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누구랑 가야 해?

마음의 준비

by 홍달화

보름 일정으로 해외여행을 간다고 했던 J가 일정을 앞당겨 돌아왔다. 귀국 신고 문자에 '어디 아픈 건 아닌지'를 물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J의 조기 귀국 이유는 '동반자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여행 일정을 끝까지 했으면 '절교했을 수도'있다는 것으로 보아 그래도 마지막까지 가는 건 피하고 싶었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J의 여행 동반자는 둘, 총 세 명이 함께 한 여행이었다. 이 셋은 이전에 여행을 함께 해 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처음으로 함께 한 여행.

난 J와 여행을 꽤 여러 번 해봐서 그녀의 성향을 안다. 웬만하면 상대에게 맞추고, 웬만하면 불평을 하지 않는 무난한 여행자이다.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선 여행 일정을 J의 동반자 중 한 명이 다 짰는데 꽤 빡빡했나 보다. 거기다 더운 날씨 때문에 체력이 떨어지는데 휴식 시간 없이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투어일정을 소화하느라 힘들었고, 그 힘들어하는 모습이 '계획자'는 섭섭했던 것이다. 거기다 말 한마디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생겼고. 양쪽 다 그럴 수 있었겠구나 싶었다.


서로 취향이 다를 텐데 자유 일정 시간을 좀 갖지 그랬어?

'따로 또 같이'를 할 걸 그랬다.


J는 셋이 그래도 처음 하는 여행인데 함께 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단다.

J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러지 그랬어 저러지 그랬어' 하지만 나도 동반자와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처음으로 함께 한 여행. 사진 찍는 거 하나 때문에도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겼었다. '하나 둘 셋' 하고 셔터를 누르느냐, '셋'에 셔터를 누르느냐를 가지고도 싸웠었다. 난 당연히 하나 둘 셋 숫자를 외친 후 셔터를 눌렀는데, 후배는 그게 아니라고 했다. 셋 할 때 셔터를 누르라고 했다. 아무튼 내 행동을 지적하는 후배 때문에 마음 상하고, 후배 행동을 지적하는 나 때문에 후배 역시 마음이 상하고. 그때 알았다, 아 여행을 함께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물론 여행 메이트로 잘 맞는 이도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도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게 오류였다.


J의 여행 에피소드를 함께 듣던 Y는 남편이 5월에 유럽 여행을 가자고 하는데 갈지 말지 고민이라고 했다. 아니 왜? 유럽이 싫은 거야? Y는 농담 섞인 말투로 '남편과 이혼할 거면 여행 가구요.' 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Y는 남편과 단 둘이 여행을 가 본 일이 별로 없었다. 자녀들과 함께 가거나 모임으로 가거나 누구 끼어서 다녔는데, 이유는 남편과 여행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봐야 매일 싸운다고 했다. 매일 싸우면 진짜 곤혹이겠다. 남편과 여행 갈지 말지가 진짜 고민이 될 수 있겠구나.


얼마 전 20일 넘게 포르투갈 여행을 했다. 원래는 혼자 가는 계획이었는데 출발을 앞두고 큰 조카가 합류했다. 열아홉 살의 큰 조카와 단 둘이 떠단 유럽 여행. 처음엔 유럽에 왔다는 흥분으로 둘의 텐션이 같았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 눈을 뜨면 둘이 나가서 조용한 도심을 뛰어다니고, 사람 없는 트램을 타고 왔다 갔다 낭만에 빠졌다.


참 좋다, 그렇지?!

하하 제가 유럽에 왔다는 게 실감이 안 나요!


귀여운 녀석.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녀석의 체력은 떨어지고, 나는 잔소리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린 조카에게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감성을 채우러 왔는데 감성 대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맑았다 흐렸다 우리의 여행은 그랬고,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조카라도 여행을 같이 하는 게 쉽지 않구나를 깊이 깨달은 20여 일.

그렇지만 그 20여 일 동안 나는 이전에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녀석을 알게 됐다. 얼마나 예민한 지도 알았고,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다양하게 먹어 보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알았고, 하루에 너무 많은 것을 보면 감정 노예가 되는 것 같아서 일정은 가능한 한 두 개가 좋고, 헌책방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걸 좋아하고, 뷰 좋은 호텔에 머물면 꼭 글을 쓰고 싶어 하고, 빈티지 샵에서 쇼핑하는 걸 좋아하고, 좋았던 곳은 한번 더 가보고 싶어 하고. 불안이 큰 것도 알았고,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는 걸 싫어한다는 것도 알았고, 그렇다.

돌아와서 여행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때는 몰랐던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녀석은 사진 찍는 걸 싫어해 늘 내가 도둑 촬영을 했는데, 바뀐 장소마다 녀석이 내 가방을 대신 들고 있었다. 가방을 들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항상 먼저 들어줬었구나.


J의 여행 후일담 속에 내 여행들을 떠올려본다.

여행의 속성이 그런가 보다. 시험에 들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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