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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Sep 27. 2023

예술이 문밖으로 나오면

안양예술공원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예술이 막혀 있는 흰 벽을 뚫고, 문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을까.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는 비싼 값을 치러야 관람이 가능한 공간일까, 모두에게 별도의 비용 없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열린 공공의 영역일까.


정해진 답이 없는 이런 고민을 하게 될 때면, 일본의 나오시마를 떠올린다. 나오시마를 비롯한 12개의 섬에서 열리는 예술 축제인 세토우치 트리에날레에서 나는 섬 곳곳에 흩뿌려진 작품들 사이를 거닐고 미술관들을 방문하며 지치지도 않고 감탄을 이어나갔다. 이 작은 섬에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작품이 이렇게나 많다니. 두 해 연속으로 방문하였지만 다 보지도 못했고, 내가 방문하지 못한 기간 동안 또 다른 새로운 작품들이 설치되고 있다. 나오시마는 현재진행형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안양예술공원에서 열리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nyang Public Art Project, 이하 APAP)에는 멀다는 이유로 이제껏 방문을 미뤄왔다. 알바로 시자가 아시아에 설계한 최초의 건물과 MVRDV가 설계한 전망대가 그곳에 있었다. 실은 그것만으로도 안양까지 갈 이유는 충분했다.




경계 없는 공원, 생활공간 속 예술



왜 나는 당연하게 안양예술공원이 경계가 있는 곳이라 여겼을까. 내비게이션에서는 도착했다는 안내가 나오는데, 난 여전히 도로 위에 있었다. 알고 보니 안양예술공원은 경계가 없다. 관악산과 삼성산 골짜기서 흘러내려오는 삼성천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 물길, 보도, 그리고 많은 북적이는 상가들이 모두 안양예술공원을 이루는 주체들이었다.


당연하게 공원은 구분 지어져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깬 경계 없는 공원이었다. 여름 끝자락의 주말, 사람들은 공원 어딘가에 돗자리를 펴고 도심 속의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사이로 공공예술작품들이 태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도, 어른들도 작품을 어렵게 대하지 않았다. 멀찍이 떨어져서 작품을 관람하는 도심 속 미술관과 대비되어 왠지 기분 좋은 풍경이었다.




똑바르지 않은 아지트, 안양파빌리온(알바로 시자)



인포메이션 센터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안양파빌리온에 도착한다. 조개껍데기 같은 쉘 형태의 지붕을 가진 흰 건물은 뒷산의 실루엣을 그대로 닮아있어 자연스레 하나의 풍경으로 녹아든다. 포르투갈의 현대 건축가인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건물답게 부담스럽지 않고, 과하지 않은 외벽의 곡면은 어느 방향에서도 다른 형태로 읽힌다. 이 작은 단층 건물은 이름도 가설 건축물을 뜻하는 파빌리온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내부 공간은 벽과 기둥으로 공간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영역에서 전시 및 안내가 이뤄진다. 알바로 시자의 건축 작품들이 그러하듯, 벽과 천장이 만나는 지점에서의 간접광과 다양한 모양의 창호를 통해 내부로 유입되는 햇빛이 공간을 시적으로 채운다. 안양파빌리온은 APAP를 소개하고, 작품의 정보들을 모두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의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울퉁불퉁한 숲 속의 안양전망대(MVRDV)



네덜란드에서 워낙 독특한 형태와 색상의 건축물들을 많이 선보이는 건축가그룹인 MVRDV는 데이터를 이용해 풍경을 만들어내는 데이터스케이프 방식을 안양예술공원 뒷산에 적용했다. 삼성산의 등고선을 그대로 연장하여 나선형 전망대를 만들어 올렸다. 마치 회오리 감자처럼 수직으로 들어 올려진 산책길 위에서 보행자는 천천히 램프를 따라 오르며 주변을 빼곡히 감싼 소나무의 밑동부터 줄기와 이파리들을 지나 점점 하늘에 가까워진다. 마침내 전망대를 몇 바퀴 돌아 정상에 이르렀을 때 저 멀리 관악산의 모습부터 안양예술공원의 전체적인 모습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안양전망대는 정해진 높이 위로 올라가면 보이는 결괏값뿐 아니라 과정을 그대로 선물하듯 보여준다.




2005년에 처음 개최된 APAP는 올해로 7회째를 맞는다. 금세 사라져 버리는 많은 것들 사이에서 이렇듯 같은 장소에서 자리를 지키는 꾸준함은 빛이 난다. 묵묵히 쌓여가는 공공예술작품들은 그 자체로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생활공간과 가깝고 밀접하게 머묾과 동시에 지속하여 사람들의 삶과 같이 변화해 나가는 것이 공공예술이 살아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샘터 2023년 10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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