죄인들은 총회의 판결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판결에 복종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는 피고가 항소할 수 있다. 그러념 회장은 총회의 마지막에 이 사건을 한 번 더 다룬다. 항소 사건을 다룰 때는 처음보다 더 조심스럽다. 그리고 보통은 피고인의 이의를 참작하여 판결이 너그러워진다. 어린이들은 피고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때 실제로 판결이 불공평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정한 자유는 어린이 스스로가 그들의 공동생활을 이끌어갈 줄 아는 학교에만 있다. 위에 군림하는 ‘우두머리’를 모시고 있는 학생들은 절대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나는 학교총회가 일주일의 학과수업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총회는 대중 앞에서 발표력을 기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이다. 읽거나 쓰지도 못하는 어린이가 매우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자치제도는 어린이의 세계를 넓혀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어린이들이 만든 법률은 본질적인 것만 목표로 삼을 뿐,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것은 무시해 버린다. 시내에서의 행동 규칙을 만들 때에는 학교 밖의 좀 덜 자유로운 사회질서와 절충한다. 서머힐은 생활에 필요 없는 외형적인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있다. 따라서 시대를 앞서가는 공동정신을 갖고 있다.
서머힐을 처음 읽을 당시에 서머힐의 자치제도에 관한 내용에 매혹되었다. 당시 전두환 군부의 쿠데타에 의해 세워진 군부정권 치하에서 민주주의는 짓밟히고 있었다. 4.19에 관한 훈화조차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자유학교에 대한 열망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온전히 배울 수 있는 최고의 학교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담당한 학급에서도 서머힐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싶었다. 교사도 아이들도 동등한 무게의 한 표를 행사하면서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내가 담당하는 학급에서 학급회의에서 나도 대표를 선출하는데 투표권을 요청하였으며,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한 표로서 발언권과 의결권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담당한 학급을 넘어선 학교는 철저히 타율이 지배하는 체제가 학교였다. 학생 전체는 그들의 문제를 가지고 총회를 열어볼 기회를 가져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1984년에 한 학년에 16개 학급, 한 학급에 68명으로 구성된 거대 규모의 학교였다. 한 학년이 거의 110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학생 총회를 통한 민주주의 학습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렇다고 대의체계를 통해서 학생자치를 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지도 않았다. 대의원회의란 학교에서 의제로 제시한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 등 안건을 가결하고, 학교 측에서 마련한 빵과 우유를 제공받아 먹는 정도의 역할이었다.
심지어는 학급의 대표를 학기에 한 번 선출하는 것조차 80점 이상이라는 성적에 제한을 두었거나 징계를 받지 않은 경우 등으로 피선거권을 규정하고 있었다. 1989년 당곡중학교에 3학년 학급담임을 맡았다. 1학기 반장 선거를 앞두고 ‘정우당’이란 이름으로 이정우를 후보로 알리는 포스터가 붙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전선거 운동이었다. 사전선거 운동 등으로 분위기를 띄웠던 정우는 반장 후보로 추천되었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성적이 학교규정에서 정하는 점수에 많이 부족했다. 나는 정부회장 선거결과를 제출하는 서류에 성적을 허위로 기재했다. 허위로 기재된 내용은 담당자-생활부장-교감-교장의 결재 과정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우는 반장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성실하게 담당했다. 성적으로 반장 후보의 자격을 제한하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 것이었던가! 반장(회장)을 성적을 기준으로 제한하는 것을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차별을 금지한다는 행정지시가 내려오기까지는 이후로도 이십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학생들이 생활규정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시작한 것은 흔히 진보교육감이 등장한 2011년부터 부분적으로 가능하기 시작했다. 진보교육감이 등장한 이후, 서머힐에서와 같은 학생총회가 등장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학생자치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일부학교만 제한적으로 시도되었다.
