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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도는 자의 노래 Dec 07. 2021

한국의 서낭당 - 울진

깊은 골짜기, 옛 절터 입구에 있는 아름다운 노거수 

브런치에서 처음 발행하는 글의 주인공으로 어떤 서낭당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그 후보로 몇 곳의 서낭당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강렬한 첫인상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는 울진의 서낭당을 필두로 서낭당에 관한 사진과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한다. 사진은 Nikon F3hp / AF 18-35라는 카메라와 렌즈로 담았으며, 필름은 FomaPan100을 사용했고, 자가 현상/스캔한 사진이다. 촬영일자는 2011년이다. 



지금까지 대략 500여 곳의 마을 제당을 답사해 보았지만, 이 서낭당만큼 첫인상이 강렬했던 곳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이전 다른 곳에서 포스팅했던 글에서도 이 서낭당을 극찬한 바가 있지만, 나목(裸木)인 상태의 계절에 이 서낭당을 방문한다면 마치 하늘에 뿌리를 내린 듯, 흡사 온몸에 생명력을 전달하는 혈관처럼 가지를 펼친 서낭목의 위의(威儀)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 


무릇, 카메라를 손에 든 사람들은 자신을 투사할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서 주변을 살피고 바라보게 되기 마련인데, 적요한 산간 오지 마을의 모퉁이에 고고하게 가지를 뻗은 채 홀로 자라나고 있는 노거수를 마주 대하는 순간, 어쩌면 나는 서낭당이라는 본질보다는, 화려하면서도 비장한 미감 그 자체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군더더기 같은 복잡한 수사(修辭) 없이도, 존재 그 자체로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으면서, 고고한 자태에 걸맞은 아름다운 조형미를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 내가 찾아다니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무엇이라는 운명적인 만남 비슷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겠다. 나무의 밑둥에 이름표처럼 두르고 있는 금줄과 한지로 만든 신체(神體)만이 이 거대한 나무에 더해진 찬사라면 찬사였다. 


서낭당은 예전 석회석 광산이 있던 마을의 초입 물굽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노거수를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기단과 돌담을 쌓았고, 다시 나무 아래로 제단을 조성했다. 서낭목은 회화나무 - 흔히 회나무, 훼화 나무라고 통칭하는 - 이며 높은 수고(樹高) 덕분에 멀리서도 뚜렷이 보이기 때문에 마을의 상징으로 손색이 없는 당당한 모습이다. 나무에는 금줄과 한지로 만든 신체(神體)를 둘러놓았으며, 나무의 주변으로는 몇 그루의 자목(子木)도 관찰된다. 서낭목의 곁에 있는 자목 중의 한 그루에는 서낭목과 같이 금줄과 신체를 둘러놓았는데 이 나무는 서낭을 모시는 수부(隨夫)를 기리기 위한 제단이다. 



서낭당의 전경. 안타깝게도 방문 당시 큰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져서 땅에 뒹굴고 있었다. 부러진 나뭇가지라고 해도 함부로 만지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이 마을의 불문율이라고 한다.


방문 당시에는 서낭목의 서측으로 뻗어나가 있던 큰 가지가 부러져서 땅 위에 놓여 있었고, 동측의 가지 하나도 부러져서 역시 땅바닥에 놓여 있었다. 예전에 이 마을의 주민 한 분이 땅에 떨어진 서낭목의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땔감으로 사용했었는데, 큰 탈이 났다고 한다.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서낭목의 부러진 가지를 함부로 줍거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나무가 만드는 그늘 아래로는 경작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민들이 나무를 얼마나 아끼고 신성시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의 외측으로 둘러쳐진 석담이 서낭당의 기단 역할도 하고 있으며, 기단을 보강하기 위한 또 다른 기단이 그 하부에 조성되어 있다. 나무의 밑둥에 바짝 붙여서 또다시 석축을 쌓고, 제단을 마련했다. 물성(物性)이 다른, 돌과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우리 고유의 경관은, 가슴에 내재되어 있던 전통적인 미감을 환기(喚起)한다.


  




主서낭목과 그 옆으로 따로 모셔지고 있는 수부신(隨夫神)을 위한 제단



이 마을의 제일은 매년 음력 정월 14일이나 15일 중에서 날을 받아서 치른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돼지(亥) 날과 원숭이(申) 날을 길일로 여겨서 14일에 제를 올린다고 하며, 호랑이(寅), 닭(酉), 뱀(巳), 소(午)의 날은 좋지 않다고 여겨서 정월 보름 자정이 지난 후에 제를 올린다고 한다. 예전에는 정월 이외에, 음력 4월 보름께에도 제의를 올렸지만, 일 년에 한 차례 정월 보름만 지내는 것으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서낭목의 밑둥을 감싸는 금줄은 주민들 중에서 선출된 제관이 직접 꼬아서 둘러놓는다. 제관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미혼자는 맡을 수 없었으며, 제의 기간 중에는 상사(喪事)가 생겨도 주위에 알리지 않고, 동제가 끝나면 비로소 장례절차를 시작했다고 한다.



 


왼쪽으로 꼰 새끼에 한지로 만든 신체를 걸어놓은 서낭목은 나무이면서도 더 이상 평범한 나무가 아니다. 사람들이 금줄을 걸어놓음으로써 나무에는 神(서낭)이라는 위격이 부여된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손으로 인간이 부여한 신격이다. 서낭의 근본은 사람이다. 무속인들이 지칭하는 잡신들은 우리 고래의 서낭당에 발붙일 수도 없고, 그렇게 여겨서도 안된다.






서낭목의 뒤쪽으로 원형을 그리는 반원형의 돌담을 볼 수 있다. 계절마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나무를 보호하는 모습이다. 돌과 나무는 원시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질이다. 신단수에 기원을 둔 우리 민간신앙의 기표를 구성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나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소통의 길이자, 상승과 하강의 통로이며, 나무 특유의 유한성과 불멸성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교훈을 묵묵하게 전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토록 아름다운 민간신앙의 현장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서낭당은 무속인이나 일부 관심 있는 사람만의 유산이 아닌 우리 민족 전체의 유산이다. 우리 선조들이 이 땅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하늘과 생명과 자연을 숭앙하는 아름답고 유서 깊은 우리의 종교유적이다. 미신이나 귀신으로 치부해 버리는 서구지향적으로 왜곡된 인식을 하루빨리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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