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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Oct 31. 2022

푸름이 일렁이는 시험

<시험>


얼마 전부터 프리다이빙 강습을 시작했다. 나만큼 물을 좋아하는 나의 친구 붑은 이미 프리다이빙을 배우고 있었고, 배우면서 정말 즐거웠다며 나를 슬슬 꼬시는 것도 여러 번. 결국 난 넘어가고야 말았다. 사실 붑이 이야기를 해주기 전부터 프리다이빙이 나와 잘 맞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물을 좋아하고, 깊은 물에 들어가는 것은 더욱 좋아했으니까.


예상치 못한 시험을 준비하게 된 것은 프리다이빙 강사님에게 연락을 처음 하면서부터였다. 나는 그저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뿐이었는데, 선택권 없이 시험을 치러야 했다. 강사님은 어떤 코스를 준비할 것인지 물었다. AIDA1과 AIDA2 코스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은데,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바로 AIDA2로 들어가도 될 것이라는 충고에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러겠다고 했다. 프리다이빙이 왜 자연스럽게 자격증으로 연결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았고, 그저 한국이라서 자격증에 목을 매는 것인가 싶었는데 배우고 나니까 어느 정도 공감한다. 프리다이빙은 무모하게 도전하기엔 여러 위험 요소들이 있었고, 안전이 최우선이니 자격증을 통해서 그 안전의 테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는 것.



필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펜을 들고 공부를 시작했다. 더 원활히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는 순서와 방법들, 프리다이빙을 이루고 있는 종목들과 안전수칙, 만에 하나 있을 수도 있는 저산소증의 증상과 구조 방법들에 밑줄을 치고 정리를 하고 외워나갔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겪어보지 못해 처음부터 외워야 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중학교 과학 시험을 준비하는 기분이다.


실기 시험은 가만히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숨을 참는 것, 물속에 잠긴 채로 멀리 이동하는 것, 물속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 물속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것으로 나눠져 있다. 프리다이빙의 실기 시험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내가 봤던 어떤 시험보다 마음가짐이 크게 시험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물을 두려워하는 순간, 내가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고 나아갈 수 있는 거리가 줄어든다. 무서워하지 않고, 긴장하지 않고, 떨지 않는 것이 나의 기록을 늘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마음을 마음대로 해야 하고 그것이 직접적으로 결과로 나타난다니, 왠지 모순적인 시험이다.


물에 들어가면 온몸에 힘을 빼려고 한다. 어깨가 긴장 때문에 올라가 있지 않은지 한 번 확인하고, 정해진 박자에 따라 숨을 쉬며 이완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는다. 숨이 차도 괜찮다고 수십 번 속으로 되뇐다. 내가 겪고, 알고 있는 모든 스포츠와 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것 같은 텐션의 운동이다. 굳이 말하자면 마음을 차분히 해야 하는 요가와 닮았다.




AIDA2 자격증을 위한 시험에는 무사히 통과했다. 자격증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잠수풀을 방문할 때 자격증의 종류에 따라 입장할 수 있는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프리다이빙은 자격증을 처음 목표로 시작하지만, 결국엔 자기 자신과 치르는 시험이기도 하다. 지난번의 내가 들어갔던 깊이보다, 길이보다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하는 연습과 시험. 푸름이 일렁이는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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