학급에서의 생활규칙도 스스로 정한 규정에 의한 것이 아닌 학교규정에 따라야 하는 것들이었고, 그 규정이란 것이 어른들이 정한 것들이었다. 2011년 진보교육감이 지방교육자치의 수장이 된 후에야 학급 생활규칙을 학급 내에서 스스로 만들도록 하고 있고, 학생들의 지켜야할 학교규정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였다. 학생들 다수가 원하는 의견이라 해도 어른(교사, 학부모)들의 의사가 동등하거나 때로 더 많은 표를 가지게 하여 학생들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학교마다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비율이 저마다 다르다. 학생들의 의견을 50%, 교사와 학부모의 의견을 합하여 50% 정도가 된다면 어느 정도는 타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전농중학교에 근무할 때에 서상완 교장은 내게 학생자치 활성화를 위해서 생활부장을 담당해달라고 했다. 교장의 무한 신뢰에 바탕해서 학교폭력, 학생자치법정, 상벌점을 기초로 한 생활교육을 겸하여 학생자치를 담당하게 되었다. 학생회장 선거가 끝나면 학생회장에게 학생회 조직을 구성하여 대의원대회에서 승인을 받게 하였다. 이전까지는 학급의 정부회장이 모인 대의원대회에서 추천을 받아서 학생회 조직을 구성하였다. 교사들은 달라진 학생회 임원 선출 방식에 의아해 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전까지 있었던 ‘간부수련’이란 용어를 ‘임원 수련’으로 바꿨다. 학생회가 결정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업 60만원을 책정했다. 학생회 임원들에게 사업계획을 작성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부서별로 사업을 계획하게 하였다. 선도부가 없어졌고, 학생회가 교문에서 등교맞이를 하였다. 아이들이 습득한 물건을 보관, 전시하는 전시대가 마련되어 분실물을 찾게 하였고, 고민을 들어주는 또래 상담 활동이 운영되었다. 학생자치신문이 발행되었다. 학생회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사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토론하며 꿈을 꾸기 시작했다.
태릉중학교에 근무할 때에 학생회가 상설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저거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상설동아리인 학생회는 학생회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축적할 수 있었다.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사업을 고민하고 토론하여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방학을 앞두고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무대에 세워 끼를 발산할 수 있도록 ‘한 여름밤의 콘서트’를 운영하였다. 500원 밖에 안 되는 콘서트 입장료 수입금으로 네팔 난민 지원금, 소녀상 건립기금, 위안부 할머니 지원금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였다. 4월에는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서 편지쓰기, 엽서 전시 등을 진행했다. 학급회의를 앞두고는 안건에 대하여 설명하는 ‘태릉뉴스’를 영상으로 제작하여 방송으로 내보냈다. 실천에는 한계가 컸지만, 공청회를 거쳐서 ‘생활공동체협약’을 마련하여 실천적 과제를 선포하기도 했다.
시교육청의 노력에 의해서 학생자치활동에 지원을 하게 하여 민주시민으로의 성장을 도우려 한다. 하지만, 학생자치활동은 학생자치 담당교사의 역량, 학교장의 관심 정도에 따라서 자치 활동의 성과와 한계가 명백하다. 태릉중학교에 새로 부임해온 이○○ 교장의 지시에 의해서 ‘태릉뉴스’의 제작이 중단되고, ‘한 여름밤의 콘서트’도 운영시간이 단축이 되었으며, 매주 열리던 학생회 회의도 격주로 운영되었고, 학급회의를 거쳐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구조도 약화되었다. 학생자치담당교사가 기간제였기 때문에 학생자치활동을 약화시키는 교장의 지시에 당혹해했다. 학교장에게 생각의 일부를 전한 때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다음해에 학생자치담당교사는 새로운 기간제 교사로 대치되었다. 학생자치가 학생총회로 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학교장의 억압에 의해서 역량의 손실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학교를 떠나 퇴임을 하는 마음이 너무 무겁다. 학교장에 맞서 그들의 활동 역량이 손실되지 않도록 했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를 해본다.
다른 한편, 자치제도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학급회장, 학생회장 선거에 대하여 최근에 다른 생각을 해본다. 대표를 1명 선출하는 선거 방법이 민주시민으로의 성장을 지원하는데 매우 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기표대를 지원하여 선거를 체험하는 활동을 통해서 선거의 4대 원칙이라는 보통 선거·평등 선거·직접 선거·비밀 선거를 학습하는 과정으로서의 선거를 배우는 것은 의미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를 통한 정당 정치에 대응하는 시민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글을 쓰는 현재 연동형정당비례대표제가 선거제도의 개혁을 위해서 필요하다. 사표를 최소화하는 선거제도로서, 민심을 그대로 반영한 정책 선거제도로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어떻게 교육과정 안에 담아내어, 시민들의 삶을 반영한 국회 운영이 될 수 있는지를 학교에서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교사들의 집단 지성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징검다리교육공동체(사)가 중심이 되어 ‘모의 선거’를 진행하면서 정치교육을 하고 있지만, 별도로 선거 제도에 대한 활동적인 교육 내용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