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간 거니
그녀가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녀의 전화번호가 사라졌다. 설령 번호를 바꿨더라도 내 핸드폰 연락처에는 남아 있어야 할 그녀의 번호가 없다!!
15년 전쯤에 우린 일로 만났다. 사는 동네도 근처여서 일이 끝난 후에도 가끔 만나 수다를 떨었고, 그녀를 따라 캘리그래피도 배웠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에 짬이 난다며 밥 먹자고 했었다. 우린 좋은 친구 사이였는데~
그녀가 사라졌다.
따뜻한 봄이나, 연말이 되면 그녀랑 커피 약속을 해야겠다고 계속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당연히 있어야 할 그녀를 향해 갈 수 있는 길이 '벽'이 돼버렸다. 메시지를 뒤지고, 톡을 뒤졌다. 눈이 뒤집혀라 몇 년 전 톡까지 일일이 뒤졌다. 그녀와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설마 우리가 톡을 주고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그녀가 사라졌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에 대한 감각의 오류. 난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게 2년 정도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2년 보다 더 오랫동안 그녀를 못 봤단 건가. 덜컥 겁이 났다.
'혹시 내가 싫어 그녀가 내 연락처를 차단했나?'
'혹시 우리가 싸웠었나?'
'혹시 내가 모진 말을 해서 상처를 주었나?'
알고 싶었다, 알아야 했다. 블로그를 뒤지고 인스타를 뒤지고 구글링을 하고 그녀를 추적하기 시작했지만 그 어떤 실마리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와 교집합 인물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혹시나 진짜 혹시나 해서 십 수년 전에 그녀가 함께 작업했던 사람을 떠올렸다. 전화를 했다, 그녀의 번호를 물었다.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끊고, 잠시 후 문자가 왔다.
011- *** - ****
실소가 터졌다. 진짜 구한말 번호 아닌가.
그래도 010으로 바뀌던 그때, 대개는 나머지 번호는 유지되는 게 보통이었으니까. 가운데 세 자릿수만 잘 해결해 보자 했다. 맨 앞에 숫자를 하나씩 붙여 전화를 했다. 두 번째 전화까지는 '없는 번호'라는 알림음. 세 번째 전화는 신호가 갔다. 그러나 받지 않았다. 네 번째 전화! 컬러링도 없었다. 기본 벨소리가 세 번 울리고 '받았다'!
그녀가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일까.
상대방은 바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맞았다.
아, 그녀가 알기나 할까! 반가운 목소리로 안 그래도 만나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녀.
"제가 좀 편한 상황이어야 만나서도 편할 거 같아서 연락 못 드리고 있었어요"
'괜찮아 괜찮아 이렇게 목소리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괜찮은지 몰라!'
그녀가 돌아왔다.
숨 가쁘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숨 가쁘게 내가 전화번호를 찾아 헤맨 일을 이야기하고! '우리 얼굴 봐야지, 얼굴 보자!' 말하는 나에게 그녀는,
"지금 만날 날을 정해야 얼굴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안 그러면 또 흐지부지~~"
만날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맞다, 이래야 만난다. 얼굴 보자 하며 진짜 만난 경우는 별로 없다.
그녀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몇 번을 확인했다. 아니 지금은 저장이 안돼 있어도 머릿속에 또렷이 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번호를 저장하고 보니, 그녀와 나눈 톡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지막 톡이 5년 전! 5년이란 시간을 불과 1~2년 정도로 착각한 거라니.
그동안 그녀와 나눈 대화들을 살펴보며, 그동안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은 게 안부를 묻지 않은 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이번에 그녀의 흔적을 찾다가 지난 몇 년 간 내가 주고받은 톡을 보게 됐다. 핸드폰 정리는 거의 안 하는 인간인지라, 몇 년 동안 사람들과 주고받은 대화들이 고스란히 나를 보고 있었다.
'이런 일이 다 있었네'
힘들고 속상했을 대화들...
그리고 그 사이,
'나에 대한 애정과 친절함'이 보이는 메시지들.
놀랍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오늘 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 때문에 힘들었을 이, 나를 힘들게 했던 이, 나에게 늘 유쾌함을 주었던 이, 나에게 좋은 소식을 자주 전해주던 이...
그래서 다시 만나보고 싶은 이!
그래서 안부가 궁금한 이!
그래서 잘 살고 있는지 걱정되는 이!
그리고, 무엇보다 빨리 만나고 싶은 그녀! 그녀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