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채희(6)

스물세 살, 첫 딸 장미가 태어나던 해

by 김수달

1979년 겨울,
엄마는 스물세 살이었다.
그 나이에 엄마는
첫 딸을 안았다.
맏 딸, 장미.
꽃처럼 예쁘고,
가시처럼 예민했다.
그 시절, 가난 속에 태어난 아이였고,
육아 초보였을 엄마 품에서 자란 첫아이였다.
엄마는 말했다.
“하도 울어서… 아빠 성일은
여보 장미 잠깐 장롱에 넣어둘까 했다?”
그 시절, 농담 같은 말이었다.
아버지는 꼭두새벽에 출근해야 했고,
아기는 밤새 울었다.


장미는 까맣고, 눈이 컸다.
엄마는 웃으며 말한다.
“갓 태어났을 때, 고구마 같았어.
근데 엄청 예뻤어.”
언니는 7살까지도 피부가 까매서
가족들이 걱정했다고 했다.

까만 게 지워질까 해서

때밀이로 벅벅 밀었다는 웃픈 에피소드도 있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예쁘다. 태어나서 한순간도 안 예뻤던 적이 없는 그런 채희와 성일이의 큰딸 장미
둘째 언니에겐
죽을 뻔한 이야기도 있다.
지붕 위를 타고 놀다가 지붕이 무너져서
똥 간에 빠져
똥독이 올라
생명을 잃을 뻔했다.
1970년대 농촌 어린이들이 흔히 겪던
아찔한 이야기.


그 뒤로도
삶은 다사다난했다.
셋째 언니는
제일 집안이 휘청일 때 태어났다.
하도 약해

첫째 언니인 장미가 팔을 당겨
밥 먹으라고 잡아끌다
팔이 탈골되기도 했다.(실화이다.)
자식 셋이
어린 엄마 품에 매달려 사는 세월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엄마는 아들을 보고 싶어
늦둥이로 나를 낳았다.(나는 딸이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세 아이는
각자 꽃 한 송이였다.
첫째 언니는 장미.
예뻤고, 눈에 띄었고,
가시처럼 예민했다.
엄마는 말한다.
“장미 같은 애였어.
예쁘고, 마음 약하고, 까칠하고.”
가난 속에서 태어난 첫아이.
스물세 살 엄마 품에서
밤새 울던 장미는
그 집안에 첫 꽃을 피웠다.
둘째 언니는 루피너스.
루피너스 꽃말은 모성애다.
엄마는 할머니 없이도 스스로 엄마가 되어 갔다.
셋째 언니는 수선화.
헌신적 사랑을 꽃말로 가진 아이.
집안 형편 무너지던 시절 태어나
어린 어깨로 희망을 지고 자랐다.
꽃 세 송이가
가난한 집안에 피었다.
가난이 뿌리였고,
엄마가 흙이었고,
아빠가 햇빛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안은 견뎠다.



나는 좀 한참 뒤에 태어났고,


나는 막둥이에 귀여웠으니까

강아지 풀 정도면 되지 않을까?

아님 말고,



우리 가족에게는

슬픈 추억거리가 있다.

엄마는 짜장면을 사 먹어본 적도 없었다.
그 시절 엄마 입에 들어간 건 밀가루죽뿐이었는데,
언니들 한 그릇 사주려고 아버지가
온종일 일하며 모은 돈으로
짜장면 겨우 한 그릇을 사서 삼등분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엄마는 아직도 미안해하신다.
그때는 자신도 배고팠다는 사실조차
기억에서 밀어내고 싶어 하신다.


나는 되물었다.

"글 쓰면서 슬픈 게 있는데, 엄마는? 그럼?"


"네 언니 장미가 엄마는 안 먹냐고 물어봤어."


짜장면도 한 그릇 큰 마음먹고, 겨우 사줬고, 엄마는 배고픔을 연신 물로 달래며,


"엄마는 짜장면 싫어한다고, 했어."


쌀밥 구경하기도 힘들게 큰 채희는 배불리 먹이지 못한 짜장면만 보면 옛날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부모가 희생한 만큼 자식은 큰다던데, 사실 자식만 큰 게 아니다. 부모 마음도 함께 찢어진다.


글을 쓰면서 코끝이 시큰해진다. 내일 부모님

짜장면 사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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