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은 사람 되는 법
굳이, 힘들게, 돈을 써가며 '그걸' 하냐고 물었다. 답은 '글쎄~' '그냥' 간단했다. 네팔로 트레킹을 간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왜, 굳이'였다. 뭐 거창한 이유가 아니어도 내키는 대로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단, 혼자서는 떠날 용기는 없기에 단체 일정에 합류했다. 4200미터 마르디 히말이 목적지였다. 몇 개월 전인 9월, 그렇게 깊은 고민 없이 히말라야 마르디 히말로 향했다. 마르디 히말 코스는 최근 3~4년 사이 인기를 끌고 있는 트래킹 코스다. 떠나는 날까지 일정을 함께 할 구성원들과의 사전 모임이 없었던 탓에 출국하는 날이 되어서야 동반자들을 확인했다. 20명이 넘는 인원, 나이도 직업도 다양했다. 가장 놀라운 건 80대 후반의 어르신이 두 분이나 계셨다는 사실. 그중 최고령자인 어르신은 지금까지 '만산' 즉 만 개의 산을 다닌 이력의 소유자였다. 만산이라니, 만 번을 다니려면 내가 지금부터 일주일에 몇 번을 산행해야 되나 계산해 보다가 그만뒀다. 가능하지도 않은 일 같아서.
카트만두에서 20분가량 비행기를 타고 포카라에 도착, 마르디 히말 코스는 이 도시에서부터 시작한다. 총 4박을 로지에서 자는 일정, 9월 초는 아직 우기라 비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트래킹 첫날의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멀리 그러나 또렷하게 보이는 눈 덮인 '마차푸차레'. 거대하고 신비해 보이는 마차푸차레를 점점 더 가까이 보며 걷는 코스. 출발을 앞두고 들뜬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이 교차했다. 목적지인 마르디 히말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운이 좋아!
산에서는 그냥 같지만 그냥인 것이 없다. 첫날 숙소인 롯지, 방마다 화장실이 있는 걸 보고 '와 우리 운이 좋네, 개별 화장실이 다 있고'를 외쳤다. 히말라야 트래킹 유경험자들은 웃으며 말한다. 롯지에는 대개 공용화장실이 한두 개뿐이라고. 누군가 숙소 예약 잘했다고 칭찬하고 역시 우리는 운 좋은 사람들이라고 한바탕 웃는다.
두 번째 롯지에서 머물렀을 때, 밤새 비가 한을 품기라도 한 것처럼 쏟아졌다. 다들 다음 날 걱정으로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을 때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다.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해가 반짝 떠올랐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모두 '거봐, 우리 운이 참 좋아'를 외치며 맑게 웃었다.
첫째 날: 포카라 출발~ 오스트랄리언 캠프~ 2100미터 피탐 데우랄리
둘째 날: 2100미터 피탐 데우랄리~ 2900미터 로우캠프
셋째 날: 2900미터 로우캠프 ~ 하이캠프(3,550미터)
넷째 날: 하이캠프~마르디 히말 뷰 포인트(4,200미터) -> 포카라
비로 인해 흙길이 미끄러웠다. 밥때가 되어 모였는데 멤버 한 명의 바지가 진흙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빗길에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떨어졌단다. 뭐라고요? 떨어지는 순간 나뭇가지를 붙잡았는데 빛의 속도로 셀파가 달려와서 끌어당겼다, 셀파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다, 오늘 나의 은인인 셀파 000에게 감사를!
와, 천만다행이었네요. 운이 진짜 좋았어요! 한국 가면 좋은 일 있을 것 같아요! 그리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적지인 마르디 히말 뷰 포인트를 목전에 둔 전날 밤. 다시 비가 천지를 삼킬 듯 쏟아졌다. 이대로 아침이 되면 뷰 포인트까지 못 가보고 하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번졌다. 새벽 4시 출발이 과연 가능할까.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지만 히말라야에서의 날씨 또한 그러하다. 새벽 4시 비는 그쳤다. 어둠 속에 비장한 각오로 모인 팀원들. 제발, 무사히 마르디 히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새벽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가파른 길. 가파를수록 풍경은 아름다웠고,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순간 거대한 설산의 풍경은 신비로웠으며 '이유'는 사라지고 없었다.
