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d Nov 09. 2022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지만

나는 고래가 아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던데.  


한껏 우쭐해 있다. 클릭수가 기껏해야 겨우 두자리를 힘겹게 넘는 주제에. 글을 재밌게 보고 있다는 댓글 하나로 오늘은 만사 제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컴퓨터와 한 몸이 되었던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사실 아무리 둘러봐도 나는 고래가 아니다. 혹시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삼형제 중 둘째. 

형이랑 싸우면 '어딜 감히 형이랑'이란 소리를 들었고 동생을 형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해볼라치면 '귀여운 동생을 왜'라며 꾸지람을 당했었다. 물론 내 인생을 탈탈 털어 우리 부모님의 사랑이 박히지 않은 곳이 어디있겠냐마는 그땐 그랬다. 뭐가 좀 안맞는다고.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주연 컴플렉스가 있었다. 주연이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데 꼭 주연이어야만 했다. 어쩌다 무대의 뒷일을 하게 되었을 때도 무대 위 그들이 나보다 나은게 뭐냐고 생각했더랬다. 생긴게 별로고 키도 작아서 오페라를 공부할 때는 주역을 할 수 없을거라 자포자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고 나의 지도 교수는 '너가 어때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나를 괜찮게 생긴 좋은 테너라고 추켜세웠지만 아무리 보아도 거울 속 나는 희끄무리한 작은 동양인일 뿐이었다. 오히려 지도 교수인 로날드는 검은색 피부에 무거운 베이스의 목소리를 가진 절대 주연이 될 수 없는 흑인이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내가 바그너 테너가 될 수 있을거 같아'라며 귀가 찢어지는 고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바그너 테너는 테너 중에서도 귀한, 주연만을 할 수 있는 목소리를 말한다. 아무튼 8개국어를 능숙하게 하던 그는 나에게 '너는 주연이 될 수 있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를 믿지 않았다. 어찌됐든, 나는 오페라에서 주역의 배역을 공부했다. 그리고 데뷔에 실패했다.


나는 호구지책을 찾아야 했고 그러다보니 지금은 평범한 동네 아저씨가 되어 버린거다. 아,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싶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는 실력없고 그저그런 이천오백만 남자 중 하나일 뿐이다.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생각나는대로 적다가 생업이 바빠 180일인가 210일인가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브런치는 그런 게으름이라는 중한 지병을 가진 나같은 놈들에게 친절히 알람을 보낸다. '작가님을 못만난지 며칠이 지났어요'따위로 시작하는 그런 알람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백 몇십일이 지났다는 알림을 받았을 때, 나는 나의 중병인 게으름이 나를 지배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댔다. 그래봐야 어떤 이유로 내 글을 클릭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몇 몇 사람들의 클릭을 셀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하나의 댓글이 나의 눈을 잡아 끈다. '정주행!' 


글이 재미있어 정주행하겠다는 댓글이다. 그리고는 내가 올린 첫 글에 댓글이 달렸다. '정주행 끝'. 


부끄러움도 들었지만 그 댓글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아, 나는 날때부터 관종이었던 것인가. 그 댓글이 다음 글을 만든다. 이 따위 돈도 안되는 글쓰기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게 맞는 일인가 생각할 때 쯤 되면 또 댓글이 달린다.


'재밌는 글 잘 보고 있어요.'


관객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나의 행복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공연이 끝나고 일면식 없는 사람이 나와 눈이 마주치고 엄지를 들던 기억이 다시 피어오른다. 함께 공연했던 사람들이 모여 그날의 공연을 초단위로 곱씹으면서 뭐가 어땠고 그때 누가 뭘 어떻게 했고 조잘대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고래가 아니지만, 오히려 플랑크톤에 가깝지만, 칭찬이 있을 땐 고래가 된다. 


p.s. 칭찬이 아니었어도 속으로 욕을 하셨어도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얼치기 엉터리의 글이라도 즐겨주시면, 플랑크톤이 고래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거에요. ^^ 

절대로 막걸리 한 병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고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 아니에요. 정말 고마워요. ^^ 


 


작가의 이전글 주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받았던 것들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