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 성일(1)

바다에서 태어난 아이

by 김수달

아버지는 내게 종종 말했다.
“나는 강화도 바다가 고향이다.”
나는 웃으며 받아쳤다.


“아빠가 무슨 고래야? 바다가 고향이게.”
그때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장난이 아니라
아버지 삶의 첫 장면이었다.


강화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던 작은 배 위에서
성일은 태어났다.
그날 바다는 잔잔하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그저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숨결로
묵직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서해 갯마을에는 수많은 피난민들이 정착했다.
돌아갈 고향이 사라진 사람들,
살아남기 위해 바닷가 끝에 멈춰 선 사람들.
성일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도 그중 하나였다.


할아버지는
놋숟가락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월남한 선비였다.
논어, 맹자, 붓과 벼루를 손에서 놓지 않던 사람.
밥 짓는 법도, 밭을 고르는 법도 모르고
동네에서 글 모르는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던
‘훈장님'으로 불리던 영감님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그런 선비에게도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치게 했다.


어느, 갯마을의 바다는 넓었지만
사람 마음은 그만큼 넓지 않았다.


피난민이 들어오자
원래 살던 사람들은 그들을 경계했다.
어른들은 성일이 지나가면 속삭였다.
“저 집, 빨갱이 집안이래.”
“조심해.”
그 말들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옮겨 붙었다.
같이 놀던 아이가
성일을 밀치며 말했다.
“너네 아버지 빨갱이라며?
우리 아빠가 그랬어.”
말끝에는
어른 흉내를 내는 우쭐함이 묻어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서로 나누던 음식을
성일에게만은 곁눈질하며 뒤로 돌았다.
마치
그에게서 뭔가 옮을까 봐
조심하는 것처럼.
성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열면 울 것 같았고,
울면 더 놀림을 받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는 말 대신
작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조금 피가 나도
그 주먹을 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가슴에는
아무에게도 말 못 한
깊은 멍에가 한 겹씩 남아갔다.
그 멍은
시간이 지나 희미해지는 상처가 아니라
성일이라는 사람의 성격과 버팀을 만든
아주 오래된 뿌리가 되었다.
성일의 집에는 밭이 없었다.
원주민들은 땅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른들은 산을 밭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그 산을 처음 일구기 시작한 것은
어른이 아니라
일곱 살, 여덟 살의 성일이었다.
아버지의 쟁기질을 따라
돌투성이 산비탈을 긁어내리고
바위를 들어 옮겼다.
작은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박이고
손마디는 부어올랐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먹을 수 있는 풀을 찾아 산과 갯벌을 헤매고
그것을 물에 넣어 오래 끓여
죽처럼 만들어 먹었다.
정말 운 좋은 날에야
보리밥이 한 번 올랐고
그날은 작은 축제였다.
어느 날
성일은 친구들과 산에서
칡뿌리 같은 것을 발견했다.
너무 배가 고파
흙도 털지 못한 채 씹었는데
그것은 칡이 아니라
아카시아 나무뿌리 였다고 한다.
성일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마을 어른들이 달려와
입을 억지로 열고 토하게 했고,

그래도 깨어나지 못해,

의원에게 찾아가 침을 맞고

눈을 뜨게 됬다고 했다.


그 사건 이후
성일은 늘
밥 앞에서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감사하다는 말을 대신하는
작은 몸짓이었다.
성일에게는
단 하나의 욕망이 있었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살았던 어느 작은 갯마을은 아버지가 살았던.

1960년 그 시절, 초등학교 6학년(국민학교 6학년)
초졸반, 중학 진학반이 따로 있었다.
성일은
낮에는 밭일을 하고
밤에는 호롱불 하나 켜놓고

무너지지 않는 게 신기한 초가집에서
무릎 위에 공책을 올려 글자를 적었다.


그 시절의 주경야독은
성실함의 미덕이 아니라
살아보기 위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성일은 중학교 진학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 기적은 오래가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그 합격통지서를 오래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성일아… 아비가 돈이 없구나.
미안하다…”
그 말은
세상의 끝처럼 들렸다.
아버지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 역시 가난의 피해자였으니까.
그러나
성일 마음속에서
희미하게 켜져 있던 작은 불빛이
그 자리에서 꺼졌다.
성일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날
작은 호미 하나를
세게 내던졌다.
툭—
흙이 튀었고
조용한 울림이 번졌다.


그리고
그 길로
갯마을을 뛰며 내려왔다. 도망쳤다.
버스비는 한 푼도 없었다.
그래서
버스 뒷문에 매달려 올라탔다.
욕을 먹어도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갯마을을 보며
열네 살짜리 소년은
입술만 꾹 깨물었다.


그렇게
성일의 상경은 시작되었다.
꿈 때문도, 야망 때문도 아니었다.
좌절의 끝에서 시작된
반항이자, 생존이었다.


그날 이후
소년의 발걸음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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