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배 Jan 05. 2022

분노는 세상을 바꾼다

분노할 때 드는 생각

내가 군 복무를 할 때 병영 부실 급식 사건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 순간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변했다. 취사병이 늘어났고, 추가찬이 도입됐다. 취사병 여건 보장을 위해 주말에는 브런치데이를 도입하고 휴가 보상을 확대했다. 매주 급식 회의를 하며 급실 질 개선을 위해 힘 썼다.


이 모든 건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됐다.

분노한 것은 병사들이 아니라 사회인들이었다.


분노는 힘이 세다. 분노는 다른 어떤 감정보다도 가장 행동적이다. 동물(動物)에게는 움직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 동물에게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며 동물이 행동한다는 것은 의지의 표명이다. 분노는 그 의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간의 감정이다.


역사를 바꾼 사건들은 생각보다 작은 데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비장한 음모와 계략을 꾸며서라기보다는 우발적이거나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 촉발제가 되어 혁명적 사건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부당하게 당한 폭력에서 출발했고, 홍콩의 민주화운동도 한 범죄자가 중국에 인도되는 사건에서 출발했다. 우리 역사 속 광주학생항일운동도 일본 남학생이 한국 여학생을 희롱한 데 분노하여 충돌한 것으로 시작된다.


사건의 크고 작음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작은 사건이라도 혁명을 촉발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촉발(trigger)되었다는 것은 이미 내부에 무언가로 채워져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비어 있는 곳에서는 어떤 것도 없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 분노로 감정이 '동요'된다는 것도 그만큼 축적된 감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감정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쌓여 있는지, 그리고 전 국민에게 얼마나 쌓여 있는지에 따라 사건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보통 분노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동물과 인간을 구별 짓는 것으로 중 하나가 '이성(理性)'이다. 분노할 때는 인간다움을 결정짓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막무가내로 행동한다. 그로 인해 주변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불편한 사람들이 생겨난다. 화가 많은 사람을 주변에 두면 덩달아 화가 많아지는 기분이다. 썩 유쾌할 리 없다.


그러나 나는 분노가 좋다. 임계치가 낮은 분노를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다. 언가에 분노할 줄 아는 게 좋다. 공정성을 해치는 부당함에 분노하고, 정치의 부패함에 분노하고, 물질만능사회에 분노하고, 인간 사이의 차별에 분노하고. 이성은 동물의 인간성이라면 분노는 인간의 동물성이다. 분노하는 인간은 다시 동물의 모습을 띤다. 우리 마음속에 가장 인간적인 것들이 이미 자리하기에 동물의 모습을 띤 그 모습마저도 가장 인간다워 보인다.


분노는 세상을 바꾼다. 분노는 모일수록 더욱 힘이 세진다. 기하급수적으로 세진다. 그래서 세상을 바꿔왔다. 조금 더 옳은 방향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화가 날 때면 곰곰이 생각해본다. 지금 이 화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그 정도의 분노를 하고 있는가. 그럴 때는 글을 다. 아주 빠르게. 논리 정연하게. 이상하게 화가 날 때는 글이 잘 써진다.


그게 아니라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이는 것이라면 그냥 털털 웃어버리고 만다. 별 것 아닌 일에도 나의 마음은 쉽게 흔들리는구나, 나는 그만큼 가벼운 사람이구나. 아직 더 성숙해야겠구나.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쉽게 분노한다. 그만큼 마음속에 불만들이 가득 쌓여 있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 불만이 제짝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진정으로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모난 곳이면 일단 질러 보는 것이다. 이것은 분노가 될 수 없다. 울분이 소진되지도 않는다. 불만의 총량만 쌓일 뿐이다.


조금 더 행동적이고 발전적인 분노가 필요하다. 불만으로 가득 찬 마음을 비워내고 그 빈 공간을 따뜻하게 채워줄 분노가 필요하다. 분노는 세상을 바꿔왔다. 앞으로도 세상을 바꿀 것은, 인간다운 분노밖에 없어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한낮의 자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