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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르다 Oct 07. 2017

내가 아랍어를 배우는 이유

때는 2011년 여름. 대학교 3학년이었지만 전공선택 과목보다 교직이수와 회계세무학 복수전공 수업을 더 많이 들었던 나는 휴학하지 않고 내리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과 겹치는 과목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혼자 시간표를 짜서 수업을 듣고 혼밥을 먹는 등 혼자만의 학교 생활을 즐겼다. 길가다 마주치는 과 선후배들, 친한 친구도 있었지만 그땐 일부러 혼자 다니는 편을 선택했다. 물론 편하기도 했지만 조금은 외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2학년 때 독서실에서 읽은 ‘빼앗긴 얼굴’이라는 책이 아랍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아랍 여성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하루는 학교 내 국제교육원 근처를 지나갔다. 점심시간쯤 한국어 수업을 듣고 밥을 먹으러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나가는 외국인 친구들이 보였다. 그 중 히잡을 쓴 무리에 다가가 말을 걸었고 그게 아랍어를 배우게 된 결정적 계기로 발전할 줄 그땐 꿈에도 몰랐다. 물론 한국어로. 어떻게 말을 붙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이집트에서 온 '마이'와 '아맨'과 나는 그렇게 친해졌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다. 나도 그들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처음에는 순전한 호기심이었다면 일주일에 두세 번 함께 만나 한국어 숙제를 도와 주고 아랍어로 간단한 회화를 주고받기도 하며 아랍 문화에 대해 조금씩 선명하게 알게 됐다. 마이와 아맨이 한국을 떠나면서 아랍어를 체계적으로 배워봐야 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아랍에 대한 관심은 컸지만 상대적으로 아랍어 습득을 위한 사전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기본은 책이라는 생각으로 서울에 있는 대형 서점 몇 군데를 순회했다. 그러나 아랍어 초보자가 독학으로 공부하기에 마땅해 보이는 교재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아랍어 학원을 찾아 보았으나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학원은 괜찮은 곳이 많았지만 국내 아랍어 교육 시장은 수요와 공급 모두 죽어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그 와중에 아랍어 교육만 전문으로 하는 기관을 알게되었고 배우고 싶던 아랍어를 마음껏 배울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재미있었다. 지렁이처럼 생긴 글자를 외우고 쓰는 건 쉽지 않았지만 서툴게 나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씨쓰는 것도 신선했고, 선생님을 따라 기본 단어와 회화를 익힌 후 친구들 앞에서 아랍어 인삿말을 알려 주면서 으쓱하기도 했다.


쉽지 않은 도전, 아랍어 


아랍어를 배운 지 6개월까지는 그저 재미있기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초급에서 중급수준으로 뛰어 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듣던 대로 아랍어는 참으로 어려운 언어였다. 아랍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의 대화는 굉장히 빨랐고 수강생의 수준을 고려해 원어민 선생님들이 대화 속도를 조정해주어도 한 두번만에 그 뜻이 와닿지 않아 답답했다. 모음 표시를 하지 않아 단어를 외울 때마다 개운치 않은 발음을 가지고 헷갈리는 것도 번거로웠으며 한국어에는 없는 여성형, 남성형부터 복잡한 동사변화까지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일과 함께 병행한다는 핑계를 대며 복습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인텐시브 코스를 듣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완벽한 마무리를 하지 못하기도 했다. 또한 이집트 친구들과 나눴던 아랍어는 '암미야 (아랍어로 '방언'이란 뜻)'였기 때문에 표준 아랍어와 거리가 있었다. 기본적인 아랍어 학습 순서는 표준어부터 하고 그 다음 암미야로 넘어간다.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처럼 학원 밖을 나와도 외국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으면 좋겠지만 이러한 면에서 비전공자로 아랍어를 배우는 사람에게 국내 환경은 전혀 친절하지 않다. 최근에는 아랍인들이 더욱 더 많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는 추세지만 2014년에만 해도 한국에 들어 와 있는 아랍인 수가 지금 같지 않았다. 비전공자로서 아랍어 공부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아랍어를 쓸 수 있는 접점을 만드는 기회가 아랍어 전공자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문화 차이일까, 아랍 남성에 대한 편견일까. 마이와 아맨 이후 아랍 친구 사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문화 차이를 자연스레 극복할 수 있는 자리 마련도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랍어 공부가 얼마나 쉽지 않으면 필자가 2014-2015년 아랍어 학원을 다닐 중급 이상 단계의 인텐시브 수강생의 절반 정도가 아랍어 전공자였다.  한국에서 아랍어 비전공자가 아랍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사설 학원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러한 비전공자도 전공자와 함께 수업을 듣게 된다는 점이다. 비전공자로서 전공자와 같은 수업을 듣게 되면 현저하게 차이나는 부분이 어휘량이다. 아랍어에 올인하지 못해 채워지지 않는 부족한 어휘량이 문제였다.  외국어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있다. 단어 학습이 선행되지 않으면 문장을 만들 수 없고, 기본적인 대화도 단어와 단어의 나열으로 그치고 만다. 단어와 단어를 매끄럽게 잇는 능력도 결국은 동사, 명사, 형용사 등 다양한 품사의 단어를 얼마나 자기 것으로 만들었냐가 관건이다. 아랍어는 한국인이라면 평생 입 밖으로 내보지 않은 생소한 발음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으로 아인과 하 발음이다. 발음도 왠지 자신 없고, 복잡한 문법 형식에 따라 달라지는 동사 형태가 공부하고 싶은 욕구를 자주 꺾어버렸다. 다른 어떤 외국어보다도 단어가 머릿 속에 남기까지의 과정이 오래 걸려 제 풀에 지친 적도 있다.


아랍어, 놓치지 않을 거예요


그럼에도 왜 아랍어를 놓지 않고, 야근 후 부랴부랴 도착해 수업 때 졸더라도 아랍어 수업을 듣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무한경쟁 시대에 영어는 기본이고 제2외국어 하나쯤은 해야 해서, 취업에 도움이 될까 하여와 같은 것들이 한 번쯤은 ‘아랍어를 배우는 이유’에 잠깐 스치듯 발을 올려놓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은 뭐 하나 오래 하지 못하고 금세 싫증내는 성격의 소유자다. 꽤 오랜 시간 아랍어를 배운 것 치고 실력이 늘 중급 이상을 넘지 못하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단어 한 자라도 외워보려 하는 이유는 온전히 이집트에서 온 친구 ‘마이’와 ‘아맨’ 덕분이다. 캠퍼스가 예뻤던 7월의 어느 날, 처음 보는 외국인 친구에게 말을 걸었던 그 날의 용기가 이집트 친구를 사귈 수 있게 해주었고, 얼굴 색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지만 나를 친구로 받아들여 준 그들의 고운 마음씨가 아랍어를 배우게끔 만들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더 알고 싶고, 그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우리가 다시 만날 그 날이 오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졸업 후 삶은 어떤지, 당시엔 약혼자가 있었는데 결혼했다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이들은 몇 명인지, 남편에게 털어놓지 못할 고민이 있다면 어떤 건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또 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표준 아랍어와 이집트 암미야가 어떻게 다른 지, 이집트 관련된 소식이 나오면 늘 너희가 떠올랐다고, 그때 찍은 사진들은 자주 들춰봤다고 꼭, 아랍어로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랍어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으면 끝은 없다. 나의 아랍어 공부는 여전히 매일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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