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해결하던 시기
카페를 열었을 때 나는 분명 사장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가게 이름을 정했고 메뉴를 만들었으며 공간의 분위기도 내가 결정했다. 누가 뭐래도 이 가게는 내 선택의 결과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루를 돌아보면 내가 한 일 중 사장다운 일은 거의 없었다. 대신 확인하고 조율하고 정리하고 다시 확인했다. 재고가 맞는지 스태프 스케줄이 어긋나지 않았는지 누군가 불편해하지는 않았는지를 계속 살폈다.
그날 매출이 얼마였는지보다 오늘 사고 없이 끝났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때 처음 느꼈다. 아, 나는 지금 사장이 아니라 관리자가 되고 있구나.
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았다. 가게가 조금 안정되고 손님이 꾸준히 늘고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모든 걸 직접 했다. 커피도 내가 내렸고 청소도 내가 했으며 문제도 내가 해결했다. 그 시기에는 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몸으로 해결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생기자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없는 시간에도 가게는 돌아가야 했고 내가 보지 않는 순간에도 기준은 유지돼야 했다.
이때부터 사장의 역할은 손을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설명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말로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왜 이 잔은 다시 내려야 하는지 왜 이 시간에 이 준비를 해야 하는지 왜 이 정도면 안 되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설명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았고 전달되지 않으면 기준은 흐려졌다. 그래서 나는 점점 커피보다 사람을 더 보게 됐다.
맛이 아니라 표정과 리듬을 봤고 실수보다 반응을 보게 됐다. 그때부터 하루의 피로는 몸이 아니라 머리에 쌓이기 시작했다.
관리자는 항상 중간에 서 있다. 위에서는 결정을 내려야 하고 아래에서는 이해를 구해야 한다. 어느 쪽에서도 완전히 편해질 수 없었다.
사장일 때는 결정이 자유였지만 관리자가 된 뒤에는 결정이 책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시점에서 많이 흔들렸다. 왜 이렇게 바쁜데 재미는 사라졌는지 왜 가게는 잘 돌아가는데 나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지를 계속 묻곤 했다.
그건 가게가 커져서가 아니라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카페 사장은 언제부터 관리자가 되는 걸까. 나는 이렇게 느꼈다.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가게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라고.
그리고 그게 불안하게 느껴질수록 이미 관리자가 되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걸 받아들이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다시 바에 서고 싶었고 커피만 하고 싶었던 날도 많았다.
하지만 관리자가 된다는 건 물러나는 게 아니라 위치가 바뀌는 일이었다. 손을 떼는 대신 시선을 넓히는 것이고 속도를 내는 대신 흐름을 만드는 일이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사장이지만 하루 대부분은 관리자로 산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이 역할을 회피하면 가게는 멈춘다. 하지만 이 역할을 받아들이면 가게는 나 없이도 움직인다.
그 순간부터 카페는 비로소 사업이 된다.
사장이라는 이름은 명함에 남고 관리자로서의 역할은 매일의 선택에 남는다.
나는 아직도 그 경계 위에 서 있다. 어쩌면 카페 사장은 끝까지 그 경계를 오가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