뷰 포인트를 진짜 목전에 둔 거리, 풍경은 또 시시각각 변했다. 살아있다는 건 이런 걸까. 운해가 몰려와 설산을 가로막더니 또 순식간에 흩어지고, 장엄한 풍경 앞에 잠시 멈춰 서면 또 어디선가 구름이 순식간에 몰려와 눈을 가리고.
그러나 우린 역시 운이 좋았다. 뷰 포인트에서 우리는 여태껏 고대하던 풍경과 만났다. 바로 눈앞에서 마주한 안나푸르나 남봉과 마차 푸차레는 비현실적일 만큼 신비로웠다. 그 설산과 마주해 누군가는 경건하게 기도를 했고, 누군가는 찻잔을 움켜쥐고 오래오래 바라봤고, 누군가는 영상편지를 썼다. 나는 마차 푸차레를 향해 안나푸르나 남봉을 향해 기도를 했다. 나를 위한 기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기도.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단체 일정이 아니라면 마르디 히말 퓨 포인트에서는 반나절을 보내도 좋을 듯했다. 하산하는 길, 속도를 냈다. 그런데 아뿔싸, 다 끝난 게 아니었다. 가파른 계단길에서 내 오른쪽 스틱이 돌 틈에 박혀 빠지지 않는 바람에 균형을 잃었다. 아래 계단으로 발을 내딛던 찰나 빠지지 않는 스틱 때문에 공중에서 헛발질을 하며 쓰러졌다. 순간 계단으로 낙하하면 끝이다란 생각에 몸을 오른쪽으로 더 틀었고, 흙바닥으로 떨어졌다. 엎드린 자세로 떨어지면서 얼굴을 다칠 수 있겠다란 생각에 팔 굽혀 펴기 자세로 손을 바닥에 딛고 얼굴을 들었다. 오 히말라야의 신이여, 얼굴이 무사했다. 엎드린 자세로 발을 움직여봤다. 발목이 다쳤으면 큰 일이었다. 오 히말라야의 신이여, 발목도 괜찮았다.
진짜 운이 좋았다. 왼쪽 스틱에 문제가 생겨 왼쪽으로 떨어졌다면 상상하기도 싫지만 왼쪽은 절벽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내려갈 수 없는 절벽! 가슴을 백만 번도 더 쓸어내릴 아찔한 길.
참 묘하다. 스틱이 빠지지 않은 그 순간, 난 아주 잠시 딴생각을 했다, 미운 사람 생각을. 그리고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직면한 거다. 미움을 끊으란 신의 계시이런가. 끊어야겠다 결심했다.
점심을 먹고 막바지 하산을 시작하려는데 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내려갈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우리의 대장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빗속으로 전진했다. 진격해야만 한다! 비뿐만이 아니었다. 거머리 떼의 습격이 이어졌다. 비를 타고 거머리가 몸에 달라붙었다. 놈들은 피를 빨아먹으며 아주 짧은 순간 통통하게 몸을 살찌웠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장대비와 거머리. 우리의 운이 다한 건가! 대장님은 롯지에서 자기로 한 일정을 변경해 진격의 하산을 강행했다. 이게 맞는 걸까. 그러나 대장의 선택은 옳았다. 포카라의 호텔로 돌아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식당에 모여 맛있는 밥을 먹으며 그랬다, '오늘 롯지에서 잤다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추워서 힘들었을 거다, 신발도 젖어서 내일 하산하는 게 힘들었을 거다'라고.
역시 우리는 운이 좋아!!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카트만두에선 시위가 벌어졌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시내에 출몰한 탱크를 보았고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었다. 무사히 비행기를 탔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알았다, 하루만 늦었다면 우리는 비행기를 타기 어려웠을 거란 사실을.
진짜 우린 운이 좋았어!!
사람들마다 이번 일정에 함께 한 이유가 있었다. 60대 산악회 모임 어르신들은 70대가 되면 더 이상 히말라야 산행을 못할 거 같기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번 여정을 계획했다고 했다. 그런데 80대 후반 어르신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달라졌다고. 그들은 아마 좀 더 마지막을 늦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운이 좋았다.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위험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반문하겠지만 글쎄다. 일어날 거라 생각지 않았던 일들은 어디서든 벌어졌었다.
나는 운이 좋아!
마르디 히말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