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산고 누가 알아줄까?

by 최자현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책상 앞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보지만 생각보다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이럴 때 자극이 되어주는 시가 한 편 있습니다.


천연두 후유증으로 뇌 손상을 입어, 하루가 지나면 배운 것을 거의 모두 잊어버리던 사람이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는 극찬을 받은 이야기를 아시나요?


謾吟/ 김득신


爲人性癖每耽詩 [위인성벽매탐시] 본시 시 지으면 너무 골몰하는 성벽이 있어서

詩到吟時下字疑 [시도음시하자의] 시 읊을 때면 글자 하나에도 매번 너무 고심하지.

終至不疑方快意 [종지불의방쾌의] 마음에 쏙 들어야 비로소 흡족하여 탈고하니

一生辛苦有誰知 [일생신고유수지] 그 누가 있어 이런 일생의 산고(産苦) 알아주리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시인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의 시입니다. 시를 짓는 일의 어려움을 묘사한 평범한 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인의 일생을 알고 보면 이 시의 문구들이 다른 의미를 갖고 다가옵니다.


김득신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의 종손이고, 아버지는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치(金緻)였습니다. 어릴 적 천연두를 앓으며 고열에 시달린 끝에 뇌 손상을 입어 여러 가지 장애를 안게 되었습니다. 심한 학습장애와 안면인식장애 그리고 기억력장애 등을 가졌습니다. 지식과 문벌이 모든 것을 좌우하던 조선에서 학습장애는 가장 치명적인 장애였을 것입니다. 김득신은 글자를 한 자 배우면 다음 날에는 기억이 모두 사라져 버려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전날의 기억이 모두 지워지고 새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처럼 머릿속이 깨끗해졌던 것입니다.


김득신의 집안과 김득신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고행에 가까운 무한반복의 학습을 통하여 손상되었던 기억 세포들을 겨우 조금이라도 깨워낸 것일까요? 그는 10세에 겨우 글자를 깨우쳤다고 합니다. 당시 양반가에서 자녀들이 보통 5, 6세에 글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김득신은 5년 이상 피나는 노력 끝에 가까스로 공부할 기초를 마련한 것 같습니다.


그의 독서 기록이 그가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살았는지 엿보게 합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다독(多讀)으로 메웠습니다. 한 번 읽어서 이해가 안 되면 수만 번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의 횟수를 모두 기록했다고 합니다. 1만 번 이상 읽은 책만 36권에 달합니다. 사마천 사기(史記) '백이전'은 특히 좋아하는 책이었다는데 무려 1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합니다.


수불석권(手不釋卷)이란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다는 말이죠. 김득신이 혼례를 올리고 신방에 들었을 때 처가에서는 신방에 책이 없도록 일부러 치웠다는 말이 전해옵니다. 하지만 그는 품 속에 가지고 온 책을 신방에서도 읽었다고 합니다. 그는 길을 가면서도 글을 외웠기 때문에 글 외우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김득신이 지나간다'는 것을 알 정도였습니다.


수십 년의 낙방에도 그는 결코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너는 이미 문장으로 일가를 이루었으니, 더 이상 합격에 목매어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라"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유언을 남겼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믿음에 결과로 보답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39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59세라는 늦은 나이에 대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습니다.


그는 또한 시 짓기를 즐겨서 시인으로도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는 매번 시를 지을 때마다 남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고뇌가 이 시에 담겨있습니다. 시의 마지막 연에서 '시 한 편을 탈고하는 일이 고통스러운 산고와 같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신만의 독특한 시풍을 확립하여, 당대 최고의 지성인인 효종과 택당 이식 등으로부터 "당대 최고의 문장"이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스스로 지은 묘비명에는 그의 삶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렸을 뿐이다."


좋은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지만, 평생을 걸고 공부하고 평생을 걸고 시를 썼던 김득신을 떠올려 보세요. 그의 묘비명에 새겨진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렸을 뿐이다”라는 말은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