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전시일까 판매일까 기부일까

THE SCRAP : HAPPY TOGETHER

by 선아키


우리는 모두 사진 전시를 본 적이 있다.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엽서를 사 본 경험이 있고, 때로는 액자 속에 사진을 넣어 벽에 걸기도 해봤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진을 인화해서 전시를 해본 경험도 있을지 모른다. 사진은 분명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하고 다룰 수 있는 매체 중 하나다.


사진전을 본 경험을 다시 떠올려 보자. 사진작가의 삶과 경력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전시에 대한 요약이 쓰여 있는 큰 벽을 시작으로 크게 인화된 사진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벽에 걸려있다. 꽤 멀리서 봐야 한눈에 보이는 사이즈로, 사진에 대한 설명을 읽고 싶다면 다시 사진 옆에 작게 붙은 태그로 얼굴을 가까이해야 한다. 전시를 한 바퀴 다 돌아보고 나서 사진을 소장하고 싶다면, 사진전에 대한 도록을 구매한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진들 뿐 아니라 그 전시에 걸렸던 모든 사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더 스크랩>이 몇 년 동안 열리는 동안, 나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의 관심은 사진을 소비하는 것보다 사진을 생산해내는 데에 쏠려 있었다. 사진을 하는 다른 사람들이 사진에 어려운 말들과 함께 억지스러운 의미를 붙여 놓은 것이 싫었다. 사진은 보자마자 '와' 해야 한다고 오래도록 믿어왔다.

그러나 올해에는 꼭 <더 스크랩>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여러 사람들의 추천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었다. 간략하게 어떠한 방식의 전시인지 설명을 듣고서 갔지만, 듣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역시 천지차이다. 함께 <더 스크랩>을 처음 방문한 붑과 함께 연신 감탄의 말들을 쏟아냈다.


이것은 어쩌면 블라인드 테스트다. 아니, 이것은 또한 큐레이션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사진을 고르고, 순서를 정한 후 10장의 사진이 인쇄된 사진집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는 편집이기도 하다. 사진집을 받아야만 작가가 누군지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는 럭키박스와 동일한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올해의 <더 스크랩>에서는 홍콩을 응원하며 내가 만든 사진집이 한 권은 홍콩으로 보내진다.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전시일까, 판매일까. 아니면 기부라고 불러야 할까. 무엇으로라도 정의 내릴 수 없다는 점에서 <더 스크랩>이라고 부를밖에.





<더 스크랩>의 문을 열었다. 입장권과 구매권을 판매하는 책상이 있다. 그 뒤로는 몇 대의 프린터기와 함께 놓여 있다. 3000원인 입장권과 함께 10장의 사진을 고를 수 있는 만 원의 구매권을 구입하면 더 스크랩 연필과 함께 스티커, 목록을 적는 종이를 건네준다. 손에 꼭 쥐고 입장한다. 마음가짐은 일반 전시를 보는 것과 처음부터 다르다. 내가 여기서 제일 마음에 드는 열 장을 골라야 한다는 의무감과 소유를 위한 열의가 불타오른다.


resize_IMG_4284.jpg
resize_IMG_4292.jpg


붑과 함께 쇼룸으로 들어갔다가 A4지에 인쇄되어 벽 한 가득 붙어있는 어마어마한 사진의 양에 놀라 뒷걸음쳤다. 액자 같은 것은 없다. 사진을 감싸 권위를 부여하던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 덜어내고 이미지만 낭창거리는 A4 용지에 인쇄되어 벽을 모두 차지해 붙어 있다. 작가의 이름도, 설명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번호만 이미지와 함께 적혀있다.



이거 고를 수 있을까? 일단 사진의 양을 가늠하기 위해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자. 총 세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번 <더 스크랩>을 한눈에 훑고는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우리 하나 더 살까? 이거 안 되겠다. 홍콩을 위한 사진집 하나, 아름다운 것들을 위한 사진집 하나로 구성하자. 우리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가 구매권 하나씩을 더 샀다.


resize_IMG_4357.jpg
resize_IMG_4358.jpg


두 장의 종이를 들고서 우리는 시간 리미트를 정했다. 한 시간 반 이상을 소요하진 말자. 그전까지 고르는 거야. 그리고 우리는 빼곡히 사진에 적힌 번호를 썼다 지웠다 메모했다. 결과적으로 홍콩을 위한 10장, 아름다운 것을 위한 10장을 고르는 데엔 1시간 15분이 소요되었다. 그마저도 전체 사진이 순서대로 크게 뽑혀있는 일괄 요약 페이지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테다. 그 앞에서 한참을 사진 번호와 사진을 대조해가며 10장을 골라내고, 나름의 순서를 정해 연필로 꾹꾹 눌러썼다. 혹시나 못 알아보실까 봐 글씨마저도 정성 들여 예쁘게.


resize_IMG_4300.jpg
resize_IMG_4304.jpg


다 골랐어? 그럼 내려가자. 입장권을 사서 지나왔던 곳으로 다시 내려가 10개의 번호가 적힌 종이를 스텝에게 건넨다. 스텝이 번호를 컴퓨터에 적자 모니터 위로 내가 고른 사진이 스르르 떠오른다. 그렇게 10장의 사진이 맞는지 확인한 뒤 인쇄를 시작한다.


resize_IMG_4308.jpg
resize_IMG_4310.jpg


작가에 대한 소개와 사진이 총 10장. 그렇게 묶인 책 한 권이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에 들려진다. 총 두 권을 인쇄하여 한 권은 홍콩으로 보낸다. 홍콩에 보낼 책 위로 내 이름과 함께 응원의 말을 적는다. 홍콩의 자유를 위하여.


resize_IMG_4366.jpg


붑과 나는 총 두 권씩 손에 들고는 신이 나서 <더 스크랩> 전시장을 뒤로하고 나왔다. 얼른 보고 싶다고, 정말 이런 기획을 누가 한 것일까 감탄의 박수를 마구 치면서. 우리가 편집한 책을 펼치자 낯선 작가의 이름도, 익숙한 작가의 이름도 보인다. 겹치는 사진들도 있고, 서로 못 본 사진들도 있다.




홍콩에 보낼 사진들은 가슴이 먹먹한 사진들로 골랐다. 특히 홀로 거대한 무언가에 저항하는 사진들이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옆 나라인 우리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고, 공감하고 응원한다고 전하고 싶었다.


나의 아름다운 것들은 바다가 담긴 사진들이 많았다. 햇빛이 물결 위로 떨어져 부서지고, 파도는 모래사장에 부딪혀 부서지는 바다의 푸른 사진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푸르른 숲을 걸을 수 있는 여유가 곧 나의 행복이자 아름다움이기 때문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