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호] 우리동네 전시를 소개합니다|글 임승현
예술/창작물은 화려하게 치장하고, 도달하지 못할 환상적인 판타지를 자아낸다. 이 초-일상적 꾸밈은 때론 바닥에 굳건히 서있기 힘든 현실 공간에 숨 쉴 수 있는 보이드를 제공한다. 한편 예술은 너무 친근하고 일상적이어서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동질감으로 위로와 위안을 주기도 한다.
정밀아의 그림, 가사, 노래는 초현실적 카타르시스보다 현실의 거울 보기에 가깝다. 어떤 이에게는 휴식을, 누군가에는 외로움을 나누는 새벽 라디오 디제이 역할 같다. 정밀아는 스스로를 창작자로 간주한다. 그리고 쓰고 부르는 종합적 활동을 한다. 2집 앨범 발매 시기에 맞춰 열린 이번 개인전은 오랫동안 고이 싸두었던 창작물 보따리를 풀고, 먼지가 켜켜이 쌓인 그림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하는 장이다. 특히 그동안 ‘싱어’ 정밀아에 익숙한 이에게 이번 전시는 그의 음악을 한층 깊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숨겨진 퍼즐을 맞추는 자리다. 그리고 쓰고 부르는 모든 창작행위는 어느 하나 튀는 태도 없이 동일선에서 각자 역할을 하며 좋은 어코드를 맞춘다.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쓴 그의 노래가사, 그리고 이를 꾸밈없이 담담하게 읊는 목소리는 듣는이로 하여금 보편적 경험의 재현을 이끌어낸다. 근접한 과거에 겪은 사사로운 일을 연상하게 하고, 특별하지 않은 어제의 사건을 노랫말과 곡조로 ‘보편 타당한 특별함’으로 포장하도록 돕는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개인의 ‘그렇고 그런 시선’은 예술이 가진 아름다운 마법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순간으로 변모한다. 이는 듣는 이에게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부르는 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모든 인간은 외롭다는 전제를 제쳐 두고라도 외롭다”라 말할 만큼 스스로 외로운 이의 노랫말은 공통적인 감각을 느끼는 불특정 리스너에게 공동체적 안도감을 제공한다. 이러한 공감 형성은 창작자가 숨김없고 솔직하기 때문에 가능할테다. 운율을 맞춘 시적인 가사, 그 가사와 최대한 밀착한 꾸밈없는 목소리를 듣고 읽으면 굳었던 긴장이 이완된다.
한편 정밀아의 회화는 오래되어 너덜너덜한 일기장 같다. 그리고 쉬기를 반복한 그림에는 그의 하루와 흘러온 시간이 담겨있다. 음악이 앨범을 만드는 기간 동안의 정밀아를 품고 있다면, 그림은 더 오래전 어느날의 모습부터 현재에 당도한 설렘까지 보다 장기적인 시간을 품고 있다. 특히 전시장에서 완성하게 될 <데일리드로잉(가제)>은 시간으로서의 그림을 보여준다. 매일 메모를 남기듯 떠오르는 장면을 꼬물꼬물 그려내는 이 작업은 정밀아의 내밀한 부분을 끄집어낸다. 그의 회화는 물리적으로 플랫하지만 표피적이지 않다. 하루하루 드로잉하듯 그린 그림은 실상 숙성된 장면의 완성이다. 음악이 정제된 창작물이라면, 그림은 혼성의 결과물이다.
그의 음악 작업은 세션과의 입맞춤을 거친 스킨쉽의 창작물이다. 반면 회화는 내면에 존재한 외로움과 고독의 독백이다. 그림은 관객을 상정하고 그리지 않는다. 그대를 살피기 이전에 나를 들여다본다. 특히 음악을 도구로 표현하기 이전에 완성한 회화는 과거 외롭고 우울하고 힘들었던 자신에 대한 응어리진 성찰 혹은 외침에 가깝다. 음악은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나’ 의 투사다. 이야기는 외면의 사건과 현상에서 비롯된다. “저녁바람 마른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찬 공기를 뚫고 스며든 봄빛” 속에서 “공평하게 쏟아지는” 보편성을 찾아낸다. 결과적으로 일상적인 상황을 예민한 관찰로 끄집어낸 이야기이기에 대중적 공감 형성이 쉽다. 그러나 그림은 훨씬 은밀하다. 대상과 공유하기 위해 그리지 않는다. 마치 나의 은밀한 부분을 기록한 비밀 일기장과 같다. 사실 그의 그림을 두고 공통적인 시각적 특징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어려울 수 있다. 각 작품은 그의 감정의 리듬을 보여주기 때문에 시각적 유사함 보다는 정밀아가 지닌 감정적 맥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쓰고, 부르는 창작 활동 외에 찍는 행위는 정밀아의 창작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시계추 역할을 한다. 파편이 모여 전체를 만들어 나가는 앞선 전체 창작 행위의 원자 역할을 사진이 담당한다. 외부에서 발견한 장면을 찰나에 담는 행위,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기억과 감정의 조각을 붙잡는 일을 사진이 한다. 사진은 안과 밖, 어제와 오늘, 얕음과 깊음, 나와 우리 사이의 중간자다.
음악 작업을 하면서 공연이나 앨범에 사진작업을 꾸준히 선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사진이 편리한 가벼움의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테지만 이러한 연결고리로서 듣는 이가 보는 이로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연속성의 이유도 있겠다. 이번 전시가 낯설지만은 않은 것은 그간 사진으로 접했던 순간순간의 시선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제 정밀아는 흩어졌던 창작의 조각을 한곳에 펼쳐 놓는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튀는 법이 없고, 그림자에 숨어 모습을 가리는 법이 없다. 정밀아의 목소리가 어쿠스틱 기타와 초근접한 거리를 유지하듯 각각의 창작물은 서로간의 영역을 물 흐르듯 닮아가며 조화를 이뤄간다. 오랜만에 ‘공연장’이 아닌 ‘전시장’에서 정밀아가 건내는 목소리를 보고, 그림을 듣는 유연한 감상을 추천한다. 그리고 쓰고 부른 하나하나의 별을 다시 보고 읽고 들을 때 각자의 은하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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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현은 문화를 시각적으로 익히고 글로 나누기를 즐기는 글쓰는 사람이다. 서울과 런던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고미술과 현대미술, 한국과 유럽 미술사를 공부하며 동서고금 시각미술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 미술전문매체 <월간미술>에서 3년간 기자로 활동했고, <아트조선>에서 기자이자 전시기획자로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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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아는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창작자다. 소소한 일상 속 감정을 노래에 담아 많은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한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오랜시간 미술보다는 음악에 집중해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10여년만에 ‘미술’ 창작자로서의 모습을 부각한 전시, “그리기 쓰기 부르기” 를 11월 22일부터 12월 3일까지 성북동 문화공간 17717에서 열었다. 그동안 감춰온 또 다른 모습의 정밀아를 공개하며 ‘평범한 우리 모두’의 보편적 일상에 대한 공감을 형성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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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0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7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